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우리들의 일그러진 강성범

입력 2021.05.24. 12:51 수정 2021.05.25. 08:30 댓글 0개
서민의 開소리 단국대 교수

그가 이젠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다른 지역을 비하하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그를 보면서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에게 더 잔인했던 친일파를 떠올리는 건 너무 나간 것일까?

피해자 마음은 전직 피해자가 더 잘 알기 마련, 강성범의 망언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 이왕이면 전라도에서 나오길 빈다

그래야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조금은 더 옅어질 수 있을 테니까

"고등학교는 어데 나왔노?" 사귀던 여성의 어머니가 이 질문을 하셨을 때만 해도 난 자신만만했다. 그리 유명한 학교는 아니지만, 그래도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음 질문에 난 말문이 막혔다. "고향은 어데고?" 비슷한 장면을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날 이후에도 여러 번 경험했지만, 대답할 때의 두려움은 줄어들지 않았다. "광주입니다." 어머니의 얼굴이 굳어졌다. "전라도 광주?" 그렇다고 하자 침묵이 흘렀다. 어머니는, 다시 내 아버지 고향을 물었다. 자기 딸과 사귀는 것을 허락할 명분을 찾으려는 배려였지만, 여기서도 난 어머니를 실망시켰다. "전북 전주입니다." 어머니의 얼굴은 이제 창백해졌다. 잠시 뒤 어머니는 딸과 이야기를 하겠다며 나더러 그냥 가라고 하셨다. 늦은 밤 쓸쓸히 집에 돌아가며 스스로를 원망했다. 왜 나는 전라도에서 태어났을까?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이 꼭 여자 쪽 집안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었기에, 난 시시때때로 심판대에 올랐고, 대답 이후 어김없이 이어지는 침묵에 주눅이 들곤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난 나름의 방어기제를 만들었다. "그게요, 아버지가 공무원이셨는데, 광주에 발령받은 뒤 저를 낳으셨거든요. 광주에선 2-3년도 안 살았어요. 세 살 때인가 네 살 때인가 속초로 옮겨갔고, 다섯 살 때쯤 서울로 올라왔거든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좀스럽고 민망한 방어기제, 실제로 많은 전라도 사람들이 이렇게 고향 세탁을 한단다. 약간의 명성을 얻고 나자 모 포털 사이트에서 내 정보를 등록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거기서 요구한 정보에는 출생지도 있었다. 망설임 끝에 '광주'라고 기입했는데, 나중에 그걸 본 가족 한 분이 나중에 이런 요구를 했다. "포털에 나온 출생지 말야. 그거 비공개로 바꾸면 안돼? 본인이 원하면 그렇게 해준대." 난 그의 말에 따랐지만, 그건 미봉책일 뿐 내 고향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을 때, 어떤 이들은 댓글에서 이런 의심을 했다. "서민 쟤, 고향이 혹시 그쪽 아니야? 글 보니까 딱 냄새가 난단 말야." 그 말에 가슴이 뜨끔했던 걸 보면, 고향에 대한 컴플렉스가 생각보다 심했던 모양이다.

이런 컴플렉스가 저절로 생긴 건 아니다. 전라도에 대한 폄하는 거의 일상이었다. 특히 끔찍한 사건의 범인이 전라도 사람인 경우, 포탈사이트의 댓글은 '역시 전라도'로 도배가 됐다. 학부모란 자들이 여선생을 집단 성폭행한 '섬마을 교사 성폭행'은 그 대표적 사건, 여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기사엔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그냥 신안 자체를 없애면 되지 않을까?" "전라도를 따로 독립시켜야죠." 이런 얘기를 하는 건 비단 익명의 네티즌들만은 아니어서, 몇 년간 알고 지낸 지인은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전라도 사람들은 좀 그렇지 않나요?" 물론 전라도 출신인 것에도 나름의 즐거움은 있었다. 평소 좋아하던 분이 전라도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 정확한 기억인지 모르겠지만, 고종석 선생은 자신의 저서 '서얼단상'에서 자신이 전라도 출신이라 소외된 이에 대한 감수성이 발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술자리 같은 데서 말없이 있는 이가 있을 때 가서 말을 붙이려고 애쓰는데, 이것 역시 전라도의 감수성일지도 모른다며 혼자 좋아하기도 했다. 그런 장점이 있다해도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 사회의 주류인 경상도까지는 아닐지라도 강원도나 제주도, 충청도 등등 전라도를 제외한 곳에서 태어나고 싶었다.

이상한 현상이 감지된 건 정권이 바뀐 뒤부터였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다 몰표를 던져도 전자만 욕을 먹었던 게 그간의 관례였지만, 정권교체 이후부턴 보수에게만 표를 준다는 이유로 대구·경북이 적폐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심지어 친정권 인사들은 해당 지역을 대놓고 폄훼했다. 2020년 2월 20일, 친문 역사학자 전우용은, 신천지 사태로 인해 코로나19 환자가 다수 발생한 대구를 향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일본에는 한국의 질병관리본부 같은 기관이 없어 비전문가가 상황을 통제한다. 대구에는 법적으로 2명이 있어야 하는 역학 전문가가 1명밖에 없어 의사 면허도 없는 시청 직원이 역학조사를 담당한다. 대구시민들은 자기 도시가 왜 아베의 일본과 비슷한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겁니다." 사실관계도 틀린 것도 문제지만, 역병으로 고통받는 도시를 향해 이런 말을 하는 건 너무 잔인했다. 논란이 일자 전우용은 사과했지만, 대구에 또다시 집단감염이 일어난 3월 27일, 그는 또 이런 트윗을 올린다. "대구에 확진자가 유독 많은 게 신천지 때문이라고만은 볼 수 없게 됐다. 무슨 짓을 해도 되는 곳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이쯤 되면 전우용은 확신범이고, 그의 사과는 여론을 의식한 것에 불과한 것 같다. 역시 친문인사인 김정란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한 직후 SNS에 다음과 같은 게시글을 남긴다. "대구는 독립해서 일본으로 가시는 게 어떨지…귀하들의 주인 나라 일본, 다카키 마사오의 조국 일본이 팔 벌려 환영할 겁니다."

오랜 기간 지역감정의 피해자로 살아온 난 이런 글들에 화가 났다. 저 말을 듣는 대구 시민들의 마음이 어떨지 겪어봐서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라도 사람이 다 나 같은 마음은 아니었나보다. 국민의 힘 당대표에 출마한 이준석에게 아버지가 화교라는 음모론이 제기된 바 있다. 이준석은 부모 모두 대구 출신이라 해명했는데, 친문 개그맨 강성범은 자신의 유튜브에서 이걸 다음과 같이 조롱했다. "이 전 최고위원이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다 대구 분이라고 해명을 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 얘기를 듣고 (대구보다는) 화교가 낫지 않나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강성범은 전남 영암 출신,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출신지로 인해 듣지 않아도 될 욕을 먹으며 살았을 것이다. 1년쯤 전 '지긋지긋한 지역감정'이라 푸념한 적도 있었으니, 그가 그 아픔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랬던 그가 이젠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다른 지역을 비하하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그를 보면서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에게 더 잔인했던 친일파를 떠올리는 건 너무 나간 것일까? 피해자 마음은 전직 피해자가 더 잘 알기 마련, 강성범의 망언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 이왕이면 전라도에서 나오길 빈다. 그래야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조금은 더 옅어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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