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약용
정찬주 지음/한결미디어/1만5천원
소설 정약용은 다산 해배 200주년이자 다산 탄신 256주년을 기념한다.
실학자 정약용이 아니라 인간 정약용을, 정약용의 내면에 숨겨진 눈물, 회한, 고독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은 특히 정약용이 유배를 가 있는 동안 홍임 모(母)라고 불린 강진여인과의 사연에 많은 양을 할애하고 있다. 실학자 다산을 기대했던 독자들은 내심 놀랄지도 모른다. 실제로 소설은 정약용의 저술 작업의 내용과 고충보다는 유배시절에 사랑했던 여인, 제자, 강진의 산야, 음식 등을 이야기하며 병풍 속의 수묵화처럼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풍경 너머에서는 정약용의 깊은 내상들이 언뜻언뜻 아프게 다가온다. 작가가 정약용의 슬픈 노래, 즉 비가(悲歌)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소설 정약용은 정약용의 유배시절을 샅샅이 다루고 있으며, 정약용이 애타게 기다리던 읍중제자 황상과 해후한 뒤 75세 부부 회혼일에 질곡의 삶을 내려놓음으로써 끝을 맺는다.
책은 정약용이 강진 유배시절 실학자로서의 강학과 눈부신 저술 작업 이면에 서성거리는 강진 여인 홍임 모와의 숨겨진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다. 다산을 연구하는 어떤 학자도 주목하지 않고 다루지 않았던 역사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홍임 모를 작가는 애정 어린 눈으로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후기의 다음과 같은 부분도 작가의도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또 이 책은 혜장선사와 초의선사 등이 등장하면서 남도 다도(茶道)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차의 제작 과정이 반복 언급됨으로써 한 권의 다서(茶書)를 읽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차에 대해 조예가 깊은 작가의 심미안이 군데군데 발휘되어 행간에 차향(茶香)이 스며있는 듯하다. 선비는 유배를 가더라도 강학을 연다는 전통에 따라 다산 정약용도 강진의 읍중제자와 초당제자들을 가르친다. 저술하는 데 강진제자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출세지향적인 일부 제자에게 실망도 한다.
그러나 작가는 미완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허망한 꿈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런 제자의 캐릭터도 소설이 끝나갈 때까지 섬세하게 살려내고 있다. 물론 가족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하피첩을 통해서 아들들에게는 인간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신산한 삶을 살아온 아내에게는 해배 이후 못다 한 사랑을 보여준다. 살아남은 형(정약현)과 형수들, 친구에 대해서는 마음으로나마 인간의 도리를 다한다.
소설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천주교 박해사이다. 정약용 일가의 고난은 1801년 신유박해로 시작된다. 정약용의 동생(정약종), 매형(이승훈), 조카사위(황사영)는 참수당하고 형(정약전)과 조카(정마리아)는 유배를 간다. 그런데 정약용은 일가의 참혹한 시련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살아남아 실학을 집대성한다. 정약용은 선비로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는 세월이 심판해준다. 정약용을 시기하고 모함했던 당시 인물들은 우리들에게 잊혀져버렸지만 정약용은 다시 살아나 오늘 우리들의 스승으로 존경받고 있는 것이다. 2012년에는 한반도의 울타리를 넘어 유네스코가 루소, 헤르만 헤세, 드비쉬, 정약용을 세계의 기념 인물로 지정한 바 있다. 유네스코가 다산 정약용을 선정한 이유로 '정약용은 매우 중요한 한국 철학자로서 의 업적과 사상은 한국 사회와 농업, 정치 구조의 현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힌 바 있다.
소설은 전라도 사람이 등장할 때의 대화에서 전라도와 강진 향토언어를 살려내고 있다.
작가는 작가후기에서 "김영랑의 시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향토언어가 다소 생경할 수도 있겠지만 소설 문장의 앞뒤를 읽다보면 저절로 이해되고 결코 독해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을 터이다. 오히려 아름다운 향토언어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김옥경기자 okkim@srb.co.kr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 · 적막과 상처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
- · 음모론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의 모습
- · 소설처럼 쉽게 이해하는 우리 역사
- · '문정희 시인의 문학과 인생' 대담 특집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