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오른 만큼 커지는 성취감, 인생 고난과 역경 이겨내게 해"

입력 2021.09.06. 14:38 수정 2021.09.10. 10:37 댓글 0개
조영석이 만난 사람(14)
해남 땅끝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땅통종주'길 개척한 나종대 산행인

산줄기 따라 끝에서 끝까지 걸었다. 한반도 육지의 끝이자 시작점이기도 한 전라남도 해남의 땅끝에서 더 이상 갈 수 없는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까지. 무려 1,350㎞의 대장정이다.

산길을 65구간으로 나눠 2년여에 걸쳐 20여 번의 산행으로 완주했다. 하루 평균 20여 ㎞를 걸었다. 한 번 나선 길이 4~5일이 걸리기도 했다. 더위와 싸우고 추위와도 싸웠다. 벌집을 건드리는 바람에 벌보다 빨리 달려야 했고, 목줄 없는 맹견에 쫓기던 공포는 지금도 식은땀 나는 트라우마다.

산길을 걸으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온 산의 나무와 풀, 스치는 바람은 그대로인데 나만 나그네처럼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했지만 산은 대답이 없었다.

종주를 마치고 돌아온 날, 비로소 산이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바로 세우며 말했다. "그건 네 꿈이었잖아."

해남 땅끝에서 고성의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산줄기를 '땅통'이라 명명하고 이를 완주한 뒤 산행기 '땅통종주'를 펴낸 나종대(62)씨를 지난달 중순 광주시 동구 금수장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 그의 '산 이야기'를 들었다.

-'땅통종주'라는 이름이 낯설다.

"땅끝과 통일전망대의 초성을 각각 차용해서 이름 지었어요. 아무래도 이름 없던 산줄기에 이름을 붙였으니 생경한 것은 당연하겠죠. 그렇지만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걷다 보면 머잖아 이름은 익숙해지리라 믿어요. 이름을 처음 지은 것처럼 종주길 완주자도 내가 처음이 아닐까 싶네요."

-'땅끝에서 통일전망대로 이어지는 산줄기'라고 했지만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경유하는 산 이름을 말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네요. 땅끝에서 시작한 발길이 달마산을 오르면서 북향으로 본격화되는데 두륜산을 지나 월출산, 무등산, 추월산, 내장산, 마이산, 지리산, 덕유산, 황악산, 속리산, 월악산, 소백산, 태백산, 오대산, 설악산을 거쳐 고성 통일 전망대에 도착하는 1,350㎞의 종주길입니다. 물론 산길만 걷는 것이 아니라 산줄기가 끊어진 곳에서는 가끔 국도를 걷기도 해요. 다만 물을 건너지는 않습니다. 종주라는 말은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으로 백두대간이 그렇듯이 물을 건너지 않고 산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의미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쉽지 않은 도전이었겠다. 꼼꼼한 사전 준비도 중요할 것 같은데.

"작년에 정년퇴직했지만 땅통종주를 하던 2년 전에는 직장인이었어요. 주로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하여 1박2일의 산행을 하거나 가끔은 토·일요일과 이어진 평일에 휴가를 내어 3박4일이나 4박5일의 산행을 했어요. 가급적 해당 구간의 터미널까지는 시외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터미널에서 산행의 들머리까지는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을 택했어요. 불가피할 경우 자가용을 이용한 경우도 있지만 산행 후 안전을 고려해서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종주를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산행계획서가 아닌가 해요. 종주하는 2년 동안의 종주 기본 계획과 월간 및 주간 계획, 당일 산행계획서를 작성했었죠. 마음이란 시시때때 변하기 마련인데 매주 월요일마다 주간 계획서를 작성하면 일주일 동안 할 일이 생기고, 산행 당일 변수가 생겨도 대처하기 쉽거든요."

-숙식은 어떻게 해결했는가.

"숙식 문제는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어요. 산골 마을의 민박집을 이용하거나 구간의 종점에서 마을로 내려와 모텔이나 식당을 이용하면 돼요. 다만 산행 중 먹게 되는 점심 식사가 문제죠. 하지만 점심도 아침을 먹는 식당에서 해결했는데, 가지고 간 빈 도시락 그릇을 주면 밥은 물론 반찬까지 가득 채워줍니다. 아직도 우리네 인심은 그렇게 야박하지 않아요."

-책을 펴낸 된 계기는.

