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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 그를 추억하다
입력시간 : 2019. 05.23. 00:00


※사진출처 노무현 재단
5월23일. 5·18에 이어 우리의 마음은 또다시 경건해진다.

가신지 벌써 10년. 그를 추억하기엔 우리의 마음이 아직도 무겁다.

그가 남긴 발자취와 과제가 우리의 마음을 곧추세운다.

새로운 그를 만나기 위해 다시 한번 기억을 되돌린다.



지역주의 타파의 선봉장이 되다

영·호남 ‘화합’의 꿈 정치사 큰 족적

당선 가능성 높은 종로 포기 부산행

‘원칙의 힘’ 광주 선택으로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국 정치사에 남긴 대표적 유산 중 하나는 '지역주의 타파'다.

1990년 3당 합당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을 따라가지 않은 것은 지역주의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3선, 4선 편한 길을 제쳐두고 어려운 길을 택했다. 4번씩 떨어지면서도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동서통합을 이루겠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5공청문회 스타'였던 노 전 대통령이 지역주의 타파에 정치 인생을 걸었다고 국민이 인식한 시기는 2000년 제16대 총선이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지역구였던 서울 종로를 마다하고 부산 강서구을에 출마했다. 종로에 출마하면 당선 확률이 높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의원이란 명예까지 얻는데도 스스로 포기했다.

더구나 노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1992년 14대 총선과 1995년 지방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한 바 있다. 한때 '야도'였던 부산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여도'로 변했다. 소신과 원칙을 지키려고 통일민주당에 남은 노 전 대통령은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지역 대결의 정치가 이 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지역구도 때문에 영남 대통령이 호남에 가면 구 의원도 안 되고, 호남의 대통령은 이 부산에 오면 구 의원도 되지 않는 이런 정치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정치가, 나라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영남과 호남의 반쪽 지도자가 아니라, 전 국민을 하나로 묶는 통합과 화합의 지도자가 되겠습니다."(2000년 4월2일 부산 강서구을 후보자 합동연설회)

지금도 회자되는 노 전 대통령의 연설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선거에서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에게 패했다. 비록 낙선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지역주의 타파 노력에 감동한 국민은 그에게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을 줬고, 정치인 팬 클럽 시초인'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노사모)'를 만들었다. 이 같은 원칙의 힘으로 노 전 대통령은 광주의 선택을 받고 결국 대통령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도 지역주의 장벽을 허물고 국민통합의 새 시대를 열어가길 희망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 희망은 이제 조금씩 이뤄지고 있고 우리의 남은 과제이기도 하다. 서울=김현수기자 cr-2002@srb.co.kr



국가균형발전에 매진하다

신행정수도·혁신도시 등

지방화·국가균형발전 선포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신행정수도 건설'을 공약으로 내면서 국가균형발전 구상을 본격화했다. 그리고 재임 내내 이를 실행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수도권에 집중된 인구와 자원을 지방으로 분산, 국가경쟁력을 올리기 위해 매진했다. 쉽지는 않았다. 보수층과 수구 언론이 중앙집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는 정치 활동 내내 맞선 지역주의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역주의의 근본에 지역간 불균형 발전이 자리잡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출범 초에 국가균형발전특별법·지방분권특별법·신행정수도특별법(이 법은 2004년 위헌 결정으로 2005년 5월 행복도시특별법이 제정) 등 관련법과 균형발전특별회계 등 제도를 정비하고 대통령 산하에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꾸렸다. 그리고 2003년 6월12일 '대구 구상'을 통해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청사진을 내놓았다. 또 그 이듬해인 2004년 1월29일에는 '지방화와 국가균형발전시대 선포식'도 했다.

참여정부는 지방화와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세 가지 원칙으로 ▲신행정수도 건설과 지역 균형발전 추진 ▲지역혁신체계와 혁신주도형 지방경제 구축 ▲지방 우선 육성과 수도권의 계획 관리 등을 세웠다.

2004년 위헌 논란을 겪은 신행정수도 건설은 그 이듬해부터 청와대와 국방부를 비롯한 행정 기능의 일부를 서울에 남기고 나머지를 옮기는 것을 뼈대로 한 행정중심복합 건설로 바뀌어 추진됐다.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애초 신행정수도에 못 미치는 '반쪽짜리'였지만 보수세력들은 '위헌 주장'을 했다. 또 다시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이 청구됐으나 2005년 11월24일 헌법재판소가 '각하 결정'을 내림으로써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또 노 전 대통령은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라 2007년 수도권을 뺀 전국 광역시·도 10곳에 혁신도시를 지정했다. 공기업, 준정부기관 등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분산해 수도권 인구를 분산시키고 지역 경제를 활성시키겠다는 목표에서다. 광주전남혁신도시도 이중 하나다.

유대용기자 ydy2132@srb.co.kr



바람을 거슬러 날았던 큰 새, 盧와 DJ

88년 5공청문회서 인연 시작

20여년간 민주화 여정의 동지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중략) 당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지켜냅시다.(중략) 당신같이 유쾌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탁월한 식견을 가진 그런 지도자와 한 시대를 같이했던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저승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꺼이 만나서 지금까지 하려다 못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2009년 5월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정부의 반대로 읽지 못한 김대중 전 대통령(DJ) 조사의 마지막 부분이다. 둘은 방향이 다를 때도 있었으나 언제나 뜻은 같았다.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더 나은 세상을 꿈꿨다.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첫 만남은 1988년 국회 내 식당에서 이뤄졌다. 당시 초선인 노 전 대통령은 5공 청문회 스타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DJ가 먼저 악수를 청하며 "(청문회) 잘 했어요"라고 칭찬하자 노 대통령은 "저 말이 진심일까?" 의심하면서도 어깨가 으쓱해질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두 사람의 동행은 1991년 민주당과 신민당 합당을 통해 본격화된다. 1990년 충격적인 3당 합당에 분노해 잔류한 의원 8명이 모인 '꼬마 민주당'과 DJ의 신민당이 합당한 것이다. 둘의 나이 차는 아버지와 아들뻘이지만 노 전 대통령은 언제나 거침없었고 DJ는 그 뜻을 존중하며 동지로 함께했다고 주변에서 전한다.

1995년 6·27지방선거 이후 민주당은 신민당과 통합 4년 만에 다시 분당했다. 김 전 대통령이 정계에서 복귀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는데 노 전 대통령은 민주당에 잔류했다. 그리고 다음 해 총선 패배 후 '개혁과 통합을 위한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를 결성한다. 그러다 1997년 대선의 해로 접어들면서 정치권이 요동치자 대선 한 달을 앞두고 DJ 곁으로 갔다. 정권교체 성공 후 노 전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에 임명돼 국정운영의 전반을 배우기도 했다.

2002년 대선에 승리한 노 전 대통령은 DJ정부의 많은 정책을 계승했지만 집권 초기 대북송금 특검, 남북문제 등으로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나던 날 DJ는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다"고 아파했다. 김성희기자 pleasure@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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