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정보화시대의 평가방향

입력 2021.06.01. 11:03 수정 2021.06.01. 19:49 댓글 0개
정유하의 교단칼럼 나산실용예술중학교 교장

최근에 디지털 사전제작작업에 합류하여 주말에도 일하느라 한동안 쉼 없는 삶을 살며 불행했다. 하지만 무사히 마쳤다. 기존 연구분야이기도 했지만 인터넷을 통해서 보관되고 제공되는 정보 덕분이었다. 인터넷이 가능한 세상이 연구자들에게 얼마나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는지 모른다.

석사논문을 쓸 때만 해도 국회도서관에 가서 필요한 논문을 찾아 복사하고 그 논문들을 바탕으로 시작했어야 했다. 1990년대 후반, 박사과정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고 첫 학기 수업에서 서지학(Bibliography)을 배웠다.

정보가 어디에 어떻게 저장되어있고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필요한 문헌이나 논문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리서치 페이퍼의 첫 문장, 첫 문단, 전개 등은 어떻게 쓰는 것인지를 배우는 과목이었다. 어떤 정보는 데이터 베이스가 저장된 컴퓨터에서 찾아야 했고 어떤 정보는 학교와 계약된 기관의 정해진 루트를 통해서 찾아야 했다.

어떤 책들과 음원은 특정 도서관에 보관되었고 음악 동기 하나만 있어도 어떤 음악인지를 찾을 수 있는 데이터도 있어서 깜짝 놀랐다. 거의 논문 정도의 내용으로 구축된 사전도 있었고 희귀본은 영인본으로 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우리나라도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학교 도서관에서 전 세계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신세계였다.

그런데 최근에 디지털 사전의 항목을 정리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면서 인터넷을 통한 정보탐색이 얼마나 쉬워졌는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에도 나는 스마트폰 찬양자이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가능한 일들이 무궁무진하다. 책을 보다 궁금하면 사전을 찾는다. 은행, 마트, SNS, Zoom, 뉴스, 날씨, 이메일, 스마트 홈(CCTV, 센서 등)…사는데 필요한 많은 것들이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된다. 게다가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만 있으면 재택근무까지 가능하니 어떤 회사에서는 일 년에 한 번 소집하는 회사도 있다는 뉴스를 봤다.

우리나라의 학생들 평가내용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시작한 글인데 서론이 너무 길었다. 생활에서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가 손안에, 혹은 눈앞에 있다. 또닥또닥 몇 자만 두드리면 필요한 정보가 친절한 그림이나 그래프, 지도와 함께 떠오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지식을 평가하는 시험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이것은 단순히 선생님들의 탓이 아니다. 대부분의 문제가 그러하듯이 교육 전반의 구조적 문제이다. 수능 성적에 따라 서열화된 대학을 가는 제도 때문이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미국에서의 수업을 떠올려보면 지금이니까 그립지만 참 어려웠다. 가끔은 문해력을 위한 퀴즈도 있었지만 시험보다는 끝날 것 같지 않은 페이퍼(과제)가 주기적으로 주어졌다. 어떤 페이퍼도 책 한 권을 봐서 쓸 수 있는 답은 없었다.

과제가 떨어지면 곧장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배운 서지학을 바탕으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고 책, 논문, 참고자료를 찾아 한 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가 읽고 생각하고 분석하고 종합하여 서너장의 페이퍼를 제출하면 교수는 내 과제에 빨간 글씨로 자신의 생각을 담아 돌려주었다.

반드시 내 페이퍼의 내용은 사실을 근거로 한 나의 의견이라야 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내가 가르쳤던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과제들도 내 과제와 비슷해서 내심 놀랐었다. 그래서인지 과제를 프로젝트라고 했고 학기 초에 제시된 몇 개의 프로젝트를 한 학기 내내 고민하며 완성해 나갔다. 그러다 과정의 마지막인 종합시험을 통과하면서 들었던 생각이 '아, 이제는 어떤 연구주제를 줘도 어떻게 시작해야 되는지 정도는 알겠다'는 것이었다. 주관식 몇 %, 객관식 몇 %를 정해주고 그 지침에 따르라는 일률적인 평가방식으로는 생각하는 힘을 기른다거나 문제해결능력을 신장시키기는 어려운 일이다.

세상이 이토록 바뀌었으니 정보가 학생의 머리속에 저장되어있는지를 평가하는 대신에 이정보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사건을 알고 있는가 대신에 그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가 등을 묻고 또 물어 생각하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 이 지점에서 김누리 교수의 주장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행복하고 유능한 연구자를 만들고 창의적인 창업자를 만들려면 대학의 서열화를 없애고 문턱을 낮춰서 학생들이 모두 자신을 실험할 기회를 주자. 그래도 나라는 끄떡없다. 오히려 행복하고 창의적인 나라가 될 것이다.

기막힌 과외를 시켜도 인간의 능력신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서열화된 대학을 평준화시키고 학생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 공부를 원하는 학생들은 모두 대학에 갈 수 있게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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