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누구나 그날 그 시간에 그 버스를 탔을 수 있었다

입력 2021.09.10. 16:08 수정 2021.09.12. 19:32 댓글 0개
김정호 아침시평 변호사
김정호 변호사

지난 6월 9일 학동 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발생한 붕괴사고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총체적으로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 사건에서 붕괴한 것은 비단 5층 건물이 아니라 기업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와 사회구성원들의 책임의식도 함께 붕괴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씨랜드, 세월호, 코오롱 리조트 건물 붕괴, 잠원동 건물 붕괴 등 수 많은 재난들이 모두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학동 건물 붕괴까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법을 어길 때 생기는 이득이 처벌로 인한 손해보다 크기 때문이다. 또한 법과 안전보다는 비용 절감을 중시하는 철거 현장의 악습이 전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건물해체계획서대로 윗층부터 작업순서를 준수하여 철거하게 되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건물해체계획서는 무시되었다. 상주 감리를 고용하는 것보다는 비상주 감리를 두는 것이 비용이 덜 든다는 이유로 감리제도가 형해화되어 있었다. 불법하도급으로 인한 낮은 단가에 안전을 외면한 불법 철거가 일상이 되어 있었다. 우리 사회는 싸고 빠르게 하면 그만이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고 돈이 안전 위에 있는 후진적 문화로 인해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참사는 반복되고 있다. 특히 이번 학동 붕괴사고는 2019년 발생한 잠원동 붕괴사고와 판박이처럼 닮아 있어 우리를 더 슬프게 한다. 두 사고의 5층 건물 철거과정과 붕괴에 이른 경위가 너무 흡사해서 잠원동 사고가 우리 사회에 전혀 교훈으로 작용하지 못했다고 보인다. 사고 당시에만 변죽만 울리고 대안으로 마련된 대책들이 실효성이 없이 공염불에 그쳤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내용에 의하면 이번 학동 붕괴 사고의 원인으로 안전불감증에 기반한 무리한 철거방식의 선택, 감리 원청 및 하도급업체 관련자들의 주의의무위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고원인에 대한 수사결과는 발표되었지만, 향후 수사에서 불법하도급 사실을 인지하고도 묵인한 정황, 조합의 운영과 관련한 비리, 수의계약과 입찰 비리 등 구조적으로 이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하여도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누구나 사고 당시 그 현장에 있을 수 있었고, 누구나 그날 그 시간에 현장을 지나던 54번 버스에 타고 있었을 수 있었다. 이웃의 문제는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나와 나의 가족이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안도하고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고 무관심하고 모른 척했던 우리가 사회시스템의 부재로 후진국형 인재를 반복하고 있는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을 만들어 왔는지도 모른다는 자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재난은 사회의 문제로 공론화되지 못하고 개인의 슬픔으로 치환되어 유족들을 점점 고립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거듭된 참사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철저한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 신속한 피해 회복,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책 마련이 절실한 이유이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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