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현 교수의 다시쓰는 전라도 고대사

박해현의 다시 쓰는 전라도 고대사Ⅱ <32>6세기 마한 연맹 왕국 실체를 밝혀준, 양직공도(梁職貢圖)上

입력 2018.11.06. 00:00
6세기도 마한 연맹왕국 실존 사실 알려주는 중요 사료
양직공도 외국사신들

며칠 전 필자는 어느 세미나에서 '마한사 연구 현황과 발전 방향'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였다. 마한사 연구와 관련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영호남 지역 균형 발전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였다. 국가 재정보다는 지방 정부의 한정된 재원에 의지하다 보니 본격적인 추진에 한계가 있다는 얘기이다. 특히 고분 발굴과 같이 많은 비용이 투입되는 사업은 국가재정 뒷받침 없이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미 어느 정도 발굴 조사 사업에 완료되고 관련 연구까지 이루어져 있는 가야사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관련 지원법의 제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관계자의 설명에 공감이 갔다.

그러나 그동안 이루어졌던 이 지역 마한사 연구에 대한 본질적인 반성도 하게 된다. 말하자면 마한사 연구가 그저 문헌이 없다는 핑계로 오로지 발굴 조사에만 의존하지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각종 지리지, 문집류 등에 흩어져 있는 국내 자료를 체계적으로 조사 정리한 적은 있는가? 중국이나 일본 등 산재한 수많은 마한 관련 자료를 찾아 비교 검토해 본 적은 있는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고분 발굴 사업도 주로 구제 발굴에 의존하여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특성을 찾기도 쉽지 않은데다, 그나마도 지나치게 고분의 구조, 토기 등 형식적인 측면이나 유형의 유물만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실제 고분이 발산하는 수많은 무형의 역사적 현상을 놓쳤던 것은 아닌지 하는 반성을 해 보게 된다. 마한사를 이해할 때 동시대의 중국과 일본 그리고 통일신라, 고려와 같은 후대의 사실들과 함께 비교하여 역사적 특질을 찾는 것이 필수적인데, 이에 대한 관심도 걸음마 수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앞으로의 마한사 연구는, 새로운 발굴 조사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미처 살피지 못한 국내외 문헌 자료에서 마한사의 흔적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왕에 조사된 발굴 보고서를 기존의 인식에서 벗어나 꼼꼼히 분석함으로써 고분이 전달하려 하는 무한한 메시지도 읽어내야 한다.

그동안 우리 마한사의 가장 큰 쟁점은 마한사가 백제사의 종속 변수인가?, 아니면 독립 변수인가?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껏 369년 백제 근초고왕이 침미다례를 멸망시켰을 때, 전라도 일대가 백제의 지배하에 들어갔다는 이병도의 주장이 통설로 굳어져 왔던 것이다. 최근의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일부에서 이 지역에 마한의 독자적인 정치 세력이 6세기 중반까지 존립되어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마한론'은 그야말로 소수설이었다. 더구나 이러한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교 역사 교과서에는 여전히 근초고왕 때 전라도 지역이 백제에 복속되었다고 서술되어 있고, 심지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비롯하여 각종 공무원 시험에도 이를 역사적 사실인양 계속 출제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림1중앙#

그러나 필자가 줄기차게 주장한 것처럼 적어도 6세기 중엽, 심지어 앞서 상세히 살핀 바 있듯이 7세기 중엽까지도 영산강의 다시들 지역을 중심으로 '응준'으로 상징되는 강력한 정치 세력이 버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각종 고고학 자료는 영산강 유역을 비롯한 마한의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는 문화 현상들이 결코 백제 계통이라기보다는 일찍이 낙랑 그리고 후대로 내려오며 가야·왜 등과 활발한 교류를 하며 외래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외래문화를 새롭게 창안하여 전파하는 높은 문화 역량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영산지중해를 중심으로 활발한 대외교류를 하며 형성된 문화의 개방성과 포용성을 지녔던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특징들이 마한의 전통이었다고 하겠다. 따라서 백제가 이 지역을 지배하였다고 살피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라 하겠다.

