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6월을 기억하는 사람들

입력 2021.06.21. 14:19 수정 2021.06.21. 20:06 댓글 0개
류승원 경제인의창 광주·전남콘크리트조합 이사장

구순에 가까운 노모께서는 지금도 간혹 공산당을 언급하신다. 때론 고리타분하단 생각이 들다가도 일제의 압제와 광복,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와 분단의 아픔을 일 이십 대 청춘에 직접 보고 겪으신 분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보니 어떤 논리나 역사적 지식으로도 반박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이의 막연한 추측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고통과 아픔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마다 보고 겪은 상황에 따라 관점이 다르긴 하겠으나 격동의 시대를 헤쳐나온 삶 자체가 당신의 현실이기에 현재 시점에서의 우리는 어떤 말로도 그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6월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그 희생을 되새기기며 역사적 의의와 애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지정된 '호국보훈의 달'이다. 오늘은 나라와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애쓰신 분들을 기리며 그것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6월의 그 날들을 날짜별로 되짚어 보고자 한다.

6월1일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의 독립군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의거한 의병의 정신을 기념하는 '의병의 날'이며, 1871년 조선과 미국 사이에 군사 충돌이 발생한 '신미양요'가 일어난 날이기도 하다. 6월6일은 '현충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선열의 넋과 전몰장병들의 얼을 기리기 위한 1956년에 지정됐다.

1920년 6월 7일에는 영화로도 제작된 바와 같이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군이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크게 승리한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학생인 이한열이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사건이 발생했고, 이는 6.10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1926년에 일어난 6.10 만세운동은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주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모멘텀이 된 학생 중심의 대규모 시위 운동이다.

1950년 6월 25일에는 한국군과 유엔군을 포함해 80만 명 가까이 전사 내지 실종되고, 1,000만 이재민과 십 수만의 이산가족을 낳은 동족상잔의 전쟁 6.25가 발생했다. 주변 열강의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를 기폭으로 시작해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은 아픔으로 계속되고 있다.

6월에 발생한 가장 최근의 사건으로 2002년 6월 29일, 북한 경비정의 선제 기습 포격을 시작으로 '제2연평해전'이 벌어져 6명의 안타까운 목숨을 앗아갔고 19명이 부상하였다.

이 외에도 2002년 6월 13일 여중생 두 명이 주한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숨진 사건이 발생해 온 국민의 공분을 샀고, 1949년 6월 26일에는 민족지도자인 김구 선생 암살,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등 안타까운 사건들이 6월에 발생했다. 그나마 6월의 가슴 벅찬 기억은 2002년 6월 22일 대한민국이 월드컵에서 아시아 최초로 4강에 오른 기적 같은 일이지 않나 싶다.

최근 군 내부에서 각종 사건 사고가 발생하며 기강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70년간 휴전상태로 분단된 나라에서 우리는 어제의 아픔들을 너무 빨리, 그리고 쉽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계가 놀라는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며 살만한 세상이 된 요즘 우리가 기억해야 할 6월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것은 아마 수많은 이해관계 속에서 본 모습을 찾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과 나약함과 편협과 이기를 다음 세대에 물리지 않겠다는 고민과 다짐, 그리고 행동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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