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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획 - 박해현의 새로 쓰는 광주·전남 3·1운동사 <3> 3·1운동을 주도한 자랑스러운 광주·전남 학생
입력시간 : 2019. 01.16. 00:00


3·1운동 때 투옥된 수피아학교 여학생들
시위 참여 처분자 73.5%…타지 비교 불가 압도적

주지하다시피 역사적인 3·1운동은 천도교·기독교·불교 등 종교계 인사들이 학생들과 연합하여 민족의 독립 열망을 분출시킨 거대한 민족항쟁이었다. 독립 선언서를 서울 지역 학교와 시내 등에 뿌리며 선전 활동에 앞장 선 학생들은 민족 대표들이 태화관에서 바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중앙 지도부가 없는 공백 상태에도 불구하고, 탑골 공원 기념식을 성공리에 거행하였다. 이어진 시내 시위에도 앞장섰던 학생들은 3월 5일 남대문 역 앞에서 1만 명 이상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를 독자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운동 열기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3·1운동에 학생들의 참여가 적극적이었다고 하여 이들이 전국의 모든 시위를 주도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학생층의 의식이나 역량이 형성되어 있는 대도시에서는 운동을 독자적으로 조직화하고 선전 활동을 하는 등의 역할이 가능하였지만, 학생층이 미약한 소도시나 종교 교단이나 재지 세력이 강한 지역에서는 학생들의 시위에서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3·1운동 당시 광주·전남 지방 학생들 역시 서울 학생들 못지않게 처절한 투쟁을 하였다. 그렇지만 전남 지역은 시위 횟수나 인원은 물론이고 그 형태에 있어서 조차 다른 지역처럼 격렬하고 끈기 있는 양상을 띤 경우가 적은 편이라고 '인색한' 평가를 하였던 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가 편찬한 '독립운동사'마저 이 지역 3·1운동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학생들에 대한 언급을 누락시키고 있다. 이를테면 이 지역에서 시위가 미약한 것은 천도교·기독교 등 운동을 이끌었던 종교 기반의 미약과 3월 1일 이전에 다른 지역과 사전 연락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여 학생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본도(전라남도)에 있어서 소요는 경성 지역에서 배부된 선언서 및 일본이나 경성에서 귀환하는 학생들의 소동과 무관하고, 혹시 이 운동에 참가하지 않으면 훗날 독립 후 불리한 지위에 설 것이라는 오판 때문에 마침내 경거망동을 한 것일 뿐 경성 및 다른 지역의 수뇌급 및 불온한 무리들과 전혀 연결되지 않은 것 같다"라는 일본 경찰 보고서에 있는 바처럼 광주·전남 지역 시위에 학생들의 역할이나 다른 지역과의 연계 등을 인정하지 않고 이 지역의 운동을 애써 무시하려 했던 일제의 의도에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3.1운동 독립선언서 (목포 정명여고 소장)


그러나 광주·전남지방 시위의 기폭제가 되었던 3월 10일 광주 지역의 대규모 시위는 동경 유학생과 광주 지역 학생, 교사들의 주도적인 역할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즉, 2월 2일 동경 유학생들이 작성한 독립선언서 초안을 가지고 귀국한 동경 유학생 정광호와 광주 출신 유학생 최원순 등이 광주 지역에서 '신문잡지종람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있던 이 지역 청년·학생들과 함께 거사를 조직적으로 준비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다룰 예정으로 있지만 이들은 2월 말에 이미 서울의 3·1운동 지도부와도 긴밀히 연락을 하며 구체적인 거사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들은 '독립선언서'와 함께 '경고 아 이천만 동포(警告 我 二千萬 同胞)'라는 격문과 애국가까지 인쇄를 할 정도로 치밀히 준비하였다. 당시 그들이 준비한 인쇄물이 6가마 분량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하였는지를 익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3·1운동 당시 이 지역의 시위가 사전에 준비가 부족했다거나 외부와 연계되지 않았다는 설명은 사실과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때 숭일학교 교사 최병준, 수피아여학교 교사 박애순 등이 각 학교 학생 동원 책임을 맡는 등 이 지역 학생, 교사들의 참여 열기가 뜨거웠다. 특히 시위를 적극 주도한 최병준 선생은 징역 3년형을 받는 등 숭일학교에서만 교사 5명, 학생 24명이 징역형을 받았고, 수피아여학교에서는 2명의 교사와 21명의 학생들이 옥고를 치렀던 사실에서 이들 학교를 포함하여 우리 지역 학생들의 항쟁이 얼마나 강렬히 이루어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일제가 겉으로는 광주 시위를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겼지만 시위에 참여한 상당수 학생, 교사들에게 징역형이라는 무거운 처분을 한 것은 광주 시위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증거라 하겠다.

3·1운동 당시 광주·전남 지역 각종 학교는 64개로 전국 학교의 4.7%를 차지하는 낮은 수치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7개 학교가 시위에 참여하였는데 전국 평균 13.6%에 약간 못 미치는 11% 정도로, 참여 비율만 놓고 보면 평균치라 할 수 있다. 재학생 대비 운동 참여율에서도 전남 지방 7,963명 가운데 302명이 참여하여 약 3.8% 정도에 그치고 있어, 가장 높은 평남(27.2%) 지방과는 비교의 대상도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전국 평균 10.7%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언 듯 광주·전남 지방 학생들의 시위 참여가 상대적으로 미약하였다고 판단하기 쉽다. 물론 이들 통계가 광주·전남 지방 시위 규모를 축소하려 했던 총독부 자료를 근거로 했다는 점에서 볼 때 마냥 신빙할 수는 없다.

소안도 항일운동 기념탑(완도)


그러나 시위에 참여하다 검거·처분 된 학생들의 숫자를 비율을 살펴보면 뜻밖의 사실이 드러난다. 광주·전남 지방은 222명 검거, 222명 처분으로 전국에서 검거·처분된 숫자의 11.6%를 차지하여 가장 높은 경남의 12.6% 다음으로 높다. 처벌 받은 222명 숫자만 놓고 보아도 경남 242명 다음으로 많다. 특히 참여 학생에 대한 처분 비율을 보면 광주·전남 지방에서는 302명이 참가하여 222명이 처분 받아 무려 73.5%에 달해, 다음으로 높은 경북 37.1%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가장 비율이 높다. 이러한 통계는 숭일학교나 수피아여학교 시위 참여자 다수에게 징역형 등 무거운 처분을 내리고 있는 것과 상통한다 하겠다. 수감자의 비율에서 지식인·청년·학생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국 평균 20.8%인데 반해, 광주·전남 지방은 43.1%로 월등히 많다는 점도 당시 이 지역 학생들이 3·1운동에 얼마나 주도적으로, 격렬하게 참여하였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처럼 광주·전남 지방 학생들이 온 몸을 불사르며 시위에 참여하였던 것은 항일의 선봉에 섰던 동학농민전쟁의 역사적인 경험에다 어렸을 때 항일 의병들의 처절한 항쟁과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을 직접 목격하면서 항일 의식이 뜨겁게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1912년부터 시작된 소작농의 경작권을 박탈한 토지조사사업으로 이 지역 농민층의 몰락이 가속화되어 쌓인 불만도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을 법하다. 광주·전남 지방 학생들의 운동 역량을 익히 알고 있는 일제는 이 지역의 학생 시위를 사전에 차단하려고 노력하였고 항쟁의 폭발력을 차단하기 위해 축소하려 하였던 것이다.

문학박사·동신대 기초교양대 강사


박해현         박해현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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