역사적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옛날부터 자치통감처럼 역사서 이름에 거울 '감(鑑)'을 넣었던 것이다. 필자가 생뚱맞게 이러한 이야기를 꺼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엊그제 나온 "전라도가 백제의 지배에 들어갔다고 이병도 박사가 주장하였던 근거인 일본서기 신공기 기록은, 한반도와 왜의 관계를 살필 근거는 될지언정, 백제의 마한 지배 사실을 입증하는 근거로 볼 수는 없다"는 고려대 교수의 논문을 보며, 그동안 전가보도처럼 받아들이고 그 논리를 강화하는 데 무려 60여 년을 허비하였던 주류 학계의 인식이 무너져 가고 있음을 느끼며 울컥하며 역사의 무서움을 새삼 느꼈다.

한편, 369년 백제의 전라도 지배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 일부 연구자들은 삼국사기 백제 동성왕 20년(498) "탐라가 조공을 내지 않으므로 왕이 친히 정벌하기 위해 무진주에 이르니 탐라가 이를 듣고 사신을 보내어 죄를 빌므로 정벌을 중단하였다"라는 기록에 주목하여 무진주 일대가 이미 백제의 영역이 되어 있었다고 주장을 펴기도 한다. 곧 5세기 후반에 직접적 복속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실상 백제의 직접적 영향 아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나오는 '탐라'가 우리가 알고 있는 제주도가 아니라는 해석이 있다. 말하자면 '도무'로 읽어지는 강진 지역과 음이 비슷한 것으로 보아 강진 지역에 있었던 '양직공도'에 나오는 '하침라'를 말한 것이 아닐까라는 주장이 있다. 말하자면 '하침라'를 압박하는 모양새인데, 과연 동성왕 때 백제가 그러한 힘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이 문제는 별고로 자세히 다루려 한다. 양직공도에는 '하침라' 등 마한 여러 연맹왕국 이름들이 보인다. 말하자면 6세기에도 마한 연맹왕국이 실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중요한 사료인 것이다.

양직공도는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그 사진이 실려 있어 백제와 양, 즉 중국 남조와 외교관계를 설명하는 근거라고 공부하였던 기억을 가진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 양직공도에는 당시 마한의 연맹왕국의 국명들이 나타나고 있어 6세기 중엽 한반도 남부 나아가 마한 남부 연맹의 마한 왕국의 실체 및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백제의 마한 지배시기를 밝히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이와 관련된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근 마한연구원에서 이와 관련된 국제 학술 세미나를 열어 그 실체를 밝히려는 시도를 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으로 생각한다.

원래 '직공(職貢)'이란 중국 주나라에서 봉건 제후들이 천자에게 의례적이고 의무적인 조공을 말하는 것인데, 이를 기념하여 그린 그림을 '직공도(職貢圖)'라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직공도 가운데는 중국 남조 양나라에 조공 왔던 각국 사신들 용모를 그리고, 그 그림 옆에 그 나라의 여러 사정을 기록한 양직공도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그림 역시 원본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모본(摹本)만 4종이 전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1077년 송나라 때 모사되었던 '양직공도북송모본'이 원본에 충실한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그 그림에는 양나라에 사신을 보냈던 12개국 사신의 용모와 13개국의 사정이 기록되어 있어 복식사를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직공도에 백제 사신 그림과 그림을 해설하는 설명에 다른 어느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백제 방소국(傍小國)' 곧 '백제 옆에 있는 소국'이라는 뜻이라 하여 백제의 주변국들이 언급되고 있다. 거기에는 '백제는 예전에 마한에 속하였다'고 하며 모두 198자의 글자가 적혀 있는데 '旁小國有叛波卓多羅前羅斯羅止迷麻連上巳文下枕羅等附之'라는 '양사' 백제전 등 다른 어느 기록에도 없는 내용이 담겨 있다. 말하자면 '백제 옆에 있는 소국' 즉 '방소국'에 해당하는 국가들이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그 방소국의 위치에 대해서 학계에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 가운데 지미, 마련, 하침라는 전남 지역으로 비정하는 데 대체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이처럼 전남 지역에 백제 사신이 양나라를 갔던 521년 무렵에 백제에 복속되지 않은 왕국들이 여럿 있음을 알겠다. 특히 '∼ 等'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아 다른 국가들도 더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제를 자세히 검토함으로써 마한 연맹 왕국의 실체 파악에 한걸음 더 다가서려 한다. 문학박사·동신대 기초교양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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