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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상) 잊혀진 항일 여성 독립운동가들 재조명해야
입력시간 : 2019. 02.28. 00:00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3·1운동의 의미와 정신은 각별하다. 100년전 우리 선조들은 강탈당한 국권과 국토를 되찾기 위해 처절한 대일 항쟁을 벌였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겨레가 뜻을 모아 죽음을 불사하는 항일의 정신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떨쳐 일어섰다.

그날의 만세 운동에 광주전남지역에서는 당시 수피아여자고등학교 2학년생이었던 윤형숙 열사와 박애순·진신애 교사 등이 앞장섰다. 윤 열사 등은 1919년 3월 10일의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전날 일본 경찰의 삼엄한 감시망을 피해 학교 기숙사에서 하얀 옥양목 치마를 잘라 만든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광주천을 따라 끝없이 이어졌던 만세 행렬은 아리랑을 부르며 만세 소리에 맞춰 일제히 태극기를 꺼내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선두에 섰던 윤 열사는 일본군 헌병대의 칼에 맞아 팔 하나가 잘리고도 태극기를 쥔 채 만세를 외쳤다. 윤 열사는 피체돼 투옥 중 고문 후유증으로 오른쪽 눈을 실명한데 이어 왼쪽 눈마저 실명 상태에 이르렀다. 이후 평생을 독립운동과 민족운동에 헌신했던 윤 열사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문맹퇴치 활동을 벌이다 북한군의 총탄에 맞아 숨을 거뒀다. 광주제중원 간호사였던 김안순 역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다 체포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개월의 옥고를 치뤘다. 이후에도 표창이나 연금을 거부한 채 평생을 아픈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며 살았다.

지역의 적잖은 항일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있다.

이경순 전남대 명예교수는 최근 광주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광주·전남 항일독립운동속의 여성들' 심포지엄에서 "지역의 여성독립운동가 실태조사는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한 3·1운동과 11·3학생독립운동에 국한됐을 뿐 전체적으로 시도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 명예교수는 "지역 여성들도 남성들 못지않게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만큼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과 연구가 확대·지속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광주·전남지회는 여러 자료를 통해 알려진 여성 독립운동가의 다양한 활약에도 유공자로 선정되는 비율은 턱없이 낮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전체 독립유공자 1만5천180명 중 여성은 357명으로 2.4%, 광주·전남 출신은 1천107명 중 41명(3.7%)에 불과하다고 한다.

조국의 독립과 해방에 헌신했던 여성 독립운동가 등 무명의 지사들을 제대로 발굴해 그 숭고한 뜻을 길이 드높여야 한다. 지자체는 물론 정부가 각별한 관심을 갖고 추진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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