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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칼럼- 거울이라는 지느러미
입력 : 2019년 05월 28일(화) 00:00


김현주 광주인성고 교사

국어 수업 중 발표 시간이었다. 자신의 삶이나 꿈을 주제로 하여, 주제와 관련된 세 개 내지 다섯 개의 단어를 제시하며 발표를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나온 학생은 거울을 첫 단어로 제시하였다. 며칠 전 거울을 보는데 자신이 안 보였다고 했다. 거울에서 빛을 잃은 눈동자와 핏기 없는 입술로 서 있는 낯선 이를 보았단다. 여느 때처럼 등교를 서두르는 시간 한번 쓱 보고 지나치는 거울 앞에서 순간 발을 멈추게 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안쓰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 친구는 그 거울 속 친구에게 말 걸기를 시도했고 그 친구와 머리 맞대고 버킷리스트를 적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삶에 희망과 꿈이라는 생기를 돌려 주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총 다섯 가지의 버킷리스트 내용 중 다섯 번째가 배를 타고 가서 고래나 상어의 등을 만져 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 꿈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고래를 만나는 것이 혼자만의 바람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연이 닿는다면, 상어까지는 어렵더라도 고래를 품고 있는 그 어느 바다에서 언젠가 천천히 깊은 숨을 뱉어 내며 그 거대한 고래가 물 위로 떠오르는 시간을 배와 함께 흔들리며 기다리다가 그 학생이 맑은 바다에 비추어 보는 자신의 얼굴은 며칠 전 거울에서 만난 얼굴과는 다를 것이다. 그리고 조심히 손을 뻗어 어느 심해의 어둠과 시간을 가르며 떠오른 고래의 지느러미와 악수할 수 있길 바란다. 그 순간이 앞지느러미 안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고 버리지 않고 간직해 온 고래의 다섯 손가락처럼 그 학생도 결코 퇴화한 것이 아닌, 마음 깊이 간직해 온 것들과 마주하는 시간이길 바란다. 그렇게 오늘 거울 속의 자신을 위로할 수 있기를….

인간이 그렇듯 고래도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을 할 것이다. 자신의 울음소리를 이용하기도 하고 어떤 고래는 초음파를 이용하기도 한다. 볼 수는 없지만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반응하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고래의 모습에는 무한한 신뢰가 전제되어 있는 것 같다. 신뢰는 소통에서 온다. 그래서 수업 시간의 기본은 소통이다. 수업 중 학생들이 대화하거나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 입으로 보고, 입으로 듣는 태도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의 글을 읽거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표현하여 보면서 듣기와 읽기는 완성된다. 눈으로 보기만 하고 귀로 듣기만 해서는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입으로 보고 듣는 것은 확인과 이해가 전제되어 있고 듣는 이의 정성이 담겨 있다고 본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의 울음 소리에 배가 고픈가 보구나, 기저귀를 갈아 달라는 거구나 하며 대개 입으로 듣는다. 세상과 소통을 시도하는 아이의 첫 울음이 언어의 시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해하고 있고 그렇게 입으로 보고 입으로 들으면서 관계를 형성한다. 그 능력을 길러 가는 것도 수업에서는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친구의 이야기에 질문하고 긍정점을 찾아 입으로 듣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지만 우린 곧잘 이것을 놓치고 만다.

오월의 막바지, 고3 교실은 다음 주에 있는 유월 평가원 시험 준비가 한창이다. 수시 지원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 다가 오는 정시 대비에 자신을 보완할 점을 찾는 시간이 되기 때문에 매우 강조가 되는 시험이다. 이 시험 앞에서, 다가오는 수능 앞에서 우리 학생들은 잠시 자신이 간절히 해보고 싶은 다섯 가지 바람을 대학 입시와 진학이라는 망망대해를 헤쳐 가기 위해 지느러미에 감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귀기울이지 않아서 초음파가 되어버린 소리로 희미하게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느러미의 힘은 그 손가락에서 나온다. 희망과 꿈이 퇴화하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갈 이유와 동기가 있다. 거울 앞에서 자신을 잃었다 느낀 그 학생의 수정체에 우리를 비춰보게 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