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5·18과 박정희는 양립할 수 있을까?

입력 2021.05.26. 18:12 수정 2021.05.30. 19:41 댓글 1개
공진성 아침시평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5월 한 달 동안 많은 사람이 광주를 방문했다. 특히 보수 정치인들의 방문이 눈에 띄게 늘었다. 마침 5·18 기념식이 있기도 했지만, 그 전부터 이미 보수 정치인들이 부쩍 광주를 더 자주 찾고 있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5·18국립묘지에 와서 무릎을 꿇고 참배한 이후 이제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은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서나 선거가 끝난 후 5·18묘지를 맨 먼저 찾아오기까지 한다.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이나 하던 낯선 행동이다. 이런 '호남 껴안기' 행보 덕분인지 국민의힘 지지율이 이 지역에서 무려 두 배나 올랐다고 한다. 보수 정치인들의 이런 행보를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

그런데 이들 보수 정치인의 광주 방문 전후의 행적에는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마치 좌우 균형이라도 맞추려는 듯이 대구를 방문하고 구미에 있는 박정희 생가를 방문하는 것이다. 이런 행보는 사실 그들이 줄곧 주장해왔던 바의 표현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사의 두 주역인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의 공로를 모두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하다. 그래서 민주당의 일부 정치인들도 박정희 생가를 방문하기도 하고 현충원의 박정희 묘역을 찾아 참배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최근 보수 정치인들의 '호남 껴안기'는 광주와 5·18로 상징되는 민주화의 역사를 그동안 부정하거나 소홀히 여겨왔던 자신들의 과오를 씻고 새출발하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보수 정치인들이 5·18묘역을 찾고 진보 정치인들이 박정희 생가를 찾는 것이 국민을 통합하는 길이고 이념적으로 양극화한 정치를 정상화하는 길일까? 민주화의 역사와 산업화의 역사가 그렇게 간단히 정치인들의 교차 참배로 조화될 수 있는 것일까? 5·18로 상징되는 민주화의 역사가 단순한 민주화 과정이 아니었듯이 박정희로 상징되는 산업화의 역사도 단순한 산업화 과정은 아니었다. 그것은 쿠데타와 비상계엄, 긴급조치로 얼룩진 과정이었다. 국민의 권리와 자유가 일상적으로 침해되고 유보된 과정이었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가 유린된 과정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박정희의 산업화 공로를 인정한다고 해도 그 산업화는 경제발전을 위해 민주주의와 관련한 중요한 가치들을 훼손하고 짓밟은 과정이었다. 그런 산업화가, 그 산업화를 상징하는 박정희가 과연 5·18과 양립할 수 있을까?

5·18국립묘지에 와서 참배하는 보수 정치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의 죽음을 애도할까, 아니면 민주화의 과정에서 자신의 목숨을 바친 희생자의 숭고한 뜻을 기릴까? 보수 정치인들은 5·18의 교훈이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정부가 하지 말라는 짓을 함부로 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는 것, 아니면 국민의 자유와 생명을 위협하는 정부에 대해서는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맞서야 한다는 것?

나는 정말 궁금하다. 5·18과 박정희를 동시에 껴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혹시 시절 좋을 때만 할 수 있는 것이고 경제가 어렵거나 외적의 침략이 예상되면 또는 그 어떤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언제든지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그런 사치품 같은 민주주의를 위해 41년 전 5월 광주에서 시민들이 싸우다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5·18묘역을 방문하기 전이나 후에 박정희 생가를 찾아갈 수 있을까? 그곳에 가서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다시 그런 결단의 순간이 오면 자신도 박정희처럼 경제발전을 위해 민주주의를 유보하겠다고 다짐할까?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밥을 먹을 수 있다면 민주주의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맞선다고 '민주주의가 밥 먹여 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밥 안 먹여 주면 민주주의 안 해도 된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밥'이 상징하는 것은 생존이다. 그러니까 생존의 위협 앞에서 민주주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인간을 기껏해야 동물로 보는 시각이다. 5·18과 광주로 상징되는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인간에게 단순히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분명히 있음을 보여준다. 박정희와 5·18은 근본적인 대립이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srb7@hanmail.net전화 062-510-115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사랑방미디어'

최근 아침시평
댓글1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