"어릴 적부터 책 한 권 쓰는 것이 꿈이었어요. 백두대간 관련 책을 쓰고 싶어서 백두대간을 두 번이나 완주한 뒤 원고를 잡지사에 보냈는데 퇴짜 맞았어요. 원고도 초고 수준인데다 양도 부족하고, 사진은 이정표 위주였기 때문이죠. 원고를 수정하거나 보완할까도 생각했지만 새로 쓰는 것이 더 쉽겠더라고요. 더구나 백두대간 책자는 시중에 수 십 종류나 나와 있어서 그럴 바에야 땅통종주길을 최초로 걷고 그것을 책으로 펴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책 발행과 관련하여 특별히 준비한 것이 있는가.

"실패한 백두대간 책자 발간을 교훈삼아 '땅통종주'를 쓸 때는 사전에 글쓰기와 사진찍기, 역사 알기 등 여러 가지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2019년 4월에 종주를 시작했는데 책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나라의 역사를 알아야 하겠더라고요.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한국사 1급 시험 준비를 했는데 90점이라는 높은 점수로 합격했어요. 70점 이상이면 합격이거든요. 시험당시 내가 최고령이었어요. 글을 쓰는데 한국사 시험공부했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카메라 장비만도 천만 원 가량 들여 구입하고 관련된 강의를 들으러 다녔습니다."

-산행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을 겪기도 하는데.

"종주 초반에 어느 마을을 지나던 중에 서너 마리의 맹견과 마주친 적이 있어요. 험악하게 짖으면서 달려드는데 등산 스틱을 아무리 휘둘러도 도망가지 않더라고요. 심장이 고동치고 식은땀이 날 정도였어요. 그때 이후 개 짖는 소리만 들리면 깜짝 놀라곤 합니다. 벌집을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나 살려라' 며 때아닌 달리기도 했고, 산행 중 천둥번개에 소나기를 맞아 온몸이 젖고 감기몸살에 걸리기도 했지요. 한 번은 멧돼지 떼도 만난 적이 있는데 멧돼지도 놀라고 나도 놀랐지만 그들이 먼저 줄행랑을 치데요(웃음)."

-'땅통종주'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등산은 정신력만으로 가능하지 않아요. 체력이 뒷받침해줘야 한다는 거죠. 평소 등산을 자주하고 체력관리를 해 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해요. 그렇지 않다면 먼저 백두대간 종주를 권하고 싶어요. 백두대간 종주를 통해 몸을 만든 다음 땅통종주에 도전한다면 좋을 것 같아요. 백두대간은 짧게는 32구간으로도 나누고 길게는 50구간으로 나눠 종주하기도 해요. 한 구간이 20㎞에 달하는 구간부터 짧게는 12㎞의 구간도 있어요. 산악회의 백두대간 종주단에 가입해서 도전할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의 체력에 맞게 개인적 도전도 가능해요. 다만 경험이 많지 않다면 안전을 위해 홀로 산행보다는 마음에 맞는 친구와 두 셋이서 함께하는 산행을 권합니다."

-산은 왜 오르는 건가.(영국의 전설적 산악인 조지 말로리에게 한 기자가 던진 질문이다. 말로리는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 씨는 광주 '나사모 산악회' 총무와 회장으로 활동하며 10여 년 간 산행을 해온 애산가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하리라 생각해요. 첫 번째가 성취감입니다. 마라토너들이 순위와 상관없이 완주를 하고 나서 느끼는 희열과 같다고 보면 될 것 같네요. 힘들게 오르고 나면 누구나 무엇인가 해냈다는 기쁨과 자존감이 생기죠. 이러한 성취감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되기도 해요. 다음으로 등산이 주는 좋은 점은 신체적 건강과 우리 강산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거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하지만 산에 오르는 이유는 직접 체험하는 것만이 정답입니다. 체험하지 않은 등산의 이해는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봐요. 답을 찾고 싶다면 일단 가보라고 하고 싶네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땅통종주를 무사히 마친 건 아내의 도움이 컸어요. 적잖은 경비가 소요됨에도 성원하고 지원해 주고, 책 원고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는데 내게는 천군만마나 다름없었죠. 특히 홀로 가는 산행에 전화를 걸어 많은 용기를 얻기도 했는데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산행기를 연재해주고 책으로 엮어내기까지 도움을 준 '사람과 산' 가족들에게도 감사드리고요."

조영석은

영원하지 않는 모든 일상이 기적임을 믿는다. 뙤약볕 아래 붉게 핀 참나리의 오늘 하루도 기적이고, 꽃잎에 맴도는 나비의 날갯짓도 땅에 떨어지기 전까지는 기적이다. 아등바등 삶의 무게가 버거운 날에는 땅에 떨어진 나비의 찢어진 날개를 본다. 내일도 기적의 시간으로 채워질 것을 믿으며 오늘의 기적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kanjoys@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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