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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행준의 예술거울과 미학렌즈- 갤러리와 비엔날레 그리고 ACC
인간의 삶을 더욱 내밀하고 조작 없이 보여주는 과정
사물·활동 작품, 어려운 이유, 그릇된 기대에서 비롯
헤겔 관점에서 현대미술은 일상의 삶으로 하강한 미술
입력시간 : 2019. 03.15. 00:00


제1회 광주비엔날레 '경계를 넘어'에서 전시됐던 알렉시스 레이바의 작품 '잊어버리기 위하여', 1995년.
대학에 다닐 때였다. 광주에 처음으로 국제미술행사인 비엔날레가 열린 게. 화가 지망생이었던 나는 비엔날레를 보며 큰 충격에 빠졌다. 내가 지금까지 미술이라고 생각하며 지난 7년간 배웠던 것과 비슷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비엔날레를 보기 전에도 현대미술이란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이라는 생각은 있었다. 더욱이 퍼포먼스나 설치 작품은 딴 세상 이야기 같았다. 원래 난해한 딴 세상 이야기라는 나름의 방패를 갖고 있었지만 1회 비엔날레는 큰 충격이었다.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해한 딴 세상 이야기는 주류 미술이 되어 있었다.

1회 비엔날레가 1995년에 열렸으니 24년이 지났다. 그간 미술사와 미학 그리고 예술철학을 배우며 예술에 관한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 돌아보니 현대미술이 나에게 어려웠던 것은 잘못된 기대 때문 아니었을까? 현대미술은 쉽다. 그렇기 때문에 어렵다. 현대미술은 우리가 삶에서 흔하게 만나는 사물과 너무도 익숙한 삶의 활동을 작품이라고 한다. 현대미술은 삶에서 흔하게 만나는 사물과 활동을 다룬다는 점에서 쉽고, 그것이 작품이 되었다는 점에서 어렵다.

왜 쉬운 사물과 활동이 작품이 되면 어려워질까? 다양한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나는 작품에 대해서 우리가 갖는 그릇된 기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릇된 기대란 내가 미술이라고 여기며 배우면서 생긴 기대, 미술 작품은 이런 저런 것이라고 여기며 생긴 기대이다. 기대는 대표적으로 기능적 숙련, 아름다움, 진지한 감동 등으로 대표된다. 현대미술이 어려운 것은 우리가 현대미술 작품에서 기능적 숙련, 아름다움, 진지한 감동 등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어떤 기대도 충족해주지 않는 현대미술 앞에서 우리는 둘 중 하나를 탓한다. 한편 어렵고 난해한 작품, 다른 한편 미술에 무지한 나. 나도 그랬다.

현대 미술에 관한 그릇된 기대를 넘어 한 걸을 더 다가가기 위해서 헤겔의 관점이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헤겔은 그의 '헤겔 예술철학 강의'에서 예술을 삼분법으로 나눈다. 첫째는 상징적 예술형식이다. 상징적 예술형식의 대표적 사례는 피라미드인데, 헤겔은 피라미드를 큰 납골상자로 여겼다. 뭔가 표현하려는 의욕은 강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인간은 거대한 노동 동원 능력을 보여주는 거대한 돌상자를 만들었다. 피라미드의 내부 공간은 소량의 복도를 빼고는 모두 돌덩어리로 가득 차 있다.
'벨베데레의 아폴론', 바티칸 미술관, B.C.320년.


둘째는 고전적 예술형식인데, 고전적 예술형식의 대표적 사례는 고대 그리스의 신전과 조각상이다. 인간은 고전적 예술형식에 이르러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파악하고 가득 차 있는 돌상자를 기둥과 열주가 있는 신전으로 만들었다. 큰 돌상자 내부에 구멍이 뚫리고 그리스 신전으로 바뀌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인간은 표현하려는 의지만 강했던 것을 넘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구체성을 얻었다. 고전적 예술형식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기둥에 인간의 형상을 새기기 시작한다. 고대 그리스 신전에는 '에릭테이온 신전'처럼 기둥 마다 신들의 조각상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헤겔의 생각에는 돌상자→신전의 민무늬 기둥→인간형상 기둥으로의 변화가 인간이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구체화되어가는 과정으로 생각했다.

셋째는 낭만적 예술형식인데, 이는 중세의 기독교 성당을 의미한다. 피라미드는 신과 죽은자를 위한 건축물이고, 고대 그리스 신전은 신과 신관을 위한 건축이다. 그러나 중세 기독교 신전은 산 사람들의 회합을 위한 공간이다. 헤겔은 이 전체 과정이 예술작품, 특히 건축물이 신과 죽은자를 위한 것에서 인간과 산자를 위한 것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으로 본다. 건축 예술은 신→인간을 닮은 신→활동하는 인간을 위한 것으로 바뀐다. 인간의 예술은 그 만큼 구체화 된다.
'쿠푸왕 피라미드', 이집트 기자, B.C. 2560년.


낭만적 예술형식은 기독교 신전에서 회화로, 소설로 바뀌어 가며 보다 내밀하고 구체적인 인간을 표현한다는 것이 헤겔의 생각이다. 고전 예술의 조각은 홀로 외롭게 서있지만 낭만 예술의 회화는 여러 명이 서로 눈빛은 나누며 소통한다. 소설도 등장인물들의 내밀하고 구체적인 대화를 독자에게 제공하고 왕과 귀족뿐만 아니라 범부의 일상까지 예술의 주제로 삼는다. 오늘날의 소설이 그런 것처럼.

