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존재의 고유성에 대해서

@무등일보 무등일보 입력 2018.07.23. 00:00

이화경 소설가

"엄마는 나를 낳기 전으로 돌아가서, 내가 지금 같은 장애가 있는 걸 알았으면 그래도 낳았을까?" 슬프고 고통스러운 질문이다. 하지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다. 그는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고, 열다섯 살까지 병원과 집에서만 생활해야만 했다. 그는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의 중학부와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로스쿨을 마친 후에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김원영이다.

영화 <컨택트>의 원작인 단편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어학자다. 어느 날 지구에 외계 생명체들이 찾아오고 언어학자인 그녀는 '헵타포드'라 불리는 그들과의 의사소통 프로젝트에 합류해 이질적인 언어를 연구하게 된다. 헵타포드를 체득하게 되면서 그녀는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결혼, 출산, 이혼, 딸의 죽음 등을 모두 미리 알 수 있게 된다. 그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딸이 장차 죽게 될 사건을 바꾸기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음도 알게 된다. 자유 의지를 가지고 딸을 잉태하지 않을 결단만 내리면 앞으로 닥칠 끔찍한 불행도 막을 수 있다. 과연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까?

두 이야기의 핵심은 존재의 '고유성'이다. 변호사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유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배제되는 무수히 많은 '잘못된 삶', 혹은 세상의 법정에서 실격을 선고당한 이들을 위한 변론을 하기 위해 책을 썼다. 그는 최근에 출간한 책에서 변론을 위해 사회학, 법학, 철학, 인문학, 문학, 사례와 판례들을 치열하고 꼼꼼하게 적용했다. 1990년대 중반 강원도에 사는 한 부부가 장애아를 출산하게 된 책임을 산부인과 의사에게 물으며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던 사례, 자신과 장애 친구들이 겪었던 체험 등을 제시하면서 '존재의 중대한 결핍이라고 생각되는 속성과 경험을 진정으로 수용한다는 것의 의미'를 파고든다.

아울러 그는 세상에서 사회적 성취를 이룬 장애인들에게 극복이니 불굴의 의지니 같은 수식어를 붙이는 것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아무리 낙관적이고 강인한 정신을 가진 장애인이라도 턱이 높은 보도를 건널 수 없고 화장실을 가지 못한다면 삶에 동기부여를 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루 종일 오줌을 참으면서 희망을 가질 수는 없으며, 오줌을 참을 때 필요한 건 희망이 아니라 화장실이라고 말한다.

때로는 알싸한 유머가 있는 문장으로, 장애가 있는 몸으로 숱한 난관을 겪은 자 특유의 단단하고 성찰적인 문장으로,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고투하고 공부했던 변호사다운 치밀한 문장으로 그는 인간 실격 혹은 잘못된 삶에 대한 변론을 써나간다.

더 나아가 그는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권리나 시민들의 교양, 인권의식, 도덕적 배려 따위에 기대지 않고도, 그 어떤 규범에 의존하지 않고도 사람들 사이에서 존중받고, 호감의 대상이 되고,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고 싶은 바람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토로한다. 장애가 있는 신체나 실격당한 존재감, 잘못된 삶이라는 규정에서 벗어나는 일은 스스로 가능한 것일까? 장애와 질병이 잘못된 것이 아니며, 우리 인격의 고유한 일부이자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 다양성의 한 축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그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 대답한다.

나 자신도 오랫동안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시시때때로 배제와 무시의 말을 들으면서 쓸모없는 존재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초음파로 성별 확인이 가능했던 시절이었다면 태어날 수 있었을까? 이미 딸이 두 명이나 있는 상황에서 가난한 부모가 태아가 딸이라고 하면 낳았을까? 묻지 않았으므로, 가정법이란 늘 의미가 별로 없으므로, 답을 들을 수는 없다.

이 글의 처음에 나오는 질문에 변호사의 어머니는 어떤 답변을 했을까.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은 장차 도래할 비극을 알고서도 딸을 임신하고 낳을 결심을 했을까. 이미 존재한 단 한 명의 '고유성'을 부정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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