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학교 밖 학교에서

입력 2021.05.24. 14:49 수정 2021.05.25. 19:14 댓글 0개
김홍식의 교단칼럼 전 광주서부교육장

무등산을 한 바퀴 도는 무돌길의 제1구간은 '싸리길'이다. 각화사거리에서 출발해 들산재(싸리재)를 넘어 등촌 마을에 이르는 소박하고 겸손한 구간이다. 얼마 뒤에 있을 무등산 환경대학의 무돌길 현장 교육을 위해 시간을 내어 미리 이곳을 찾았다. 벌써 수차례 걸었던 친숙한 길이지만 똑같은 길도 찾을 때마다 그 느낌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특히 누구와 함께 걷느냐에 따라서 더욱 그렇다.

손광은 시인의 '무등산 우러러 가슴 설렌 아침은 황홀한 해가 뜬다'는 여운을 가슴 벅차게 안고 각화저수지에 이르니 맑은 물속에 주변 풍경이 소리 없이 그대로 풍덩 빠져 있다. 한 장의 명품 데칼코마니! 더불어 오동꽃과 아카시꽃, 찔레꽃도 5월의 푸르름 속에서 낯익은 길손을 반갑게 맞이한다. 여기저기서 눈길을 끄는 작은 풀꽃들도 저마다 제 시절 앞에서 당당하다.

저렇게 누가 애써 가꾸지 않아도 때를 알고 피어나 자랑스럽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걸 보면 새삼 꽃과 나무들이 참으로 위대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뿌리 내린 땅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불평하거나 스스로 옮겨갈 수조차 없는 운명 아닌가? 그러니 '존재에 감사하라'는 어느 학교 교훈이 정언명령(定言命令)처럼 압도해 온다.

그렇다. 저 하나하나는 다른 존재와 굳이 비교의 대상이 아닐 뿐만 아니라 구차하게 그럴 이유나 필요성도 없다. 각자 자신만의 빛깔과 향기로 세상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장미가 예쁘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꽃이 장미꽃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장미는 장미, 개나리는 개나리, 민들레는 민들레대로 예쁘고, 좋아하는 사람도 저마다 다르니까 말이다. 남의 생각과 기준으로 애 터지게 비교하면서 앞다투어 경쟁하며 스스로 작아지고 초라해질 일은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늘은 단 한 사람도 쓸모없는 사람을 세상에 내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잘 찾아보면 누구나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재능과 역할을 분명히 갖고 태어난다. 그렇다면 학교 교육도 학생 개개인의 개성과 재능을 제대로 찾고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다양하게 마련해서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온전히 집중할 필요가 있다. 산업화 시대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대량생산 같은 교육은 이제 시대의 뒤안길로 조용히 물러나야 할 때다. 제4차산업혁명이 시대적 화두로 등장한 이 시점에서 이제 학교 교육은 유능한 시대전환이라는 크고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이끌고 금방 무등산 조망이 탁월한 들산재에 이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무등산은 하나의 거대한 연꽃이요 화엄이다. 주변의 산자락이 영락없는 꽃잎으로 겹겹이 정상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다. 멀어질수록 커지고 다가설수록 깊어지는 무등산! 그래서 무등산은 그냥 산이 아니라 포근한 어머니의 가슴이다. 무등산에 눈이 세 번 내려야 시내에 눈이 오고, 정상의 눈이 모두 녹아야 영광 칠산 앞바다에 조기떼가 찾아온다는 말처럼 무등산은 광주·전남 시·도민들의 삶 속에도 뿌리 깊이 내려 있다.

여기서 지척에 있는 학교에 근무할 적에 이곳은 울타리 밖에 있는 또 하나의 확장된 학교였다. 이 길을 아이들과 함께 오르내릴 때가 무척 행복한 시절이었다. 아이들도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마다 그 이름을 찾아서 자신의 이름표와 같이 붙여 놓고 살피는가 하면, 사람들이 눈길 한번 주지 않는 풀과 나무에도 허리 굽혀 세심한 관심을 보이곤 했다. 매주 한 번씩 들산재 쉼터까지 길 따라 걸으며 주변의 쓰레기를 하나 없이 줍기도 했다. 그뿐인가? 산길에서 만난 동네 어르신들께 살가운 인사를 하며 자신의 호주머니 속 알사탕 하나를 머뭇거림 없이 건넬 줄 아는 속 깊은 아이들이었다.

사랑과 감사의 달 5월에 무등산 자락 이 길에서 문득 당시의 녀석들이 소중하게 소환되어 오는 것도 계절이 주는 또 하나의 따뜻한 선물이다.무등산 자락에서 무등산을 품고 무등산과 호흡하며 자란 아이들이다. 산을 닮아 무등산만큼 크고 넉넉하게, 그리고 나무를 닮아 불평 없이 성장한 아름드리모습으로 언제쯤 이 길에서 다시 한번 '짠!' 하며 기분 좋게 조우할 날이 꼭 있겠지?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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