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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평생 동반자' 이희호 여사, 97세 일기로 영면에 들다
'김대중 없이 이희호 없고, 이희호 없이 김대중 없어'
김 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민주화 투쟁에선 동지
유신독재와 신군부 탄압에 맞서며 김대중 적극 구명
입력시간 : 2019. 06.11. 06:06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손을 흔들고 있다. 2017.09.14.
대중 전 대통령의 평생 동반자였던 이희호 여사가 10일 오후 11시37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는 이날 뉴시스와 통화에서 "이 여사가 오늘 오후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하셨다"고 전했다.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 여사는 이화여고와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6·25전쟁 뒤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국내에서 여성운동가로서 여성인권운동을 이끌었다.



이 여사의 삶은 1962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부의 연을 맺으면서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이 여사는 이후 김 전 대통령의 인생 동반자이자 정치적 동반자로, 김 전 대통령과 함께 '행동하는 양심'으로 현대사의 거친 길을 걸어왔다.



'이희호가 없는 김대중을 생각할 수 없고, 김대중 없는 이희호를 생각할 수 없다'고 이야기할 만큼 두 사람의 사이는 각별했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에서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SY44)에 뒷머리 피격 당한 후 27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7월 5일 사망한 고 이한열 씨의 분향소 모습을 기록한 사진가 윤석봉 씨가 6.10 민주 항쟁 30주년 맞아 뉴시스에 사진을 제공했다.사진은 1987년 7월 5일 당시 김대중 통일민주당 상임고문이 이희호 여사와 분향하고 있다. 2017.06.08. (사진=윤석봉 제공)(* 위 사진은 재배포, 재판매, DB 및 활용을 금지합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민주화 투쟁 일선에 나설 때 정신적 지주로서 그를 지지했다. 본인 역시 민주화 투쟁 동지로서 역할을 다했다.



이들의 힘든 여정은 1971년 김 전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과 붙은 대선에서 46% 득표로 선전했지만 낙선하면서 시작됐다.

1972년 유신 독재가 시작되고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라이벌'로 불렸던 김 전 대통령은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 여사는 당시 정보기관의 감시를 피해 김 전 대통령에게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며 그를 지지하기도 했다.



1973년에는 '김대중 도쿄납치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이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된 큰 시련이 왔지만, 이를 이겨내게 한 것도 역시 이 여사의 도움이었다.



그러나 이후 김 전 대통령이 정치 활동을 금지 당하고 가택연금, 옥고를 치르면서 이 여사도 함께 고난의 시간을 보내게 됐다.



1979년 박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 잠시 정치 활동이 재개됐지만,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1980년 김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 사건으로 수감되고 사형을 선고받으면서 다시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이 여사는 이 고난의 기간 유신 독재와 신군부의 탄압에 맞서 싸웠으며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 이 여사는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정권과 타협하지 말라며, 김 전 대통령이 신념을 지키도록 힘을 줬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이 옥고를 치르고 죽음 앞에 설 때마다 전 세계 유력 인사들에게 호소력 짙은 편지를 보내 구명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1997년 12월 김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이듬해 2월부터 2003년 2월까지 영부인으로 청와대 생활을 했다. 이 기간 국민의 정부에서 행정부 최초로 여성부가 설치되는 데 기여를 하기도 했다.



이 여사는 지난 2009년부터 김대중 평화센터 이사장으로 지내며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아 남북관계와 평화 증진, 빈곤 퇴치 등을 위해 힘썼다.



그러나 이 여사는 지난 3월부터 병세가 악화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과 동교동계 등은 이 여사의 병세가 악화될 것을 염려해 지난 4월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의 별세 소식도 전하지 않았다.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는 "이 여사의 장례 방식이나 절차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서울=김현수기자.뉴시스



[전문]文대통령 고(故) 이희호 여사 추모 페이스북 메시지

오늘 이희호 여사님께서 김대중 대통령님을 만나러 가셨습니다. 조금만 더 미뤄도 좋았을 텐데, 그리움이 깊으셨나봅니다. 평생 동지로 살아오신 두 분 사이의 그리움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여사님 저는 지금 헬싱키에 있습니다. 부디 영면하시고, 계신 분들께서 정성을 다해 모셔주시기 바랍니다.



