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상처 주는 학교(Wounded by School)'와 우리교육

입력 2021.07.13. 09:04 수정 2021.07.13. 19:34 댓글 0개
정유하의 교단칼럼 나산실용예술중학교 교장

최근 인간의 기대수명이 많이 늘었다, 세계보건기구와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은 OECD회원국의 기대수명을 분석한 논문에서 우리나라 2010년 출생자 기대수명은 여성 84.23살(세계 6위), 남성 77.11살(19위)이고, 2030에 태어나는 한국여성의 기대수명은 90.82세, 남성은 84.07이라고 했다.

과거와는 현저히 다르게 오래 살 수 있는 시대에 살다보니 '긴 세월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나?' 등으로 친구들과 열띠게 이야기하다 마지막은 "그냥 행복하게 살자"로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우리가 부모로서, 교사로서 아이들을 대할 때는 살짝 방향이 틀어진다. '너희들이 행복하게 살려면 열심히, 더 열심히, SKY, IVY League로…"를 외치며 다그친다. 이러한 환경에서 아이들은 소심한 반항을 해보지만 이길 수 없어 부모님의 목표를 향하여 달린다. 선한 의지에서 출발한 수많은 다그침에 아이들은 지쳐간다. 아이들은 괜찮을까?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에게 지금도 유감은 없다. 오히려 좋아하는 선생님으로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분은 일류 여자대학에서 국어를 전공하신 선생님이셨다. 집시치마를 입은 채로 바구니가 달린 자그마한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출근하셨는데 신선한 충격이었다.

목소리도 아름다웠고 수업 중에 가끔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씀하시는 것도 멋있었다. 한마디로 닮고 싶은 우상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선생님과 관련하여 내게 강력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선생님이 성적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내 손바닥을 때리신 것이다.

나는 늘 기초학력평가나 첫 시험을 잘 봤다. 지금은 자타가 인정하는 노력파가 되었지만 대학 입학 때까지 죽자고 공부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느닷없이 보는 시험에만 경쟁력이 있었다. 당연히 두 번째 시험에서는 성적이 떨어졌고 성적이 떨어진 학생들은 줄을 서서 차례대로 손바닥을 맞았다.

나는 비교적 운이 좋은 행복한 학생이었다. 젊고 에너지 넘치는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헌신적이었고 아버지께서는 책을 많이 사주셨다. 덕분에 책은 많이 읽었는데 공부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셨는지 모르지만 두 분 모두 공부하라는 말씀은 없었다. 성적이 오르락 내리락 했지만 성적으로 혼난 적이 없었다.

사실 부모님께서 바른 교육철학이 있어서가 아니라 두 분 모두 당신들의 인생이 바빠 우리에게 관심이 적었을 거라는 무례한 생각을 해본다. 이런 가정환경이니 성적이 떨어졌다고 손바닥을 맞아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거의 50년 전의 이 기억이 생생함은 상처이기 때문일까?

최근에 커스틴 올슨이 쓴 '상처 주는 학교(Wounded by School)'를 읽었다. 이 책은 미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받은 상처의 여러 가지 사례를 다루고 있는데 한국의 학교와 유사해서 몇 차례나 저자가 미국인인지 한국인인지를 확인하며 읽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아동학대 예방을 위하여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고 인권의식이 높아져서 체벌은 거의 사라졌지만 현행의 교육체제와 철학 때문에 학생들은 미국이나 한국에서 모두 비슷하게 정서적 상처를 입는다. 교사나 부모 모두 학생들의 인지능력, 정서상태, 정체성의 차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일반적인 학생과 다르다는 이유로 지적당하며 순응의 압박에 시달린다. 측정이 불필요한 분야를 평가함으로써 배움이나 작업의 기쁨을 사라져버리게 만든다. 집에서는 공부 못하면 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몰아붙인다. 그러다 아이들이 너무 지치면 자해를 하기도 하고 못난이보다는 못된 이가 차라리 낫다는 생각으로 주변인을 괴롭힌다. 극단적으로는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학교 다니는 동안에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남한산초등학교와 같은 몇 학교들이 증명해주고 있다. 학교를 못 오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벌이 되는 학교. 학교에 가고 싶어서 안달하는 학생들이 있는 학교. 이런 학교를 만들려면 당연히 공동체 구성원의 협조와 노력이 필요하다. 쉽지 않겠다. 하지만 사소한 변화로부터 거대한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도 사소한 변화를 시도해본다. 행복한 학교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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