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김재규와 강신옥

입력 2021.08.02. 11:40 수정 2021.08.03. 09:23 댓글 0개
이정우의 우문우답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북대 명예교수

김재규는 안중근과 같은 의사이거나

민주화유공자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강변호사는 김재규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언젠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이 높아지면 김재규의

명예도 회복되고, 강변호사가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끼친 공로도 충분히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언제일까

7월31일 강신옥 변호사가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강신옥이 누구인가. 그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했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변호했던 변호사였다.

1974년에는 박정희의 유신 독재에 저항하던 소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된 대학생들을 변호하던 강변호사는 독재의 주구 노릇하던 검찰이 대학생들에게 예사로 사형, 무기징역을 구형하자 식민지 시절 일본인 판검사들도 독립운동하던 조선인들에게 이런 중형을 때리지는 않았다고 거세게 항의하다가 바로 법정모독죄로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나는 젊은 시절 이 신문기사를 읽고 강변호사의 정의감과 기개를 존경하게 되었고, 경북고 선배라는 사실을 알게 돼 마음 한 구석 늘 친근감과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한 10년 쯤 전인가 보다.

박정희 체제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나는 박정희 시절의 부동산 가격 폭등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는데, 회의장에 강신옥 변호사도 참석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회의를 마치고 평소 존경하던 대선배에게 인사를 드리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강변호사 별세 소식을 오늘 접하니 애통한 마음 그지없다.

강신옥 변호사가 변호했던 김재규는 대법원에서 내란 목적 살인 혐의가 인정되어 사형이 선고됐다. 내란 목적의 살인이 아니라는 일부 대법관의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사형이 확정되어 김재규는 1980년 5월 24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소수의견을 냈던 정의로운 대법관들은 쫓겨났고 각종 고초를 겪었다.

당시 전두환 세력은 김재규를 배은망덕한 패륜아 또는 권력욕의 화신으로 몰고 갔기 때문에 우리 국민 중에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강신옥 변호사는 김재규를 변호하는 과정에서 그가 결코 개인의 욕심이나 집권욕으로 총을 뽑은 것이 아니고 오직 한국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거사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뒤 가진 언론 인터뷰(브레이크 뉴스 2007.4.29.)에서 강변호사는 김재규를 의인으로 묘사하면서 민주회복이라는 순수 동기를 강조했다.

"김재규는 '내가 박정희에게 신세졌다. 그러나 그를 죽이지 않으면 유신이 철폐되지 않는다. 소의(小義)를 버리고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말했다. 보안사에서는 김재규의 이러한 말을 내(강신옥)가 만들어줬다고 보고 있었으나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김재규를 접견하는 첫날부터 그로부터 이러한 말을 들었다. 조준희 변호사는 김재규의 이 같은 말을 듣고 눈물을 글썽인 적도 있다. 김재규는 진실한 동기로 독재자 박정희를 살해, 제거했다. 5·16 쿠데타 같은 욕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김재규는 자신이 혁명의 주인공이었다. 김재규는 박정희 시체 위에 올라서서 대통령이 될 사람은 절대 아니라고 했다. 학생들의 피해, 미국과의 관계, 안보 등을 고려해 박정희를 제거했다는 것이었다".

김재규와 박정희는 같은 선산군 출신이면서 젊은 시절 잠시 교사 생활을 하다가 군인의 길로 갔다는 점도 똑 같다(김재규는 김천중, 대구 대륜고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 김재규는 박정희와 나이는 9살이나 차이가 나지만 1946년 육사 2기 동기로 입학해서 같이 졸업했다.

그 뒤 두 사람은 평생을 친형제처럼 가까이 지냈다. 차이가 있다면 박정희는 출세주의적 정치군인의 길을 걸은 반면 김재규는 강직한 군인이었고, 박정희의 유신 독재를 반대했다는 점이다. 나중에 김재규가 말하기를 유신독재 헌법이 발표되던 날(1972.10.17) 아침 집에서 누워서 조간 신문을 읽다가 신문을 휙 집어던지면서 "이게 무슨 헌법이야, 혼자서 평생 해먹겠다는 거지"라고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그 뒤로 김재규는 유신독재를 끝장낼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박정희를 죽이겠다는 것은 아니었고, 권총으로 위협해서 유신독재를 끝낸다는 약속을 받아내려는 계획이었다. 김재규는 실제 이런 계획을 여러 차례 세웠다.

육군 3군단장으로 있을 때 혹시 대통령이 부대를 방문하면 권총으로 위협해서 유신 포기 약속을 받아내려고 (제갈공명의 팔진도처럼) 누구라도 부대를 한번 들어오면 빠져 나가기 어렵게 설계해서 공사를 해두었는데. 대통령이 오지 않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 뒤 건설부장관 임명장을 받으러 청와대에 들어갈 때 호주머니에 권총을 차고 갔는데, 역시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혹시 대통령이 건설부를 방문하면 권총 위협하려고 건설부장관실의 태극기 뒤에 권총을 감춰두고 있었으나 대통령이 오지 않아 실행을 못하는 등 여러 차례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었다.

나중에는 결국 권총 위협 정도가 아니고 실제로 대통령을 살해하는 상황까지 갔는데, 친형제나 다름없는 사람을 살해한다는 것은 독실한 불교 신자인 김재규가 원해서 그런 게 결코 아니었다. 지독한 유신독재를 끝내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면 그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다. 그러니 김재규의 10·26은 확고한 민주주의 신념에 바탕을 둔 민주회복 거사였지 우발적, 감정적 행동이 아니었고, 집권욕에서 비롯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강신옥 변호사는 위의 언론 인터뷰에서 김재규를 변호한 것 때문에 신변 위협을 받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항상 위협을 느끼며 지냈다고 답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김재규가 대법원으로부터 사형선고가 되는 날 보안사 지하실에 끌려갔다.

그래서 김재규가 사형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5월 24일 보안사 지하실 텔레비전에서 김재규가 사형됐다는 뉴스를 들었다. …박정희는 애국심보다 집권욕이 강했다. 이것이 박정희가 비극으로 끝난 이유다. …김재규는 안중근과 같은 의사이거나 민주화유공자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강변호사는 김재규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언젠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이 높아지면 김재규의 명예도 회복되고, 강변호사가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끼친 공로도 충분히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언제일까. 강신옥 변호사의 명복을 빈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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