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트위터 youtube
탑뉴스 정치 지방자치 경제 지방경제 사회 국제 문화 전남뉴스 구청뉴스 오피니언 사람과생활
탑뉴스
정치
지방자치
경제
지방경제
사회
국제
문화
전남뉴스
구청뉴스
오피니언
사람과생활
최행준의 예술거울과 미학렌즈 - 그릴 수 없는 현실, 감출 수 없는 현실
화가는 그 시대가 생각의 질서 속에서 가치를 부여하는 인물상을 창조한다
입력시간 : 2018. 11.09. 00:00


메두사호의 뗏목 테오도르 제리코 1818~1819년
가인의 용사들 김성근외 3명 1997


천사를 보여주라 그러면 천사를 그리겠다! 사실주의 회화의 시조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의 말이다.

눈에 보이는 객관적 사실을 그리는 사실주의는 문외한이라도 작가의 사실적 기능에 쉽게 감탄할 수 있기 때문에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사진 같은 그림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사실주의는 인간의 손이 아니라 신이 만든 것 같은, 그림이 아니라 실재 같은 그림을 지향한다.

그러나 그게 전부일까?

화가가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보인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서 보이는 것을 그리겠다는 선언은 19세기 중반에 등장한다. 화가는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는다. 재미있는 이야기꾼이 사실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야기꾼은 사실이라는 재료에 가상이라는 조미료를 잔뜩 뿌린다. 모두들 되고 싶지만 실제 삶에서 쉽지 않은 인격자, 모두들 되고 싶지만 척박한 현실에서 유지가 어려운 미모, 휘몰아치는 감동의 동요, 그 격동 속에서 아름답게 멸망하는 한 인간을 이야기꾼은 창조한다.

화가도 마찬가지다.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의인, 대의를 위해 자신의 욕구를 제어하는 인격자, 척박한 환경에서도 기품을 잃지 않는 몸가짐, 온갖 어려움에도 대리석 같이 반짝이는 피부, 거대한 힘에 드라마틱한 포즈로 저항하는 정신의 소유자, 자연의 폭풍우와 감정의 회오리가 호응하는 한 인간을 창조한다.

이야기꾼과 화가가 창조하는 인물은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다. 넓은 의미에서 이데올로기는 생각의 질서인데, 이야기꾼과 화가는 그 시대가 생각의 질서 속에서 가치를 부여하는 인물상을 창조한다. 시대에 따라 도덕군자, 학자, 섬세한 감성의 예술가, 감정의 동요에 삶의 내맡긴 순결한 인물이 최고의 가치를 구가한다. 화가는 이러한 인물을 창조하는 거짓말쟁이였다. 이러한 인물은 늘 실감나게 그려졌으니, 쿠르베의 사실주의 선언이 지향하는 점은 사진 같은 그림이 아니다.

천사를 보여주면 천사를 그리겠다는 사실주의의 강령은 그림을 사진 같이 그리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현실을 이상화하거나 감정화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상화는 고전주의와 감정화는 낭만주의와 관련된다. 인간은 누구나 이상을 품고 산다.

하지만 이상이 현실과 다르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은 이상을 그려보인다. 하긴 그림이란 현실이 아니고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이상을 그림에서라도 보려는 인간의 욕구도 이해한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이상은 특정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거나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일 수 있다.

쿠르베는 귀족들의 고전주의 그리고 부르주아들의 낭만주의가 인간의 이상이 아니라 계급의 이상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귀족들의 천사, 부르주아들의 천사는 인간에게 달콤한 악마일 수 있다. 쿠르베의 말에 따르면 사실주의는 현실이 이상만큼 이상적일 때만 천사로 대변되는 이상을 그릴 수 있다.

북한의 사회주의 사실주의는 북한의 이상과 현실 중 무엇을 표현할까?

2018 광주비엔날레에 초대된 북한의 그림들은 사실주의 보다는 고전주의나 낭만주의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 북한의 작가들이 북한 사람들의 생각의 질서(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게 현실을 표현할 수 없는 까닭이다.

북한의 작가들은 국가 공동체에 헌신하는 인민의 가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고전주의 문맥을,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 열정의 힘으로 하나 된 역동적 집단노동 현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

청천강의 기적 최창호외 5명, 2014년


청천강의 기적 최창호외 5명, 2014년


러시아 사실주의의 대가 일리아 레핀(1844~1930)이 그린 노동과 김수동외 4명이 그린 노동을 비교하면 사실주의의 노동과 고전주의의 노동이 어떻게 다른지 드러난다.

사실주의는 노동을 천시도 미화도 하지 않는다. 노동은 인간이 세계 속에서 자기를 실현하는 가치 있는 활동이지만 그 자체로 힘겨움을 수반한다. 그러나 김수동외 4명이 그린 집체화에서 노동은 미화된다. 국가적 건설현장에서 노동의 힘겨움은 사라지고 가치에 자발적으로 복무하는 영웅이 그려진다.

