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의사소통

@도철 입력 2018.08.08. 00:00

그는 조선 성리학의 거성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국립대학교 총장급인 성균관 대사성이다. 모두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 온 그에게 과거에 갓 급제한 신출내기 제자가 편지를 보낸다. 스승의 성리학 논거의 핵심이 잘못됐다는 내용이다.

스승과 제자, 26년의 나이 차, 대사성과 새내기, 그리고 영남과 호남.

유교문화에 익숙한 조선시대에 이들의 사단칠정(四端七情)의 논변(論辨)이 8년 동안이나 이어진 것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120통의 편지를 주고받은 스승과 제자의 논변은 관련 학계에서는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실화다.

사단(四端)의 근원을 이(理)로, 칠정(七情)의 근본을 기(氣)로 단정한 스승 퇴계 이황의 '이원설'에 사단과 칠정 모두 정(情)에 근원한다며 제자 고봉 기대승은 '일원설'을 주장한다.

"사단(유학에서 본 사람의 본성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과 칠정(사람의 일곱가지 감정-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은 모두 정인데, 사단을 이(理)로 보고 칠정은 기(氣)로 따로 분리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는 내용이다.

이(理)와 기(氣)는 분리할 수 없으며 사단과 칠정은 섞여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기이원설을 주장한 이황과는 달리 이기일원론적인 해석이 맞다고 주장한다.

일부 사람들은 그러나 이 같은 논쟁을 악용해 영호남 갈등의 대표적 사례로 오인하기도 했지만 학자들은 오히려 시공을 뛰어넘는 의사소통의 롤모델이라고 강조한다.

고봉과 퇴계의 논변은 소문이 나면서 선비들 사이에서도 큰 관심사가 됐다.

베껴서 돌려보며 둘의 견해에서 같고 다른 것,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나름의 해석과 철학을 더해가며 학문을 발전시켜 간 것이댜.

누가 옳고 그릇됐는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제자의 당돌함을 8년 동안이나 받아 준 퇴계나 자신의 견해를 강하게 주장하는 과정에서도 끝까지 스승에 대한 존경과 선을 넘지 않는 고봉의 소통은 많은 교훈을 남긴다.

이 과정에서 퇴계와 고봉이 중심을 잡을 수 있는 하나는 바로 목적이 같았다는 분석이다.

바로 공자의 이상세계인 '대동 세상' 실현이다.

지금의 민주주의와 비슷한 의미가 많은 '대동 세상'은 모든 사람이 함께 어울려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전쟁을 통해 남북으로 갈라섰고 갈라 선 뒤에도 노선이 다르다고, 서로 속한 정치색이 다르다고, 심지어 태어난 곳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 으르렁대며 시간을 낭비해 왔다. 이를 본받은 듯 우리 아이들도 생각이 다르다고 왕따 시키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외면하고 있다. 혼술, 혼밥 등에 익숙한 혼자만의 세상보다 같이 잘사는 '대동 세상'에 끌리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도철 지역사회부 부장 douls183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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