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김원웅의 반일(反日), 최진석의 극일(克日)

입력 2021.05.31. 11:44 수정 2021.06.01. 08:02 댓글 0개
강준만의 易地思之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반일은 감정 위주인 반면 극일은 실질 위주다

극일은 내부 갈등보다는 일본과의 선의의 경쟁에 의한 평화로운 복수, 즉 모든 면에서 일본을 압도하는 역량을 키우는 걸 지향한다

반일은 한국 내부의 친일파·친일잔재 청산에 집중하는 반면 극일은 친일파·친일잔재 청산이 정략적이거나 과격한 양상으로 흘러 내부 갈등을 격화시킴으로써 일본을 이길 수 있는 역량을 훼손하는 걸 우려한다

"나는 일본을 한 번은 이겨봐야 하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이다. 올해는 아직 못 갔지만, 몇 년전부터 일 년에 최소한 한 번은 정한론(征韓論)을 펼친 요시다 쇼인의 묘를 찾아간다. 내 의지가 약해지지 않게 하려는 뜻이다. 내 제자에게는 요시다 쇼인을 공부시켰다. 졸저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은 독자들은 내가 일본에 대한 복수심을 쓴 대목을 기억할 것이다."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가 최근 출간한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에서 한 말이다. 그는 그간 끈질기게 극일(克日)의 의지를 다져온 대표적인 극일론자다. 극일과 반일(反日)은 어떻게 다른가? 두 용어를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의미로 쓰는 경향이 있어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나는 정의 대신에 두가지 차이점만 지적하고자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임을 밝혀둔다.

첫째, 반일은 감정 위주인 반면 극일은 실질 위주다. 극일은 내부 갈등보다는 일본과의 선의의 경쟁에 의한 평화로운 복수, 즉 모든 면에서 일본을 압도하는 역량을 키우는 걸 지향한다. 둘째, 반일은 한국 내부의 친일파·친일잔재 청산에 집중하는 반면 극일은 친일파·친일잔재 청산이 정략적이거나 과격한 양상으로 흘러 내부 갈등을 격화시킴으로써 일본을 이길 수 있는 역량을 훼손하는 걸 우려한다.

반일과 극일, 그리고 다른 노선 중 어느 것을 택하건 그건 각자의 자유지만, 우리의 여론 지평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건 반일이다. 최 교수는 책에서 "우리에게는 친일 문제를 아무리 차분하게 보려 해도 그것이 적대적 분노를 표출하려는 것이 아니면 바로 '토착 왜구'로 의심부터 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개탄하면서 "특정 집단이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독점 이용하는 굴레에 갇히는 한, 극일의 길은 점점 멀어지고, 국가의 효율적 전진은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토착 왜구' 타령이 극성을 부렸던 때는 지난해 5월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로 시작된 정의기억연대의 횡령·배임 의혹 사건이었다. 당시의 반일 투사들에겐 공적인 회계 투명성 의혹을 제기하는 것마저 망국적인 친일 행위로 간주되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친일·반인권·반평화 세력의 최후 공세", "완전하게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나라의 슬픈 자화상", "지금 일본의 과거부정 세력들이 환호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느냐" 등의 논리를 전개했다.

이런 종류의 반일은 극일에 이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반일의 선의적 목표에도 해를 미치는 것이었지만, 그걸 인지하는 반일투사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건 마치 1950년대 전반 미국 사회를 '빨갱이 사냥'의 공포로 몰아갔던 '매카시즘'이 반공(反共)에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던 것과 비슷했다. 훗날 FBI의 방첩활동 책임자 로버트 람페어가 매카시즘을 진두 지휘한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에 대해 이런 증언을 남겼듯이 말이다. "매카시의 접근방법은 반공의 명분에 해를 입혔으며, 많은 자유주의자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활동을 위축시키려고 하는 정당한 노력에 대해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오남용된 '토착 왜구' 타령은 "'빨갱이'로 찍히면 어떡하나"라는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공포 마케팅'과 비슷하다. 반일 방법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친일 비호'로 낙인찍는 것은 결코 해선 안될 일이다. 이 점에서 대표적 반일론자인 김원웅 광복회장의 발언은 비판적 검토를 해볼 필요가 있겠다. 그는 올 3월 민주당에서 '국립묘지 친일인사 파묘법' 등 친일 청산 3법이 당론으로 채택되지 않은 것과 관련, "민주당 안에도 친일을 비호하는 소수의 사람, 정치인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제가 특정인을 직접 얘기하지 않는데, 서울 강북구에 있는 민주당 소속 P 국회의원이 그런 (그런 법을 왜 만드느냐는) 언행을 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실명을 밝힌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강북을이 지역구인 박용진 의원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친일파 파묘법과 관련 "세상이 빛의 속도로 변하는 상황에서 선도 국가로 가려면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로운 진영 대립을 낳을 수 있는 과거사의 무한 반복은 답이 아니다"라고 했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 '친일 비호'인가? 반일감정이 충만한 한국 사회에서 '친일 비호'라는 딱지가 정치인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걸 모를 리 없는 김 회장이 그런 식으로 반일의 칼을 함부로 휘둘러도 되는 건가?

김 회장은 자신도 과거에 토착왜구로 매도당할 수 있는 활동을 했었다는 걸 성찰하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게 아닐까? 최 교수는 책에서 김 회장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김 회장이 이 질문의 의미에 공감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모든 면에서 좀더 겸손해져야 할 이유나 근거로 삼으면 좋겠다. 최 교수는 "광복회장도 박정희의 공화당에 '자발적'으로 공채 시험을 봐서 들어갔고, 전두환이 주인 노릇을 하던 민주정의당에서 조직국장을 지내고, '토착 왜구'들이 득실댄다던 한나라당 의원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도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튼튼한 국가의 보호를 받던 사람도 생계 때문에 자발적으로 '토착 왜구' 틈으로 들어갔다. 그랬던 사람이 생계가 해결되고 나자 이제는 친일 인사들의 '파묘'까지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중략) 광복회장과 같은 사람이 식민지가 된 지 20년이나 지난 시점에 있다고 치자. 독립운동의 길을 갔을까, 아니면 친일파의 길을 갔을까? 광복회장과 같은 사람이 독립운동을 하러 집을 나서는 풍경이 정말로 그려지는가?"

영국 시인 T. S. 엘리엇은 겸손은 미덕 중에서 가장 터득하기 힘든 덕목이라며 "자기 자신을 높이려는 욕망보다 더 없애기 힘든 것은 없다"고 했다. 그렇긴 하지만, 이기심과 이타심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으며, 이타심도 겸손을 죽일 수 있다. 김 회장에게 자기 자신을 높이려는 욕망은 없을지라도 자신이 애국을 위한 이타적 활동을 한다고 믿는 순간 나라를 생각하는 다른 방법에 대한 인내심이 사라지면서 겸손하기 어려워진다. 부디 겸손하고 또 겸손한 광복회장으로 다시 태어나 자신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광복회 내부의 극단적인 분열부터 치유하기 위해 애써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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