무등일보

<칼럼> 학교가 창의성을 죽이는가?

입력 2021.10.26. 10:11 수정 2021.10.26. 19:49 댓글 0개
이운규의 교단칼럼 광주 신용중 교사

한 소녀가 혼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를 본 학교 교사가 묻는다. "지금 무엇을 그리느냐?" 소녀가 대답한다. "하느님을 그려요." 그러자 교사가 소녀에게 말한다. "얘야, 하느님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단다." 이에 소녀가 대답한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1분이면 돼요. 하느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제가 보여드릴게요. 그러면 사람들이 알게 될 거예요. 하느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는 작년에 세상을 떠난 영국의 교육학자 켄 로빈슨 이 2006년 TED 강연에서 소개한 이야기이다. 상상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소녀의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켄 로빈슨은 영국의 교육학자로서 학생의 창의성을 키워주는 교육제도의 필요성을 오랜 기간 일관되게 주장한 학자이다. "학교가 창의성을 죽이는가?"라는 제목의 위 강연은 역대 TED 강연 중에 가장 많은 수의 시청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의하면 창의성은 문해력과 같은 위치에 있다. 문해력(文解力, literacy)은 글을 이해하는 능력으로서 현대 사회의 문명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기초적이며 필수적인 능력이다. 창의성은 바로 이 문해력만큼이나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중요한 능력이라는 것이다.

현대 민주사회에서 사람들의 삶은 본질적으로 창의적이다. 민주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창조하고 재창조하면서 살아간다. 주인된 자세를 가지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만들어가겠다는 의지, 그리고 그 의지를 실현 가능하게 하는 태도와 능력, 그것이 바로 창의성이다. 이런 점에서 창의성은 자유롭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민주사회 시민들이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할 기본 조건이다.

교육은 바로 이런 인간의 창의성을 길러주는 것이다. 그러면 교육에서 창의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창의성 교육은 먼저 학생들의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한다. 호기심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다. 인간은 날 때부터 무엇이든 알고 싶어 한다. 무엇인가에 호기심을 가지고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았을 것이다. 교육은 바로 이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호기심은 교육적 성취를 위한 엔진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호기심은 교육의 출발점이자 엔진이지만 그 자체로 교육의 완성과 성취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호기심은 '질문'의 형태로 표현되어야 하고 그 질문을 주제로 삼아 '탐구'되어야 한다. 질문과 탐구의 전 과정에서 학생들은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학생들의 호기심이 자극되고 북돋아지면서 질문으로 표현되고 그 질문이 탐구의 과정으로 이끌어져야 한다. 학생들의 잠재된 호기심은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교육활동의 실제적 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 다른 누군가는 누구인가? 바로 교사이다. 창의성 교육에서 교사의 멘토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런데 만일 어떤 학교나 교육 시스템이 이러한 학생의 배움에 대한 호기심과 멘토로서의 교사의 자극 활동, 그리고 학생과 교사 사이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관계에 초점을 두지 않고, 대신 국가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교육과정'에 따라 교사들로 하여금 학생들을 가르치게 하는 데만 관심을 둔다면 그것은 창의성 교육이 아니라 '창의성을 죽이는 교육'이 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학생들의 창의성을 죽이는 교육의 결정판은 바로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한 교육과정 내용을 역시 국가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표준화된 시험'문제로 출제하여, 모든 학생들이 오직 이 문제들을 푸는 데 매달리도록 하는 제도이다. 한국의 초중등 교육 전 과정을 획일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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