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공약의 덫

@윤승한 입력 2018.09.06. 00:00

윤승한 지역사회부장

몰라서 가는 게 아니다. 알면서, 발목 잡힐 걸 감수하면서 가는게 통상적이다. '유혹'이 그렇단 얘기다. 보통은 어쩔 수 없었다고들 변명한다.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유혹의 마력은 빠져들긴 쉬운데 헤어나긴 어렵다는 데 있다. 유혹의 덫이다. 말 그대로 치명적이다.

이런 유혹이 잘 먹히는 판 중 하나가 선거판이다. 한번에 많은 걸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는 순간 모든 걸 잃어야 하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이성은 사치일 뿐이다. 선거때만 되면 가진 것 많은 정치인들이 유혹에 취약해지는 이유다. 표(票)에 대한 유혹만큼 강렬한 것은 없다.

특히 유혹은 공약 속에 잘 스며든다. 표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선거때마다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 선심성 공약이 난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6·13지방선거도 이 유혹을 비켜가지 못했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치열한 구도일수록 그랬다. 우려와 비판 그리고 이어진 논란에도 불구하고 선심성 공약은 정제되지 않은 채 그대로 표심 공략의 무기가 됐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논란이 됐던 광양보건대 정상화 공약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공약이 제시된 건 지난 5월 3일이었다. 선거 한달여를 앞두고 무소속 후보와 민주당 후보간 광양시장 선거전이 한창이던 때였다. 이날 민주당 소속 의원들과 같은 당 소속 유력 단체장 후보들이 광양보건대 등용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김태년 당 정책위의장, 이개호 전남도당위원장을 비롯해 김영록 전남도지사 후보, 허석 순천시장 후보가 함께 했다. 열세를 보이던 같은 당 소속 광양시장 후보를 지원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전남도와 광양시가 재정기부금을 공동 출연해 광양보건대 정상화에 나서겠다고 공약했다.

발표 직후 이 공약은 선심성 논란을 불렀다. 실현가능성 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표를 의식한 즉흥적 공약이라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사실 광양보건대의 현실도 이런 논란을 부추기는데 한몫 했다.

광양보건대의 실질적 설립자는 바로 사학비리로 이름을 떨친 이홍하씨다. 지난 2012년 말 당시 서남대 이사장이던 이씨가 교비 횡령으로 구속되면서 광양보건대도 사학비리 후폭풍 속으로 말려들었다. 광양보건대는 결국 교육부 감사를 받은 뒤 처분을 이행하지 못하면서 2015년 관선이사체체로 들어갔다. 여파는 컸다. 복잡한 학내 상황은 각종 대학 평가에서 광양보건대를 최하위권으로 추락시키는 요인이 됐다. 실제 광양보건대는 2015년 교육부의 대학구조평가 'E등급', 2016년 'E등급 재지정', 2017년 '제한대학 유지'를 거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급기야 올 8월 또다시 교육부의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재정지원제한대학 유형Ⅱ에 지정되면서 사실상 퇴출 위기에 처했다.

이런 상황에서 광양보건대 정상화 공약에 대한 논란은 사실상 '왜 재단의 비리로 위기를 자초한 사학에 도민들의 혈세를 쏟아부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였다.

공약대로라면 광양보건대 정상화에는 적잖은 혈세가 투입돼야 한다. 전제조건이 횡령금액에 대한 재정보전이기 때문이다. 광양시에 따르면 교육부가 요구하고 있는 공식 횡령금 보전액은 403억원이다. 다만, 이 금액은 민주당이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자체 계상한 액수인 279억원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어찌됐든 광양보건대가 정상화되려면 최소한 설립자가 횡령한 수백억원의 돈을 세금으로 채워넣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광양시의 요구는 확고하다. 광양보건대를 도립대로 전환해 달라는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김영록 전남지사가 한 공약인 만큼 그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압박이다. 기초자치단체엔 학교 정상화를 위한 재단법인 설립과 출연의 권한이 없는 만큼 전남도가 완전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도 함께 담겼다. 김 지사가 "광양시가 주도하는 지원에 도에서도 적극 협조하겠다"며 방어막을 치고 있지만 이 정도로 문제가 해결될 성 싶진 않다.

김 지사의 입장이 참 곤궁해 보인다. 물러서자니 '헛공약'에 대한 비난이 두렵고 나아가자니 도민들을 설득할 명분이 만만치 않다. 공약의 덫에 제대로 걸린 형국이다. 김 지사의 해법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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