큰 그림을 그려보자! 헤겔의 생각이 맞다면 예술은 거대한 돌상자에서 인간의 형상으로 변화하고, 홀로 있는 신의 조각상에서 함께 있는 인간의 회화로 변화한다. 예술은 신과 죽은자를 위한 예술에서 일상을 사는 산자를 위한 것으로 하강한다.

나는 헤겔의 설명 방식을 조금 비틀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광주에는 갤러리 위주의 미술 문화가 있었다. 예향 광주에는 엘리트 작가들의 사사 문화가 있었는데, 의재 허백련, 아산 조방원, 남농 허건, 오지호, 양수아 등 걸출한 작가들이 미술 문화를 이끌었다. 이들과 사숙 관계에 있는 많은 엘리트 미술인들이 예술의 거리를 만든 주역이다.

갤러리를 중심으로 한 예술의 거리에는 엘리트 작가들의 작품이 눈높이의 갤러리 벽면을 수평적으로 채우고 있었다. 광주 시민들은 수평의 벽면에 걸린 작품을 횡으로 따라 걸으며 감상과 거래를 했다. 우리에게 남은 미술과 미술작품에 관한 기대를 그렇게 형성되었다.
'에릭테이온 신전', 그리스 아테네. B.C. 5세기


비엔날레라는 국제미술행사가 갑자기 등장했다. 비엔날레는 화랑과 비교하면 크게 두 가지 차이점을 갖는다. 첫째는 공간이 더 이상 수평적이지 않고 입체적이라는 것이다. 비엔날레의 작품은 더 이상 관람자의 눈높이에 따라 수평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일단 한 작가에게 부여된 공간이 '디귿' 또는 '미음'자 형태이고 작가는 바닥, 천장, 벽을 자유롭게 이용했다. 둘째는 전시된 작품이 기존 장르로 포섭할 수 없는 가공된 사물 또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설치미술과 퍼포먼스로 알려진 사물과 활동은 갤러리에서 미술 개념을 형성한 광주시민에게 큰 도전이었다.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광주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이 생겼다. ACC는 비엔날레와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 첫째, ACC의 공간은 비엔날레보다 거대하다. 비엔날레는 입체적 공간을 사용했어도 바닥, 벽, 천장 등 면에 접한 장소만을 작품의 지지대로 사용했다. 그러나 ACC는 거대 공간 자체가 전시의 장이다. 면이 아니라 허공을 작품의 중심공간으로 한다는 점은 공간의 거대화에서 찾을 수 있는데 거대 공간이 전시의 장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ACC 전시장의 구성이 매우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작품을 걸고 설치할 지지대가 없기 때문이다. ACC의 거대 공간은 거대한 면이 아니라 공간을 전시 대상으로 설정한다.

ACC가 비엔날레와 두 번째 다른 점은 전시된 사물과 활동이 날 것 그대로 라는 것이다. 기록 보관소라는 의미의 아카이브가 그것을 잘 대변하는데, 아카이브는 가공된 사물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의 사물, 가공된 활동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의 활동을 보여준다. 사실 우리의 삶에 가장 친숙한 아카이브 공간은 거실의 장식장인데, ACC의 전시는 누군가의 진열장을 그대로 옮겨두거나 날것 그대로의 활동을 클로즈-업 한 영상을 보여준다. 거실 또는 일상의 삶이 ACC에서 작품으로 둔갑한다.
얀 스텐, '춤추는 커플', 1663년.


헤겔로 빙의하여 갤러리와 비엔날레 그리고 ACC 변화의 흐름을 몇 가지 간추려 볼 수 있다. 눈의 동선을 중심으로 보면 눈높이→시선 닫는 벽→허공으로 변화하는 흐름을 알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엘리트의 미술 장르(문인화, 인상주의, 표현주의 등)→가공된 일상 사물과 활동→날것의 일상 사물과 활동이라는 흐름도 도출할 수 있다. 헤겔 식으로 생각해보면 눈높이에서 횡으로 고정되어 있던 시선이 바닥과 벽 그리고 천정으로 변화하다가 허공으로 자유로워지는 과정이요, 엘리트의 미술 장르가 가공된 일상 그리고 날 것의 일상으로 전환되어 인간의 삶을 더욱 내밀하고 조작 없이 보여주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헤겔의 관점에서 현대미술은 일상의 삶으로 하강한 미술이다. 하강은 네덜란드나 조선의 풍속화일 수도 있지만, M. 뒤샹(1897~1968)의 변기(일상의 소변기)이거나 A. 워홀(1928~1987)의 브릴로 박스(세제 박스)일 수 있다. 비엔날레와 ACC의 현대미술은 더 강력한 방식으로 현실로 들어선다. 돼지고기를 잡아먹는 마을 잔치를 클로즈-업 영상으로 보여주거나 성산업 여성들의 생활용품을 진열한다. 작품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일상의 날것 들이다. 잘못된 기대를 버려보자! '열하일기'로 유명한 박지원(1737~1805)이 그의 산문집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뜨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봉사에게 한 말이다.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봉사는 이내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최행준 시민자유대학 교수



최행준은

전남대학교 철학과에서 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대학과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미술교육, 미술사, 미학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광대와 기생으로서의 예술 개념을 넘어 진실을 표현하는 예술 개념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미지의 복제와 전송이 자유로워진 시대, 웹 기반의 직관적 화면 구성이 중요한 시대를 미학 또는 예술철학적 관점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전남대 코어 학술연구교수, 시민자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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