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가득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섯 살 소녀, 오즈게 사만즈.
터키의 이즈미르에서 태어나 자란 이 소녀는 세상에 대한 궁금함으로 가득하다. 엄격하지만 책임감 강하고 항상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아빠와 상냥하고 세심한 엄마, 똑똑하고 동생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언니와 함께 살아가는 이 소녀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다.
이 책은 화가이자 노스웨스턴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이자 주인공인 오즈게 사만즈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어린 시절 그녀는 바다를 사랑했고 모험으로 가득한 삶을 꿈꾼 반면, 부모님과 친척들, 그녀를 둘러싼 사회는 규격에 맞춘 듯, 틀에 박힌 삶을 요구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언니처럼 공학자가 돼 안정적으로 사회에 적응하기를 강요했다. 당시 그녀가 성장했던 터키의 현실은 물질주의로 가득 차 있었고, 여성에 대한 권리를 무시하고 짓밟는, 그로 인해 여성과 남성 사이에는 깊은 갈등이 존재했다.
이 어지러운 현실 한가운데서 어린 오즈게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는 선망하는 쿠스토 선장처럼 스쿠버 다이버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다양한 삶을 경험할 수 있는 연극에 몸담을 수 있을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면서도 가족과 친구들을 만족시키며 이 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사연을 솔직하게 풀어가면서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들로 재미를 더한다.
오즈게는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20년 삶 속에서 꿈을 키우고, 현실의 벽에 좌절하기도 한다. 때로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기도 한다.
그녀의 성장 배경인 1970년 터키 사회는 좌우익 양분화, 계급 간 갈등 심화, 자본주의에 의한 경제적 양극화 등으로 혼란에 뒤덮였다. 전통적 남존여비 사상이 남은 탓에 여성은 권익을 존중받지 못했다.
오즈게는 폐쇄적 터키 사회 분위기에서 스쿠버다이빙을 배워 전 세계 바다를 탐험하는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공학이 아닌 수학을 전공하지만, 이내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자신감도 잃게 되고, 꿈에 대한 기대감도 사라지던 어느 날 대학 캠퍼스에서 걸어가던 중 강도를 만난다. 구사일생한 오즈게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이 책은 단지 한 소녀가 아닌, 이 순간에도 꿈을 좇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흔히 가족의 기대가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과 동떨어져 있곤 한다.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가족은 실망하고, 그 실망 때문에 자신이 원치 않아도 그 기대에 맞춰 살아가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작가는 말한다. "자, 이제 당당하게 실망시킬 용기가 생겼니? 그럼 하고 싶은 일을 하러 가볼까?"라고.
놀랍고도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과 독창적인 콜라주 기법을 활용한 그림을 통해 한 소녀의 성장기를 감동적으로 들려준다.
김옥경기자 uglykid7@hanmail.net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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