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천고마비'(天高馬肥)

@도철 입력 2018.10.10. 00:00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무더위가 지나니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제법 차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논밭엔 황금물결이 일고 사과, 배, 감, 밤 등 가을 결실이 풍성하다.

사실 우리지역의 먹거리가 어디 가을뿐이겠는가. 딸기, 수박, 참외, 복숭아, 자두, 포도, 사과, 배, 감 등 전용냉장고를 들여야 할 정도로 풍성하고 영광 굴비에 신안 천일염, 목포 먹갈치는 물론 무안 세발낙지, 강진 찰전어와 장흥 매생이 등의 먹거리가 계절 불문이다.

서해안 바닷바람을 맞은 마늘, 양파, 고구마, 대파, 배추 등 채소류도 빼놓을 수 없지만 풍광도 아름답다.

무등산에 오르면 주상절리 바위가 걸음을 멈추게 하고 바람에 날리는 천관산 억새도 장관이다. 슬로시티 완도 청산에는 하얀 달빛을 머금은 메밀이 말을 건네고 장성 애기단풍은 올해도 나이를 먹지 않는다. 그래서 가을을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 했을까!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으로 가을 정취를 아름답게 비유한 말이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어원을 보면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것이다.

천고마비는 원래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라 해서 중국 역사서인 '한서'(漢書)에 실린 말인데, 뒷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면, 북방에서 흉노족이 쳐들어와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다. 가을은 흉노족(匈奴族)이 타는 말들이 살찌고 건강해지는 계절이기 때문에…'

그렇다. 중국인들에게 '천고마비'는 낭만이 아니라, 전쟁의 공포였다. 흉노족은 초원을 달린 몽골족의 조상으로 가축을 키우던 유목민이었다.

중국인들이 이름붙인 '흉악한(匈) 노비(奴)'라는 뜻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중국인들의 두려움과 증오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진나라와 조나라, 연나라 등 흉노와 국경을 마주한 나라들은 저마다 장성을 쌓아 흉노의 침략에 대비했고 이후 진시황이 이 장성들을 하나로 연결해 만리장성을 쌓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한 때 사마씨의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의 5호 16국 시대를 맞이하게 했던 흉노는 유목민족이라 정착하지 못하고 흩어지는 특성 때문에 한족에 밀려 결국 자신들의 터전을 잃고 동부 유럽 쪽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 유럽인들은 이들을 훈(HUN)족이라 불렀고 생존을 위해 집단으로 밀려온 훈족의 기마군단의 위력은 유럽 기사단들도 막기 어려운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유럽의 국가들은 훈족의 서진을 막기 위해 뭉쳐 대항하다 아름다운 여자를 보내 훈족의 리더 '아틸라'를 암살하는 데 성공한다.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당시 흩어진 훈족이 머물러 정착한 곳이 지금의 헝가리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에게'천고마비(天高馬肥)'는 가을의 풍성함이다.

도철 지역사회부장 douls183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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