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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증언 파장- 39년만에 나온 진실의 조각…“광주 진상 밝힐 마지막 기회”
김용장씨 증언에 힘 실린 진상규명
조진태 상임이사 “추가 조사” 촉구
입력시간 : 2019. 05.14. 00:00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왼쪽)가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5·18 당시 미 육군 방첩부대(501 정보여단)의 김용장 군사정보관(오른쪽)과 허장환 전 보안사 특명부장의 특별기자회견에 참석, 악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미육군 501 정보여단에서 25년간 정보요원으로 활동했던 김용장씨가 13일 국회에서 “5·18은 당시 신군부 수장인 전두환이 권력찬탈을 위해 계획한 시나리오며 광주를 방문해 사살명령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증언해 파장이 일고 있다.

 이날 김씨의 증언이 지난 39년간 역사 왜곡·폄훼 세력에 의해 조각난 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하나로 완성해 자유한국당의 반발로 제동이 걸린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출범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김씨는 “광주 진상을 밝힐 마지막 기회다. 지난 39년간 아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얘기들이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씨는 극우 논객 지만원 등이 주장하고 있는 북한 특수군 침투설은 “허위 날조다”고 단언했다. 그는 “당시 한반도 상공에는 두 대의 군사 첩보 위성이 떠 있었는데 북한군 600명이 미국의 첨단 감시망을 피해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당시 담양쪽에서 한국군의 수상한 움직임이 있었는데 현장에 가서 확인해보니 야산을 깎아 부대를 만드는 중이었다. 위성사진과 비교했더니 정확히 일치했고 그때 만났던 사람이 제7공수여단장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일명 편의대라 불리는 시민행색을 하던 사복군인 실제 존재했다고도 증언했다.

 그는 “5월20일 성남비행장에서 C130을 타고 광주비행장으로 30~40명이 왔고 비행기 격납고에서 2~3일 주둔했다”며 “첩보 입수후 격납고로 찾아가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나이는 20~30대로 짧은 머리에 일부는 가발을 썼고 거지처럼 넝마를 걸친 사람도 있었다고 비교적 상세한 당시의 목격담을 전했다.

 김씨는 “이들을 광주로 보낸 사람이 전두환의 보안사령부였고 이들이 북한 특수군이 했다는 방화, 총격, 장갑차 군수송차량 탈취 등을 유선봉에서 유도하거나 직접 벌인 소행이라 추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언비어 유포도 이들이 시민으로 위장해서 벌인 공작이며 광주시민을 폭도로 만든 후 강경진압의 빌미를 만들기 위해 고도의 공작을 펼친 것이다. 이들의 실체가 밝혀진다면 광주의 모든 의문이 풀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80년 5월21일 전두환이 정오께 광주 제1전투비행장(K57)로 헬기를 타고 왔다고도 밝혔다.

 그는 “당시 비행단장실에서 당시 특전사령관과 505보안부대장 등 4명이 회의를 했다.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모르지만 오후 1시 도청 앞 집단 사살이 이뤄졌고 이런 것들을 감안하면 전두환 방문 목적은 사살 명령이었다는 게 저의 합리적인 추정이다”며 “헬기를 타고 왔기 때문에 비행계획서가 있고 파기 하지 않았다면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 외에도 “광주국군통합병원 시신소각, 헬기사격, 광주교도소 습격, 공수대원들에 의한 성폭행, 이런 것들이 제 첩보에 들어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김씨의 증언에 대해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당시 광주에서 활동한 미 정보요원이 해외에서 입국해 5·18 의혹에 증언했다는 큰 의미가 있다”며 “전두환이 사격 명령을 내렸을 것이란 정황을 뒷받침하는 추가 조사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앞으로 출범할 5·18 진상규명위원회가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민주당 광주시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전두환과 신군부의 추악한 범죄의 진실이 밝혀지고 있다”며 “진상규명을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서충섭기자 zorba85@srb.co.kr·김성희기자

 

- 일문일답

-600명 북한군 특수부대 침투설 허위 등은 자신이 목격한 내용인지, 들은 내용인지 궁금하다.

 ▲600명이 오려면 30척의 잠수정이 필요하다. 당시 북한에 이만큼 없다. 1980년도 강릉으로 침투했다는 것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600명 속에 4살 먹은 여자아이도 있다는데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600명 북한 특수군 침투설은 얘깃거리도 되지 않아 다루지 않았다.

 편의대를 남한특수군이라고 제가 말씀드렸다. 직접 목격했다. 거지 옷을 입고 있었고 큰 가발을 쓰고 있었다. 얼굴도 새카맣게 탔다. 이 사람들 역할이 시내 데모 군중에 들어가 ‘경상도 군인 광주시민 다 죽이려 한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유포한 것으로 확신한다.

 전두환은 21일 광주를 방문해 한 시간 회의 진행 후 곧바로 서울로 돌아갔다. 비행기 출발하려면 반드시 파일럿이 해야 할 일이 비행계획서 제출이다. 비행계획서 기록과 무선 통신 기록 등이 남아있을 것이다.

 기록이 파괴되지 않았다면 제1전투비행단에 그 기록 있을 것이다. 기지지휘소. 컨트롤타워. 소방서에도 있을 것. 특조위에서 꼭 점검해야 할 장소들이다. 신군부가 모든 기록 삭제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시신소각 첩보가 있었다. 어느 정도였나.

 ▲5공청문회 때 정호영 특전사령관이 “암매장 없었다. 가매장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들었던 사람들 이해 못했을 것이다. 가매장은 있어도 암매장은 없었다는 말은 시신 재발굴을 위한 가매장이었던 것이다. 김해공항으로 시체 이송이 있었다는 말도 있었다. 추론이지만 거기서 수장했을 것이다. 시신을 바다에 던졌을 것으로 추론한다.



-가매장, 지문 채취 시신 몇 구나 됐나.

 ▲정확히 알 수 없다. 추론은 할 수 있다. 당시 광주국군통합병원에서 개조한 시설에 2구 정도를 넣고 소각하면 2시간 정도 걸린다. 하루에 20구씩 10일 동안 200구 정도 소각하지 않았겠나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증거는 없다.



-헬기사격 보고 내용은 어떤 것이었나

 ▲보고 내용 명확하고 간단했다. 5월 21일 낮 도청주변과 27일 광주천 상공 위협사격 했다고 보고했다.



-성폭력 규모 얼마나 되나. 광주교도소 습격사건 전두환은 시민군 자행 주장한다.진실은 뭔가.

 ▲공수부대요원 성폭력 숫자는 적혀있지 않다. 교도소습격사건은 아주 간단하다. 제3공수부대가 광주교도소 주둔해있었다.시위대가 외곽으로 진출하기 위해 광주에 이런 데모가 났으니 전주 그 외 지역으로 전파하기 위해 나가는 과정에서 사살을 당한 것이다. 교도소에 들어오는 차량 하나도 없었다. 차 한 대에 2~3명 있었다. 교도소 습격하려면 100명 이상 들어와야 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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