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루뭄바를 죽였는가
이인숙 옮김/삼천리/2만3천원
"대담하고 청렴했던 로베스피에르처럼, 루뭄바는 콩고인들이 국민적 합의를 이룰 거라고 확신했다. 감동적인 연설만으로 루뭄바는 흑인들을 원대한 꿈이 담긴 '국가'로 이끌고 시민으로 만들 수 있었다."
1963년, 프랑스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는 '파트리스 루뭄바의 정치사상'이라는 글에서 서른다섯 젊은 나이에 스러져 간 신생 독립국 콩고민주공화국(DRC)의 정치 지도자를 이렇게 칭송했다.
19세기 벨기에 국왕 레오폴 2세의 사유지로 운영된 콩고자유국 사람들에게 식민 지배가 안긴 고통은 실로 인류의 치욕이라 할 만큼 가혹한 것이었다. 마크 트웨인, 코넌 도일과 조지프 콘래드 같은 작가들이 글과 만평을 통해 콩고의 참상을 알렸다.
'누가 루뭄바를 죽였는가'는 60년 전 아프리카 최초로 민주공화국을 세우고 새로운 콩고의 미래를 위해 분투한 지도자의 마지막 삶을 다루고 있다.
파트리스 루뭄바(1925~1961)는 이 짧은 기간에 콩고민족운동(MNC)을 이끌며 투쟁과 투옥을 거듭한 끝에 독립 협상을 주도하며 총리에 올라 내각을 구성하고 쿠데타로 해임된 뒤 체포돼 무참하게 처형됐다.
1961년 1월, 모스크바, 베이징, 카이로, 런던, 파리, 로마, 워싱턴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시위가 일어났고, 뉴욕의 유엔본부 회의장까지 시위대 60명이 난입해 "살인자가 누구든 루뭄바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루뭄바의 죽음은 해방된 신생 독립국에서 나타나는 권력투쟁과 내전, 냉혹한 열강의 각축, 낡은 제국주의의 뿌리를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된다.
이 과정에 벨기에는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다시 군대를 보냈고, 유엔도 다국적 평화유지군 2만 명을 파견했으며, 미국은 냉전 상황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봉쇄하고 친미 정부를 세우려고 CIA를 통해 막후에서 움직였다.
'루뭄바 암살 사건'은 그동안 정치학자나 저널리스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여전히 일반 대중의 관심을 모았다. 루뭄바의 지나온 삶의 궤적과 죽음에 이른 경위가 국제 여론을 건드렸고 유엔, 벨기에, 미국은 물론 콩고 국내에서도 논란이 계속됐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루뭄바의 몰락을 모의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남긴 자서전과 회고록, 메모를 보면 루뭄바의 죽음과 직접적인 관련이 거의 없었다.
이 책은 미국 아이젠하워에서 케네디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국무부와 CIA는 물론 벨기에와 영국의 정보기관이 루뭄바 암살을 모의하고 실행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실제로 미국의 역대 최장수 CIA 국장인 앨런 덜레스는 루뭄바를 '아프리카의 카스트로'라고 판단하고 살인 청부업자를 고용해 암살 작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또 벨기에 경찰관 버르스회러는 루뭄바를 직접 살해 현장으로 압송했고 현지 경찰과 함께 시신을 땅에 묻었다.
루뭄바는 가나의 콰메 은크루마 대통령 등과 함께 아프리카 민족주의와 비동맹, 나아가 냉전 속에서도 서구 열강과 대등한 외교를 통해 콩고의 미래를 구상했다.
책에서는 콩코의 역사나 정치는 물론, 미국과 소련, 벨기에, 유엔의 문서와 미간행 1차 자료, 당시 정치인과 각국의 외교관, 정보요원의 편지와 사적인 기록까지 면밀하게 분석해 의문의 죽음으로 남아 있던 '루뭄바 살해'의 전모를 파헤친다.
콩고의 미숙한 정치인과 친서방주의자들, 오만한 미국과 제국의 특권을 지키려던 벨기에, 허점투성이 유엔과 냉전 속에서 콩고의 위기를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한 서구 열강 모두 이 젊은 지도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공범임에 틀림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옥경기자 uglykid7@hanmail.net
- 대장간에 남아 있는 우리의 모습 "누군가 기록해두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쌓여 이야기가 되고, 역사가 된다. 이 책의 귀함과 무게가 거기에 있다."한때 서울 을지로 7가는 대표 대장간 거리였다. 녹번동,수색, 구파발 등지에도 대장간이 많았다. 그랬던 대장간들이 1970∼80년대 급격한 산업구조 개편과 도시개발을 거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이제는 대장간이 모여 있는 곳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대장간 셋이 붙어 있는 인천 도원동이 국내에 마지막 남은 대장간 거리라 할 수 있다.도원역 부근에 있는 인일철공소, 인천철공소, 인해대장간 중 맏형 격은 1938년생 최고령 대장장이 송종화 장인이 운영하는 인일철공소다.책 '대장간 이야기'는 사라져가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장인 대장장이와 대장간의 모든 것을 담았다.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을 누빈다.역사 속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저자는 또 대장간이 우리말의 아주 오랜 곳간임에 틀림 없다고 말한다.이 책에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나라군에 건넨 선물 중 휴대용 불붙이는 도구 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당시 이순신 장군이 부시를 일컬어 적었던 화금(火金)은 불을 일으키는 쇠라는 말이다.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 쇳조각이 부시인데, 그 어원을 따져보면 불과 쇠가 합쳐져 이뤄진 말이다.이 책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우리 대장간과 대장장이의 세계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대장간과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대장간의 인문학적 향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드러내고자 애썼다"고 말하는 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나아가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 속을 누빈다. 또한 역사 속에서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 이 책은 우리나라 대장간 다섯 곳, 일본의 다네가시마 대장간 한 곳의 현장 모습을 보여준다. 인천의 도심 한복판에 있는 네 곳 등인데, 이제는 모두 70대 이상의 노인 혼자서 일한다. 젊은 누구도 대장간 일을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 대장장이들이 일을 그만두면 그 대장간들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저자는 아쉬워한다.뭐니 뭐니 해도 가장 고마운 건 이때껏 대장간 현장을 지켜내온 이 땅의 나이 드신 대장장이 장인들이다. 힘에 부칠 때마다 대장간 현장을 찾아 그분들의 망치질 소리를 들으며 힘을 얻고는 했다.대장장이와 도구, 그리고 쇠. 대장간의 3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장장이가 있어야 쇠를 달구고 두들겨서 뭔가를 만들 수 있다. 원자재인 철물이 없어도 대장간은 돌아가지 않는다.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나 원재료인 쇠 말고도 화로, 모루, 망치, 집게 같은 필수 도구가 있어야 한다. 대장간 일은 쇠를 불에 달구는 작업이 우선이다. 화로에는 풀무가 따라붙는다. 바람이 없으면 화로에 불길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대장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성냥이다. 충청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대장간을 승냥깐이라 한다. 이 승냥이라는 말이 성냥에서 나왔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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