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할당제 폐지가 공정이라고?

입력 2021.06.07. 18:44 수정 2021.06.07. 19:11 댓글 2개
김민전의 정치읽기 경희대학교 학부대학 교수(정치학)

윤석열 전 총장 지지그룹은 공정과 상식포럼을 출범시켰고 이재명 지사는 성장과 공정의 약자인 성공포럼을 출범시켰다. 대선 주자 중 선두그룹을 형성하는 윤석열 전 총장 측이나 이재명 지사 모두 공정을 시대정신으로 보고 있음이 드러나는 포럼명이다. 국민의 힘 대표경선에 출마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준석 후보도 공정은 능력주의라며 모든 할당제를 폐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사실 무엇이 정의이고, 공정인가에 대해서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복수가 정의라고 한 것에 반해, 고대 희랍의 소피스트 트라시마코스는 강자의 이익이 정의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을 지키는 것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정의라고 했는데, 이는 법을 어기지 않고 살아간다면 모두 정의로운 사람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많은 국가에서 법무부의 이름이 정의부(Justice department)인 이유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도 법을 지키는 것이 정의이고, 법무부가 정의부라고 생각할지 의문이다. 특히 법무부 장관이 국회에서 폭력을 행사해 재판중이고, 주취폭행과 증거인멸 교사의 의혹을 받는 사람이 6개월씩이나 법무차관 직을 유지했던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정의를 집행해야 할 검찰도 마찬가지다. 김학의 불법출금으로 기소가 되어도, 동료 검사에게 몸을 날려 덮치는 독직폭행을 가한 혐의로 재판중이어도 정권과 가까우면 승진을 한다. 군부권위주의 시절에도 보지 못했던 전대미문의 장면들이고, 정의와 공정의 결핍시대가 정의와 공정을 시대정신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공정은 특히 자원의 배분과 관련된 배분적 정의를 일컫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배분적 정의로 비례성의 원칙을 주장한다. 즉, 구두와 쌀은 가치가 다르므로 1대 1로 교환하면 안 되고, 가치에 비례해서 교환해야 한다는 것이 비례성의 원칙이다. 오늘날 비례성의 원칙은 학교에서의 성적이나 회사에서의 성과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원을 배분하는 원칙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피리가 하나 있다고 하면 누가 피리를 가지는 것이 공정한가라고 자문하고, 피리를 가장 잘 연주하는 사람이 가지는 것이 정의라고 하면서 더 강한 능력주의를 드러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피리를 가장 잘 연주하는 사람이 피리를 가지는 것이 피리의 용도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더 잘 연주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잠재력을 차단하는 기득권적 사고라고 지적할 수 있다.

사실 어느 시대에 어떤 성과를 낸다는 것이 고스란히 그 자신의 능력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베짱이는 여름에 노래만 부르다가 겨울에는 배가 고파서 개미 집의 문을 두드리지만, 개미로부터 냉대를 당한다. 그러나 오늘날 버전으로 바꾼다면, 베짱이는 노래가 대박이 나서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개미는 여전히 근근이 살아간다는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연주를 하는 베짱이의 능력은 동일해도 시장의 군주인 소비자의 취향이 변해서 노래로도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베짱이가 돈을 번 것은 자신의 능력 때문만이 아니라 시장의 군주인 동시대인의 취향으로 인한 것이다. 이는 자신의 성취가 곧 전적으로 자신의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능력주의의 반대편에는 평등한 분배가 있다. 평등한 분배는 모두에게 똑 같이 나눠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경쟁을 배제한다. 선거를 앞두고 지급되었던 전국민재난지원금이나 이재명 지사 등이 주장하는 기본소득이 이에 해당한다. 평등한 분배는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사람이나 없어도 상관없는 풍족한 사람이나 똑 같이 나눠준다는 점에서 더 큰 격차를 초래하는 문제점이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소수에게 돌아갈 자원을 줄인다는 점에서 사회적 연대를 무너뜨릴 수 있다. 또, 실패한 역사적 실험인 공산주의와 같이 결과적 평등을 추구한다면, 사유지는 아껴두고 공유지에서 과다하게 풀을 뜯게 해 황폐하게 만드는 공유지의 비극을 낳게 된다.

결국 공정은 능력주의(비례성의 원칙)나 평등의 어느 극단이 아니라 양쪽의 장점을 취하면서 단점을 약화시키는 절충에 답이 있다. 능력주의를 바탕으로 하지만, 그 사회의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소수자에 대해서는 배례를 통해 사회의 연대성을 강화하는 것이 공정인 것이다. 그럼에도 능력주의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 배제가 환호를 받는 것은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능력주의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물론, 사회배려가 특권을 지키는 수단으로 악용되었기 때문이다. 권력과 가깝다는 이유로 아무런 전문성이 없어도 공기업에 낙하산으로 들어가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바람을 타고 공정한 평가체제도 없이 정규직의 친인척이 정규직이 되고, 공무원특공으로 2만 명이 넘는 공무원이 아파트를 손쉽게 분양받아 수억 원의 이익을 남기고, 민주화운동을 한 부모를 뒀다고 대학이나 대학원에 더 쉽게 갈 수 있는 특권을 제도화하는 등의 부패와 불공정이 지속되기 때문에 능력주의의 바람이 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할당제를 비롯한 사회배려정책이 불공정의 원인인 것처럼 몰고 가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여성 국회의원 수는 300명중 57명으로 국제의회연맹(IPU)의 통계에 의하면 세계 121위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열심히 준비한 남성을 역차별 한다며 여성할당제를 폐지하자는 것은 남성패권주의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 또, 국제의원연맹에 의하면 45세 이하 의원 비율의 세계 평균은 30.2%에 달하지만, 우리는 45세 이하의 의원수가 단 11명으로 7.4%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와 비교할 때 한국의 여성의원이나 청년의원은 여전히 너무 적은 수이고, 여성과 젊은 세대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여전히 필요한 것이다.

결국 능력 있는 자들만의 사회도, 능력과 성과를 무시하는 사회도, 소수를 배려하는 듯한 외양을 가진 제도로 기득권을 강화하는 사회도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공정사회의 제1원칙은 능력과 성과에 대한 비례성의 원칙이 작동하는 사회이지만, 제1원칙은 제2의 원칙으로 보완될 때 완벽해진다. 그것은 바로 소수자를 배려하는 사회연대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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