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차별금지법, 어디까지?

입력 2021.07.05. 10:51 수정 2021.07.06. 09:28 댓글 0개
이정우의 우문우답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북대 명예교수
민권법 제7조가 규정하고 있는

차별 변수가 네 가지(인종·피부색·성·국적)는

각자 개인이 스스로 선택할 수 없이

태어나고 보니 주어져 있더라는 성격을 갖는다

그러므로 이들 변수에 따른 차별이 발생할 때

당사자는 억울할 수밖에 없고, 그런 억울함을

구제하자는 것이 이 법의 취지다

우리나라 헌법이 차별 요소로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이라는 세 가지 변수만

규정하고 있는 것도 미국의 민권법

제7조와 유사하다. 그러므로

차별금지법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없이

수동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최소한의

변수만으로 규정함이 옳다

바야흐로 차별금지법이 뜨거운 감자다. 현재 국회 법사위에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와 있고, 반대로 그것과 비슷한 평등법 제정에 반대하는 국민청원도 올라와 있다. 마치 광화문 촛불과 서초동 촛불처럼 상반되는 성격을 가진 두 청원은 각각 10만명 넘는 국민의 서명을 받아 기싸움 중이다. 6월말 여의도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집회와 반대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작년에 발의한 차별금지법이다.

이 법안은 성별,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나이, 종교, 사상, 학력, 고용 형태, 신체 조건, 건강 상태…등 차별을 금지해야 할 무려 23가지 변수를 나열하고 있다. 이 중 성적 지향(性的 志向)이라 함은 동성애, 이성애 문제인데, 당연히 예상할 수 있듯이 보수 성향 단체와 기독교 쪽에서 강력 반대하고 있다.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이 학력 차별 문제다. 교육부는 "학력은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상당 부분 성취 정도가 달라지는 만큼 합리적 차별로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이 법안에서 학력을 삭제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재계를 대표하는 한국경총도 "학력이나 고용 형태 등을 차별 금지 사유로 규정하는 것은 사기업의 자율 경영을 제약한다"는 이유로 이 법안을 반대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 미국의 경우가 참고가 된다. 미국 차별금지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법은 1964년 의회를 통과한 '민권법'(Civil Rights Act)이다. 이 법의 제7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사용자는 어떤 개인의 인종, 피부색, 성, 국적 등의 이유로 어떤 개인을 마음대로 채용하거나 해고할 수 없고, 고용상의 보수, 근무기간, 지불조건, 또는 고용상의 권리와 관련하여 어떤 특정 개인을 차별할 수 없다".

실제 이 법이 통과된 전후 사정이 흥미롭다. 원래 이 법의 초안에는 '성'이란 단어가 빠져 있었다. 이 법안에 반대하던 공화당 지도부에서 이 법의 통과를 확실히 저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대부분의 남성 의원들이 싫어할 '성'이란 단어를 추가해서 이 법안의 통과를 막아보자는 잔꾀를 썼는데, 결과는 어이없게도 통과되고 말았다. 그러니 성차별 금지는 법의 초안에는 없던 내용이었으나 이상한 과정을 통해 법제화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이 법이 성차별을 축소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민권법 제7조가 규정하고 있는 차별 변수가 네 가지(인종·피부색·성·국적)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들 변수는 각자 개인이 스스로 선택할 수 없이 태어나고 보니 주어져 있더라는 성격을 갖는다. 그러므로 이들 변수에 따른 차별이 발생할 때 당사자는 억울할 수밖에 없고, 그런 억울함을 구제하자는 것이 이 법의 취지다. 본인의 선택과 노력이 들어가는 학력과 같은 변수는 여기서 제외하는 것이 맞다. 학력에 따른 차별을 인정하고 금지하기 시작하면 대단히 풀기 어려운 복잡미묘한 문제가 발생하고, 도처에서 역차별을 받았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올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이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하여 차별 요소로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이라는 세 가지 변수만 규정하고 있는 것도 미국의 민권법 제7조와 유사하다. 그러므로 차별금지법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없이 수동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최소한의 변수만으로 규정함이 옳다.

그러나 한국의 성별, 학력별, 지역별, 고용형태별... 각종 차별이 매우 심하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정의당의 주장은 타당하다. 다만 그 개선 방법은 차별금지법에 여러 변수를 다 포함하는 방식이 아니고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1960년대부터 시행중인 적극적 차별시정조치(Affirmative Action) 같은 것이 그것이다. 차별시정조치란 기업의 계약 체결, 신입사원 채용, 또는 학교 입학을 결정할 때에 사람들의 기회균등을 촉진하기 위해서 인종이나 성을 고려하는 정책을 말한다. 이 정책의 목적은 두 가지인데, 첫째, 사회 전반의 다양성 높이기, 둘째, 과거의 명백한 제도적 차별로 인해 받은 피해의 교정이다.

이 정책의 도입 과정도 흥미롭다. 1964년 역사적인 민권법이 통과된 뒤 존슨 대통령이 재계 지도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이 법 통과의 의미를 설명하고 이 법의 정신을 구현하는 데 재계가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는 모임을 가졌다. 재계 대표들은 존슨 대통령에게 여성, 소수민족 등 사회적 약자가 채용, 승진, 보수 결정 등에서 차별받지 않게 하는 사회통합적 제도를 도입할 것을 권고했는데, 그것이 바로 적극적 차별시정조치(Affirmative Action, AA)의 출발이다. 이 조치는 얼핏 보면 기업 활동에 방해가 될 것 같은데, 오히려 재계 지도자들이 권고했다는 점이 이채롭고 그래서 더욱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권고를 존슨 대통령이 받아들여 1965년에 대통령령의 형태로 발효했고 그 뒤 고용, 입학 등 여러 분야, 그리고 여러 기관으로 확대되었다.

끝으로 남길 사실 한 가지. 참여정부에서 처음 도입한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는 사실은 내가 대통령 정책실장으로 일할 때 미국의 AA를 참고하여 한국에 처음 도입한 것이다. 참여정부가 끝나고 이명박 정부 인수위에서 재계에 대해 기업활동을 방해하는 규제를 제시해달라고 했을 때 이 제도가 메뉴에 올라갔다. 아이쿠! 개업 즉시 폐업 위기. 미국 재계는 이런 제도를 하자고 건의하는데, 한국 재계는 거추장스럽다고 폐지하자니 얼마나 대조적인가.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이 제도는 폐지를 면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시행중이다. 내가 방문했던 회사, 기관 중 '적극적 고용개선 조처' 우수상패를 자랑스레 벽에 걸어둔 데를 두 군데 본 적이 있는데, 감회가 남달랐다. AA를 확대, 발전시키는 것이 보다 나은 차별 시정의 방법이다. 차별금지법에 온갖 조건을 들이붓는 것은 차별금지의 좋은 방법이 못된다. 23개는 너무 많다. 과유불급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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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읽기'를 연재하던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가 사의를 밝힘에 따라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겸 경북대 명예교수가 '우문현답(이정우가 묻고 이정우가 답하다)'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한국경제발전학회 명예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2018년부터 제4대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또, 경북대학교 경상대학 경제통상학부 명예교수로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해당 기고는 무등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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