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시인과 농부가 함께 쓴 생태 에세이

입력 2021.09.14. 10:57 수정 2021.09.14. 18:16 댓글 0개
이소연 시인·주영태 농부
'고라니라니' 공동 집필
우정·용기·유머·생명 표현
시인의 말과 농부 마음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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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농부가 함께 쓴 에세이가 나왔다.

이소연 시인과 주영태 농부가 생태 에세이 '고라니라니'(출판사마저刊)를 펴냈다.

이 책은 서울에 사는 이소연 시인이 전북 고창에서 쌀농사를 짓는 주영태 농부에게 받은 사진 한 장을 계기로 집필됐다. 사진에는 논을 헤집고 다니다 농부의 손에 붙들린 새끼 고라니 모습이 담겼다.

에세이는 농촌이 낯선 도시 시인과 글쓰기가 낯선 농부의 시각이 투박하게 담겼다. 특히 전라도 사투리가 가감없이 담겨 독자들에 시골의 정서와 현장감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책 집필의 동력은 자신의 왼손바닥을 찍은 사진이었다. 손바닥 위에는 도정된 흰 쌀이 있었다. 우리가 매일같이 씻어 안치는 쌀이 저토록 눈부시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농부가 보내온 여러 사진 중에서도 농부가 새끼 고라니를 손 위에 올려놓고 찍은 사진은 시인에게 가장 신선하고 놀라운 순간을 선물한다.

손 위에 올려진 고라니는 순하고 순한 생명들의 함축이며, 포악하고 사나운 손이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세계의 표상이다. 고창 농부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유기농법을 고집하며 게으른 농사꾼이란 오해를 받지만 시인은 그런 농부를 누구보다 응원한다. 매일같이 자기 논에 찾아오는 황새를 좋아하고 자라나는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농부의 마음을 닮고 싶어진다.

책은 농부가 습관처럼 찍어 온 사진은 그리 놀라울 것이 없지만 거기에 깃든 삶의 이력은 지금껏 느껴 본 적 없는 뭉클함을 선사한다.우정과 용기와 유머와 생명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이야기로 넘쳐난다.

장석남 시인은 "이렇게 삶의 맨살을, 아니 생살을 느끼게 하는 글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내 안에 숙어져 있던 짓이겨진 '쑥향'이 살아난다"고 평했다.

책 표지는 책'지구불시착 그림그리기 팁 초간단편'의 저자 김택수가 참여했다. 그는 "이소연 시인 쓴 '들꽃이 좋더라'에서 뽑은 문장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했다. 들꽃을 쥔 손 표지 일러스트는 강물, 바람, 산, 논, 들판 등을 떠올리게 한다.

'고라니라니'는 지난 7월 12일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100만원 후원을 목표로 출판비 모집을 시작했다. 펀딩 시작 1시간 만에 목표 금액을 달성했으며 펀딩 종료일인 8월 20일 목표금액을 넘어서며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소연 시인은 지난 2014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현재 '켬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시집으로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가 있다.

주영태 농부는 고창에서 농사를 지으며 친환경 농사에 도전하지만 논밭은 각종 야생동물의 산란터가 되어 게으른농부로 살고있다. 현재 유일하게 가입한 단체인 농민회에서 활동중이다.

한편, 출판사마저는 약하지만 소중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만들고 있다. '라니'시리즈 첫 번째 책은 이소연 시인과 주영태 농부가 주고 받은 사진과 에세이를 묶은 '고라니라니'이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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