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진의 어떤 스케치- 조흥은행 광주지점과 한국은행 부산지점

@조덕진 입력 2018.09.18. 00:00

여기 두 개의 건축물이 있다.

1963년 건축된 한 건축물은 지방자치단체가 문화재로 지정, 매입 보존하고있다. 일제 강점기인 1920년 민족자본으로 건립된, 역사와 정신을 자랑하는 또 다른 건축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상업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부산 중구 대청동에 자리한 한국은행 부산지점과 광주시 동구 충장로에 자리했던 구 조흥은행 건축물의 명암이다.

한국은행 부산지점은 1910년께 조선은행으로 출발, 해방후 한국은행 부산지점으로 개점됐다. 1963년 철거된 후 신축돼 한국은행 부산본부로 사용됐다. 2013년 부산에 국제금융센터가 문을 열면서 이전을 앞둔 한국은행 부산지점은 매각을 결정했다. 부산지역사회는 한국 건축가 1세대(이천승)가 설계한 건축물이라며 근대 건축물 보존 운동을 전개했고 부산시는 해당건물을 문화재로 지정했다. 시가 문화재로 지정해 매각이 원할치 않자 양 기관은 2015년, 7년 분할 납부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했고 이 건물은 부산 비엔날레를 비롯한 각종 문화행사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 주 광주에서 열린 동아시아 언론인 포럼에서 부산 국제신문 발제에 선보인 이 사안이 결코 남일 일 수 없는 이유는 '광주'와 너무 대비 돼서다.

광주에는 일제 강점기부터 순수 '광주'민족자본으로 탄생한 '호남은행'이라는, 여느 지역에서도 만날 수 없는 아름다운 자본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호남 은행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 호남 갑부 현준호와 목포의 거상 김상섭을 중심으로 광주와 목포에 창립된, 순수 민족계 은행이다. 일제가 기존 민족자본을 강제합병하자 이에 대응해 지역자본가들이 새롭게 탄생시킨 금융자본으로 이후 경상도 지역까지 세를 넓히며 중요한 민족자본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해방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1942년 동일은행에 합병당했다. 호남은행은 해방 후 조흥은행으로 다시 태어난다. 구한말(1897년) 한성은행으로 출범한 최초의 민간 상업은행 조흥은행이 1943년 동일은행으로 합병되면서다. 이후 조흥은행은 2006년 신한은행과 통합된다. 조흥은행 광주지점은 일제 강점기 민족혼을 불살랐던 지역유지들의 지역주의와 독립, 민족혼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이 놀라운 공간이 지난 2월, 흔적도 없이 헐렸다. 상업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광주가 문화도시, 예술도시 맞는가라는 한숨이 절로 난다. 부산시는 60년대 건축물도 문화재로 보존하고 있는데, 문화도시 광주는 민족혼이 어린, 일제강점기 근대 건축물을 논의 한번 해보지 않고 밀어버린 것이다.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동구청 담당 공무원의 행태는 '영혼없는 공무원'의 전형이 이런 것인가라는 탄식을 자아내게 했다. 당시 동구청 담당과장은 "법에 따라, 원칙대로 신고한 것이고 소유주 신청에 의해 수리하도록 돼있다. 뭐가 특별한지 잘 모르겠다. 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유산으로 등록된 것도 아니지 않는냐"라는 말을 주저없이 했다. 심지어 광주시는 이 건축물이 헐린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근대 건출물에 대한 자료는 2010년대 초반에 엉성하게 수집한 것이 전부였다.

더이상 놀랄 것도 없지만, 조흥은행 건축물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핵심 사업중 하나였다. 아시아특별조성계획 연차별 실시계획에 전당 활성화차원에서 이 건축물을 박물관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문화부 승인까지 추진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얼마전 광주시가 '근대건축물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소 잃고라도 외양간 잘 고쳐 남은 소라도 잘 보호하길 기대한다. 언필칭 문화수도 아닌가, 문화체육부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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