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지식의 저주'

@김영태 입력 2018.10.01. 00:00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무렵의 일로 기억한다. 전공이 아닌 교양으로 선택해 들은 과목의 교수는 해외 유학파로 꽤 학식 깊고 학덕 높았다. 그러나 그 교수의 강의를 ?번 듣고난 뒤 곧 싫증이 났다.

강의 내용이 지루할만큼 딱딱했던데다 어쩌다 강의 시간에 늦어 뒷자리에 앉으면 목소리 마저 작아 강의 내용을 제대로 듣지 못하기 일쑤였다. 필자만이 느끼는 감정으로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학생들도 그 교수의 강의에 실망감을 드러냈음을 알게되었다. 학습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않은 수강생의 분별없는 학습 자세가 근본 문제였겠지만 교수의 강의는 외람되게도 기대에 못 미쳤던 듯 하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에게 물리학을 배우면 안된다'는 우스갯 이야기가 있다. 아인슈타인이 누구인가. 중세의 과학 발전에 새로운 이정표를 썼다는 아이작 뉴튼 이래로 근·현세의 물리학 판도를 재정립한 이가 바로 그다. 원자폭탄 개발의 이론적 근거가 된 상대성 이론과 관련 공식(E=mC²)은 100여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불멸의 공(功)'으로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그가 상대성이론을 발표하고 3년 뒤 스위스 베른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수강생들의 기대와 달리 열역학법칙의 기본 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명성에 비해 형편없는 강의로 학기말에 3명의 수강생만 남았고, 다음 학기엔 수강신청자가 1명에 불과해 강의가 폐지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참이 지나 쮜리히의 스위스 연방대학 교수에 지원, 시범강의에 나섰으나 또 한번의 실망스러운 강의로 대학 학장까지 혀를 내둘렀다.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의 저자 윌터 아이작슨은 "아인슈타인은 절대 학생들에게 영감을 줄 수 없는 선생이었다. 그의 강의는 혼돈 그 자체였다"고 언급했다. 물리학 이론에 있어서 역사상 초일류 학자가 정작 학생들에겐 배움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최악의 선생이었던 셈이다.

와튼스쿨의 유명한 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 교수도 "내가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을 당시 노벨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명 교수들에게 뛰어난 가르침을 받으리라 기대했는데 입학 후 한달이 지나고 그것이 대단한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최악의 선생님들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랜트 교수는 최고급 전문가와 최악의 강사의 차이는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전문가 본인은 어떤 이론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상대는 정작 이를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강의에 나선다는 것. 가르침을 받으려는 학생, 배움에 목말라 하는 수강생들이 자신과 같은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인지적 오류다.

말하는 법, 설명하는 법, 제대로 전달하는 법.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는 최고급 지식인, 학자, 전문가들에게도 중요하다. 김영태논설주간kytmd86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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