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에세이- 엽록체와 카펠라

@무등일보 무등일보 입력 2018.06.14. 00:00

박성용 KBS광주방송총국 PD

벌써 5년째다. 동네 사람들과 광주 중앙공원 안에 있는 오래된 농장의 밭을 임대해 매주 일요일 모여서 울력을 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지만 근육을 쓰고 땀을 흘리는 단순한 몸의 순환을 관찰하는 재미 혹은 그 몰입이 첫 번째였고, 서당 개 3년이면 풍월 읊는다고 어렴풋이 계절의 순환 속에 담긴 섭리를 조금씩 느끼기도 한다. 또 오랫동안 입안에 맴돌던 노자의 한 구절 '천지불인(天地不仁)', '天과 地는 仁하지 않다'는 것은 우주만물과 자연이 우리가 감정이입하거나 편의적 비유로 대상화할망정 자연이란 그 자리에 그저 있을 뿐이라는 것임을 알겠더라.

천지불인.

눈송이가 앉은 거무튀튀하고 거친 포도나무 가지에서 기적처럼 연보랏빛 조붓한 혀처럼 새순이 돋는 봄, 자두열매가 거짓말처럼 육즙 가득히 속살을 채우고 주렁주렁 붉은 등처럼 달리는 여름, 나무탁자에 거위벌레가 잘라놓은 도토리가 툭툭 떨어지는 가을 그리고 겨울의 긴 침묵, 이 모두가 위대한 섭리의 향연이라고 하는 것이 어쩌면 인간적 감흥에 취한 것이라는 얘기다.

천지불인2.

우리 모임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햇빛과 땅을 기본으로 호미 한 자루를 더한다는 소박한 품격을 유지하지만, 기실 농사는 해충과 잡초와의 전쟁이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순간, 해충과 잡초 즉 해롭고 잡스러운 자연이라고 대상화한다. '몹쓸 날씨!' 하면서 구시렁대는 것 역시 인간적 편견이지 않겠는가.

인간은 분석적 환원적 결과를 통해 대상을 분류하고 나누는 방향으로 인식이 진보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정작 자연은 그런 인식 지평 너머에 그저 있을 뿐이다.

농장을 둘러싼 중앙공원 숲을 본다. 몇 그루 남지 않은 소나무에 칡넝쿨이 휘휘 감고 올라가고 있다. 푸른 녹색 숲이 푸근하다는 감정 역시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진 것이다.

지구상의 생명체의 출현 시기를 보면 동물보다는 식물이 훨씬 늦었고, 식물을 단순하게 말하면 엽록체라는 '동물'과 결합한 생명체다. 빛을 따라 엽록체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아마도 놀라실 것이다. 그렇다. 식물이 녹색인 이유는 하필, '녹색 동물'과 결합해서 그런 것이다.

아주 오래전 특정 시점에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이 있다면 그는 지구를 붉은 행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바다가 한때 붉은 색 플랑크톤으로 가득 찼으니까. 눈에 보이는 건 믿을 게 못된다.

최근 유명세를 탄 싱가포르의 카펠라 호텔이 있다. 카펠라는 이름은 마차부자리의 1등성으로 대단히 밝아서 밤하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별 중 하나다. 그러나 카펠라는 망원경을 통해서 보면 쌍성(보통 우리 눈에 보이는 별은 쌍성이 많다)이 두개, 별이 4개다. 즉 우리 태양보다 큰 항성 2개가 가깝게 돌고 있고 또 태양보다 작은 항성 2개가 마주보며 돌고 있는데, 이들 두 쌍이 크게 원을 그리고 마주보며 돌고 있다. 우리 눈은 역시나 믿을 게 못된다.

카펠라는 사실 별 4개였던 것이다.

그쪽 카펠라에도 행성들이 있다면 지구의 엽록체처럼 태양빛으로 에너지를 만드는 생명체가 있을까? 뭐 그쪽이야 그러든 말든. 우리 태양계와 가장 가까운 별은 4광년쯤이고 카펠라는 40광년 이상 떨어져 있다. 우리가 이 무한한 우주 속 지구 위에 지금 존재하면서 자연의 무쌍함에 마음껏 감정 이입하면 또 어떤가. 하나의 생명체로 지구위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를 이따금이라도 따져 본다는 것은, 여전히, 대단한 일이다.

(광주 중앙공원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에도 감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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