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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하)5월 묘역에 안장될 ‘5·18 전도사’ 서유진 선생
입력 : 2019년 05월 24일(금) 00:00


그는 아시아는 물론 미국에서 광주의 5월을 알리는데 앞장섰다. 그날의 학살, 민주주의의 유린, 억압받던 인권을 국외인들에게 알려주며 평생을 보냈다. 해외에서 그날의 진실과 정신, 가치를 설파해온 ‘5·18 전도사’ 서유진 선생이 그랬다.

아시아와 미주의 수많은 나라 시민들은 그로 인해 광주의 5월을 바로 보게 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생각하게 됐다. 선생은 전북 완주군 삼례 출신으로 1970년대 미국으로 이민해 광주와 직접적인 인연은 없었다. 하지만 5·18 이후 광주의 5월에 관심을 갖고 1982년부터 미주 민주회복통일연합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는 등 국외에서 ‘5·18 전도사’ 역할을 해왔다.

특히 신군부의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 시절, 지근거리에서 함께하며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투쟁에 나섰다. 그리고 1992년 귀국해 1994년부터 광주시민연대에서 활동했다.

1998년 이후 홍콩에 본부를 둔 아시아인권위원회(AHRC)의 특별대사로 스리랑카, 미얀마, 캄보디아 등 아시아 각국 현장에서 5·18정신을 전파하며 인권 증진 활동을 펼쳐왔다. 그 해 광주 아시아인권헌장 선포식에도 큰 역할을 했다. 선생은 5·18 광주정신 세계화 및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등에 기여한 공로로 2018년 오월 어머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선생은 최근까지 광주에 머물다 신병 치료차 미국 볼티모어의 자택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5·18민주화운동 39주년을 이틀 앞둔 지난 16일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광주시와 5·18기념재단, 5·18 3개 단체, 광주시민단체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5·18구묘역 안장심의위원회’는 지난 22일 선생의 5·18구묘역 안장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그는 자신이 했던 일에 어떠한 지위도, 어떠한 상(償)도 바라지 않았다. 그가 있었기에 5월의 진실이 세계에 알려지고 광주가 억압과 핍박을 딛고 세계적인 인권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 고마움에 답하고 정신을 기리는 5월 묘역 안장은 당연하다. 선생은 하늘의 별이 되어서도 5월의 진실을 알리는 일을 멈추지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