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애절양(哀絶陽)

@김영태 입력 2018.08.20. 00:00

갈밭 마을 젊은 아낙 길게 길게 우는 소리(노전소부곡성장·蘆田少婦哭聲長)/관문 앞으로 달려가 통곡하다 하늘보고 울부짖네(곡향현문호궁창·哭向縣門號穹蒼)/출정나간 지아비 돌아오지 못하는 일 있다 해도(부정불복상가유·夫征不復尙可有)/사내가 제 양물 잘랐단 소리 들어본적 없네(자고미문남절양·自古未聞男絶陽).

강진으로 유배온 다산(정약용)은 '애절양(哀絶陽)'이라는 제목의 한시(漢詩)를 통해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한살이를 세상에 전했다. 군역(軍役·조선 시대 군대의 복무)의 횡포를 견디다 못한 백성이 자신의 음경(성기)를 자른 것을 보고 지은 詩(7언20구)는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권 4에 수록돼있다.

조선 말기는 왕조의 학정(虐政)이 극도에 달했던 때다. 부패하기로는 당상(堂上)과 당하(堂下)는 물론 미관말직도 예외가 아니었다. 말탄 귀인보다 말고삐 잡은 종놈이 더 설쳐대고, 가마 탄 양반보다 가마꾼이 더 위세를 부리던 시절. 지방 관아의 탐관(貪官)과 오리(汚吏), 그 밑의 아전바치들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왕조의 재정을 떠 받치는 근간이었던 삼정(三政)인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정(還政) 제도가 극단한 수탈과 착취의 수단이 돼 힘없는 백성들에게 있는 것 없는 것 다 빼앗고 뼈까지 발라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있지도 않은 토지에 세금을 부과하는 '백지징세(白地徵稅)', 갓난 아이나 죽은 사람에게 군포(軍布·군역을 면제받는 댓가로 내는 베)의 의무를 지우는 '황구첨정(黃口簽丁)'과 '백골징포(白骨徵布)'는 착취와 수탈의 용어들이었다. 백성들에게 빌려주던 원곡에 모래나 겨를 섞거나 실제보다 훨씬 적은 양을 주어놓고 거두는 모곡은 원곡대로 빼앗고, 이자를 곡식이 아닌 돈으로 받아 착취하거나 환곡받기를 거부하는 백성에게 강압적으로 배부하는 악행들이 그랬다. 삼정의 문란은 급기야 홍경래난(1811년), 임술농민항쟁(1862년) 등 민란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해 왕조의 명줄을 재촉했다.

강진군이 목민심서 저술과 선생의 해배(解配·귀양에서 풀려남) 200주년을 맞아 오는 10월9일부터 22일까지 다양한 행사를 추진한다. '다산의 삶·다산의 꿈, 다산에게 길을 묻다','다산에서 한강까지, 다산과 함께 길을 걷다'를 주제로 한 포럼과 강진에서 선생의 고향인 경기도 남양주시까지 걷기 행사가 열린다. 유배 생활동안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의 저서를 집필하며 제시했던 조선의 청사진을 조명해보는 시간도 갖는다.

208년만에 강진으로 귀향하는 '하피첩(霞帔帖·보물 제1683-2호·부인이 보내준 치마를 잘라 두 아들에게 써 보낸 편지첩)' 등 다양한 유물을 공개하는 특별전시회는 본 행사에 앞서 9월16일까지 개최한다. 특히 그의 시 '애절양'은 영상으로 선보인다. 김영태논설주간 kytmd8617@naver.com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