프랑스 낭만주의의 대가 테오도르 제리코(1791~1824)의 '뗏목'과 김성근외 3명이 그린 '가인의 용사들'을 보면 북한의 집체화가 낭만주의를 번안하는 방식이 드러난다.

두 그림의 화면구성은 유사하다. 돗대와 대각선 인물 배치 그리고 압도하는 파도가 그렇다. 두 그림은 대각선과 넘실거리는 파도를 이용하여 역동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두 그림이 정반대인 지점도 있다. 먼저 제리코가 주목한 지점은 난파한 뗏목과 생존자들의 비참함이다. 그러나 김성근이 주목한 지점은 거대한 파도를 헤치고 가는 구조선과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이는 선원이다. 전자가 압도하는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의 비참함을 그린다면, 후자는 자연의 힘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실현하는 인간의 강인함을 그린다.

대중들은 북한 작품들의 뛰어난 기술에 감탄하는 것 같다. 그림을 그려본 사람이라면 한지와 수묵을 이용하여 이렇게 사실적(시각적으로) 대형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얼마나 많은 수련과 노력을 요하는지 안다. 하지만 실사출력의 시대에 회화 기술의 숙련을 찬양하는 것은 작품의 한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현실을 표현할 수 없는 사실주의에 어떤 예술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현실을 표현할 수 없는 사실주의라는 역설이 이 전시의 제목을 '사회주의 사실주의 패러독스'로 명명하게 했으리라. 나는 예술이 어떤 현실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표현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예술가들의 현실적 장애는 명확하다. 그들은 체제를 위해 공동체에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동시에 그들은 북한 사회의 현실을 경험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떤 예술가는 이 괴리에 둔감하지만 어떤 사람은 괴로워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까닭이다.

북한에서 온 그림을 둘로 나누어보면 얼굴을 그린 그림과 등을 그린 그림으로 나눌 수 있다. 어떤 그림은 보람찬 노동의 현장에서 밝고 진취적인 표정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어떤 그림은 화면 전면에 등을 보이며 특정 인물을 부각하지 않게 화면을 구성한다. 전자는 화면 전체에 색채가 많이 쓰이고 후자는 먹이 많이 쓰인다. 내가 주목한 그림은 얼굴이 아니라 등을, 인물이 아니라 노동을, 화려한 색채가 아니라 막막한 잿빛을 그린 그림이다.

새 물결이 뻗어간다 김수동외 4명, 2016년 부분


이러한 그림은 주로 최창호가 총괄한 집체화에 나타난 특성이다. 최창호외 5명이 그린 '청천강의 기적'과 최창호외 6명이 그린 '천년을 책임지고 만년을 보증하자!'는 유난히 등을 보인 노동자가 많다. 그리고 막막한 잿빛이 두드러진다. 그릴 수 없는 현실과 감출 수 없는 현실의 긴장이 북한 그림을 조명하는 하나의 틀이다.

남한 사회라고 체제 선전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남한 사회의 이데올로기 재생산은 나약한 회화가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TV쇼 등 강력한 매체가 담당한다. 이들 매체는 어떤 삶이 가치 있고, 멋있고, 화려한 지 그려보인다. 북한에서 온 그림을 보며 감탄 또는 조소로 치우치기보다 거울 앞에 선 마음이 되어 보자. 최행준 시민자유대학 교수





최행준은 전남대학교 철학과에서 미학을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대학과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미술교육, 미술사, 미학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광대와 기생으로서의 예술 개념을 넘어 진실을 표현하는 예술 개념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미지의복제와전송이자유로워진시대, 웹기반의직관적화면구성이 중요한 시대를 미학 또는 예술철학적 관점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전남대 코어 학술연구교수, 시민자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행준        최행준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기사 목록     프린트 화면     메일로 보내기     뉴스 스크랩    


이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독 자 의 견 제 목이 름작성일


사설 오피니언
무등칼럼 무등데스크
홈페이지 | 회사소개 | 편집규약 및 윤리강령 | 편집 자문위원회 | 독자위원회 규정 | 무등일보 사우회 | 행사안내 | 기자 이메일 | 청소년 보호정책
Copyright ⓒ 1996-2018. 무등일보(MoodeungIlbo) All right reserved. 개인정보취급방침
등록번호:광주아00187등록년월일:2015년 1월8일회장 : 조덕선발행 · 편집인:장인균 61234 광주 북구 제봉로 324 (중흥동, SRB빌딩) (주)SRB무등일보
기사제보,문의메일 : zmd@chol.com긴급 대표전화 : 82-62-606-7760, 017-602-2126, 대표전화:606-7700 팩스번호 : 062)383-8765 광고문의 : 062)606-7772
본 사이트의 게재된 모든 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보유하며, 발행인의 사전허가 없이는 기사와 사진의 무단 전재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