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문재인과 문준용, 그 유전자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입력 2021.06.21. 09:45 수정 2021.06.22. 07:45 댓글 2개
서민의 開소리 단국대 교수

자화자찬 유전자는 능력 없고 찌질한 이들이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사람들은 멧돼지를 잡던 이를 '우파'라고 불렀고, 비둘기를 잡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일이라고 하던 이들은 '좌파'가 됐다. 우파라고 해서 자화자찬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짓선동과 자화자찬이 좌파의 전유물이 된 것은 이런 견지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앞으로도 최소 열달은 더 자화자찬에 시달리겠지만, 어쩌겠는가.

다 우리 잘못인데.

"문 대통령은 자신이 천주교 신자임을 밝히며 '가톨릭의 가치로 정치인이 된 이후에도 높은 윤리의식을 지킬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오스트리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6월 15일 수도 빈의 한 수도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 말이다. 많은 분들이 이 말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가장 놀랐을 분은 면전에서 이 말을 들은 막스밀리안 하임 수도원장이겠지만, 우리나라 언론과 네티즌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놀라는 지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았다. 세계적인 축구선수인 리오넬 메시 앞에 서면 아무리 난다긴다 하는 선수들도 주눅이 든다. 그런데 그 앞에서 '나도 축구 좀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웃음거리밖에 더 되겠는가? 수도원장 정도 되면 일반인들은 꿈도 못 꾸는 윤리적인 삶을 사는 분, 그런데 정치인이 그 앞에서 '나 겁나 윤리적으로 살아'라고 한다면 남들이 어떻게 볼까?

둘째, 윤리는 단기간의 노력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덕목, 그래서 진짜 윤리적으로 사는 사람은 늘 겸손해한다. 존경하는 스님에게 바르게 사는 비결을 물어보라. "난 아직 멀었다" 같은 말씀을 하실 것이다. 누군가가 '높은 윤리의식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필경 그는 윤리와는 동떨어진 삶을 사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셋째, 정치인으로서 문통이 그다지 윤리적이지 못했다. 자기 말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윤리적이라 할 수는 없다. 문통은 취임 초에 국민과 했던 약속을 거의 대부분 어겼다. 문제 있는 인사들을 공직에 임명했고, 자신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국민을 고소했다. 정권 수사를 한다는 이유로 검찰총장을 1년 넘게 괴롭히다,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나게 만든 건 윤리와 담쌓은 다른 정권들에서도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과기술융합지원사업에서 제가 6천900만 원의 지원금에 선정되었다는 것을 알립니다...심혈을 기울여 지원했습니다. 이 사업에 뽑힌 것은 대단한 영예이고 이런 실적으로 제 직업은 실력을 평가받습니다. 축하받아야 할 일이고 자랑해도 될 일입니다만 혹 그렇지 않게 여기실 분이 있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문대통령의 높은 윤리의식이 충격파를 던진 지 하루 남짓 지났을 무렵, 대통령 아들인 문준용 씨의 페이스북 글이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문준용은 대통령의 아들이다. 지원금 선정을 담당한 인사들은 공정하게 뽑았다고 거듭 강조했지만, 지원자의 신분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정말 공정하게 뽑았는지 의심스러운 건 인지상정이다. 게다가 문준용 정도면 다른 이들에 비해 형편이 어렵지 않을 터인데, 코로나로 어려운 예술인들을 제치고 지원금을 받아야 했을까? 지난 8년간 전시 한 번 안 한 문준용인지라, 코로나로 인해 그의 삶이 더 어려워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둘째, 예술은 단기간의 노력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분야, 그래서 예술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겸손해지기 마련이다. 30년쯤 그림을 그린 이에게 훌륭한 예술가가 되는 비결을 물어보라. "난 아직 멀었다" 같은 말씀을 하실 것이다. 게다가 예술이란 남들이 평가하는 것이지, 스스로 평가하는 영역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누군가가 '난 역시 대단한 실력자야'라고 말한다면, 필경 그는 훌륭한 예술가와는 동떨어진 사람임이 틀림없다.

셋째, 그의 싹수없음도 문제다. 그가 정말 실력이 출중해 지원금을 받았다고 치자. 그래도 대통령의 아들이라면 국민 앞에 좀 겸손하면 안 될까? 작년 12월, 그가 지원금을 받았다는 게 논란이 됐을 때 그는 페이스북 글을 다음과 같은 글귀로 시작했다.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의 지적을 '착각'이란 한마디로 정리해버리는 오만이라니. 이번 글에 등장한 '자랑할 일이지만 그렇게 여기지 않을 분이 있을까 걱정이다' 역시 고까워하는 심경이 그대로 드러난다.

문준용의 페이스북 글을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아버지를 꼭 닮았구나.' 스스로 높은 윤리의식을 갖고 있다는 아버지와 국내 지원금을 싹쓸이하며 자기 실력이 입증된 결과라고 말하는 아들을 보면, 아버지가 갖고 있던 자화자찬의 유전자가 아들에게 전달된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자화자찬은 그리 권장할 미덕은 아니며, 겸손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문대통령도 K방역을 비롯해서 지난 4년간 했던 무수한 자화자찬이 아니었다면 지금만큼 비판을 받지 못했으리라. 유전을 얘기할 때 나오는 것 중 자연선택이란 게 있다. 인기가 많아 자손을 더 많이 만들 수 있는 유전자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유전자는 도태된다는 뜻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자화자찬 유전자는 진작 없어졌어야 하건만, 왜 아직 없어지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추측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 옛날, 세상에는 뭔가를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전자는 주로 칭찬을 받고, 후자는 외면받았다.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이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이 안 한 일을 자신이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저번에 너희가 먹은 멧돼지, 사실 내가 잡은 거야. 옆 마을 철수가 잡은 게 아니라고." 하지만 이런 거짓말은 들통날 염려가 있기에 그들은 자화자찬을 병행했다.

"내가 멧돼지는 못 잡지만, 비둘기는 잡을 수 있어. 땅에서만 뛰는 멧돼지보다 하늘을 날 줄 아는 비둘기 잡는 게 더 어렵잖아?" 듣다 보면 그럴 듯한지라 사람들은 그의 말에 점점 귀를 기울였고, 그에게도 자손을 낳을 기회가 부여됐다. 그러니까 자화자찬 유전자는 능력 없고 찌질한 이들이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사람들은 멧돼지를 잡던 이를 '우파'라고 불렀고, 비둘기를 잡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일이라고 하던 이들은 '좌파'가 됐다. 우파라고 해서 자화자찬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짓선동과 자화자찬이 좌파의 전유물이 된 것은 이런 견지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앞으로도 최소 열달은 더 자화자찬에 시달리겠지만, 어쩌겠는가. 다 우리 잘못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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