여사님은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의 배우자, 영부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1세대 여성운동가입니다.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원 등을 창설해 활동하셨고, YWCA 총무로 여성운동에 헌신하셨습니다. 민주화운동에 함께 하셨을 뿐 아니라 김대중 정부의 여성부 설치에도 많은 역할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여성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한명의 위인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여사님은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를 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 하실 정도로 늘 시민 편이셨고, 정치인 김대중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만들고 지켜주신 우리시대의 대표적 신앙인, 민주주의자였습니다.



지난해 평양 방문에 여사님의 건강이 여의치 않아 모시고 가지 못해 안타까웠습니다. 평화의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는데 벌써 여사님의 빈자리가 느껴집니다. 두 분 만나셔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겠지요. 순방을 마치고 바로 뵙겠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평화를 위해 두 분께서 늘 응원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연보]DJ의 영원한 동반자이자 여성운동가, 이희호의 발자취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오후 11시37분께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는 이날 뉴시스와 통화에서 "이 여사가 오늘 새벽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하셨다"고 전했다.

다음은 이희호 여사의 연보(年譜).

▲1922년 9월21일 조선 경기도 경성부 수송정(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 출생

▲1940년 3월 이화여자고등학교 졸업

▲1944년 3월 이화여자 전문학교 여자청년양성소 지도원 양성과 졸업(당초 문과 입학 후 교육비상조치로 전과)

▲1944~1945년 충남 삽교 공립 국민학교 부설 여자 청년 연성소 지도원

▲1950년 5월 서울대 사범대 교육과 학사 졸업

▲1952년 11월~1953년 여성 문제 연구원 발기 및 간사

▲1954년 9월~1956년 5월 미국 램버스 대학(Lambuth College) 수학(修學)

▲1958년 5월 미국 스카릿 대학(Scarritt College) 사회학 석사학위

▲1958·1963·1965년 이화여자 대학교 사회사업과 강사

▲1959~1962년 대한 YWCA 연합회 총무

▲1961~1970년 한국 여성 단체 협의회 이사

▲1964~1970년 사단 법인 여성 문제 연구회장

▲1964~1982년 대한 YWCA 연합회 상임위원

▲1968~1972년 범 태평양 동남아시아 여성연합회(Pan Pacific South-East Asia Conference) 한국지회 부회장

▲1993~1998년 더불어 선교회 이사장

▲1994~1997년 아시아 태평양 평화재단 이사

▲1998년 2월25일~2003년 2월24일 제15대 대한민국 대통령 영부인

▲1998~2002년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 명예 총재

▲1999~2002년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 명예회장

▲1999~2002년 한국 사랑의 집짓기 운동연합회 명예이사장

▲1999~2002년 대한암협회 명예회장

▲1999~2002년 한국방문의 해 추진위원회 명예위원장

▲2000년 6월12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평양 남북정상회담 동행

▲2000~2002년 (재)한국여성재단 명예이사장

▲2001~2002년 세종문화회관후원회 명예총재

▲2001~2002년 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 명예이사장

▲2002년 유엔 아동특별총회 임시의장 및 기조연설

▲2003년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 고문

▲2005년~ 외환은행 '나눔의 재단' 이사

▲2007년 8월12~14일 금강산 관광 위해 방북

▲2007~2009년 9월 김대중평화센터 고문

▲2009년 8월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별세

▲2009년 9월10일~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2011년 12월26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조문 위해 육로로 방북

▲2015년 8월5일 방북

▲2018년 12월26일 건강 문제로 김대중 평화센터 신년 하례식 취소

▲2019년 3월 건강 악화로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 입원

▲2019년 4월21일 장남 김홍일 전 국회의원 사망

▲2019년 6월10일 오후 11시37분 숙환으로 별세


뉴시스 zmd@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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