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에세이- 여행이 별건가요

@무등일보 무등일보 입력 2018.10.18. 00:00

김항조 광주관광협회 부회장

바람이 불어오네요. 멈춰 서서 몸을 맡겨 놓습니다. 싱그러움에 전율이 일어나면서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바람에 실립니다. 무겁게 쌓인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홀가분하게 털어내야 할 것 같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은 여행을 가고 싶어 조바심이 납니다. 이 계절이 가기 전에 떠나야겠습니다.

흔들리기 시작하면, 갈증에 시달리고 어디로 갈까 멋진 곳은 없을까 이 계절에 어울리는 곳은 어디일까 찾게 됩니다. 한참을 궁리하다 보면 한 가지씩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시간입니다. 오늘, 내일, 모레, 글피 해야 할 일들이 일정에 끊임없이 적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오늘도 내일도 아닌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됩니다. 다음 기회로 미루다보니 끊임없이 이어져 따라옵니다.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다고, 늘 바쁘다고 외쳐댑니다. 하루를 보내고 해질 녘 사라져 가는 붉은 노을처럼 열정도 사라져 갑니다. 메마른 일상에 점점 늘어지기만 합니다. 축 늘어지는 몸을 달래기 위해 휴식을 취해 보지만 쌓인 피로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잘 하던 일도 귀찮아지고, 힘겨워하는 나를 들여다보니 조금 안쓰러워집니다. 이럴 때 저는 꼭 여행이 필요하더라고요.

여행,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때로는 계획 없이 무작정 떠나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계획된 일정에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가는 여행이 얽매이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답니다. 많은 날, 먼 곳, 이름난 곳일 필요는 없습니다.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잠시 휴식이 필요할 뿐입니다. 무조건 떠나야겠습니다. 즉흥적으로 만나서 함께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더욱 좋습니다. 때로는 홀로여도 괜찮습니다. 모든 것을 비어 버릴 넓은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목적지는 이 가을 단풍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습니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과 옷을 갈아입고 마중 나온 나뭇잎, 이들을 춤추게 하는 바람이 반겨 줄 테니까요. 바람이 조금 차갑거늘 둘이 손을 잡아 체온을 나누면 됩니다. 혼자라면 팔짱을 끼고 나의 온기를 느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여행이 별건가요. 내가 사는 곳을 떠나 아름다운 경치나 이름난 장소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 아니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건강한 몸과 마음만 있으면 되겠지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철저히 준비하지 않아 조금 부족하면 어때요.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틀에 갇혀 있던 나를 놓아 주면 좋지 않을까요.

어느 날 점심식사를 하다 앞에 앉아 있던 친구가 나처럼 울적해 보이기에 느닷없이 차에 태우고 길을 나섰습니다. 끝없이 갈 것처럼 말없이. 어느 순간 바깥 경치에 말문이 터집니다. 길가 가로수가 온통 아름다운 빛깔로 단풍이 들었네요. 단풍 빛깔에 젖은 우리의 마음이 가을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아갑니다. 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납니다. 이것이 여행이었군요. 긴 여행이 아니면 어떤가요. 짧은 여행이었지만 여름 뜨거운 태양에 짓눌렸던 것들이 모두 날아갑니다. 한 나절의 짧은 여행이 무거웠던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 주네요. 여행이 주는 선물입니다.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