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9월의 진료 일지

입력 2021.09.16. 11:21 수정 2021.09.16. 18:50 댓글 0개
주종대 건강칼럼 밝은안과21병원 원장

가을장마가 계속되는 가운데 모처럼 며칠 햇볕이 내리쬐고 선선해지는 9월을 보내고 있다. 9월이 되니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When life was slow and oh, so mellow (9월의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달콤하고 여유로웠던 삶들을) 이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9월은 곡식이 익어가는 결실과 풍요의 계절인 가을의 시작점이다. 특히 9월은 다른 달 보다 더 설레고 기대감이 큰데 아마도 추석 명절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추석 즈음이 되면 고향집 앞마당에서 노랗게 익어가는 감나무 이파리 그리고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먹일 전을 부칠 때 나는 지글지글 기름 끓는소리와 고소한 냄새, 자식들을 기다리며 마을 입구에서 괜스레 서성대는 아버지의 모습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그때의 명절을 즐길 수 없어서 아쉽기만 하다.

오전 진료 시작 전에 즐거운 추억 여행을 끝내고 외래 진료를 시작했다. 첫 환자는 70대 초반의 여성분이셨고 침침함을 호소하며 병원에 내원하셨다. 환자분의 이름을 몇 번이나 호명했는데도 환자분이 들어오시지 않았다. 아침에 진료할 환자 수를 보니 마음이 급해져 외래 진료 간호사를 재촉했다. 한참 뒤에 신발을 끄는 소리와 함께 아주 서서히 어르신 한 분이 진료실에 들어왔다. 한쪽 손은 가슴쪽에 올리고 천천히 진료실로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기저질환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하신 분이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환자분에게 말을 걸었다.

몸의 중심을 잡기 힘들어서 구부정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환자분의 얼굴에서는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다. 가슴에 올린 손은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는 걸로 보아 몸이 전체적으로 힘들어 보였다. 나는 이 분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환자분께서는 대학병원 신경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셨다.

진료를 해보니 백내장이 진행되어 양안 모두 교정시력이 0.4 정도로 나왔다. 이 상태면 사물이 흐려 보이고 특히나 걸을 때 지면의 경사가 울퉁불퉁한 곳에서 넘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아름다운 세상,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환자분께 백내장 수술이 필요한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해 드렸다.

파킨슨병과 함께 시력 저하로 인해 뇌 기능 감소를 촉진시켜서 치매가 일찍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눈 안쪽의 망막에 이상이 없다면 수술 후 시력이 회복되어 보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돼 인지력, 사고력 등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다. 비록 몸의 움직임이 불편하더라도 시력 회복으로 TV도 시청하고 책을 읽는 등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며 하루도 빠짐없이 변화하는 바깥 풍경,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날 하루의 진료가 끝나고도 환자분의 얼굴과 내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자꾸 생각이 났다. 이 분이 집에서 병원에 오기까지 얼마나 힘드셨을까, 가끔씩 찾아오는 어지러움과 우울함은 어떻게 견디고 계실까.

추석 밤에 둥글고 환한 보름달이 떠오른다면 풍요롭고 결실이 가득한 달빛이 이 세상에서 질병의 아픔으로 고생하고 있는 모든 분들께 따뜻한 사랑으로 전달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는 의료인들의 순수한 노력이 더해져 더이상 아프지 않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작은 소원을 빌어보고 싶다.

# 이건어때요?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