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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것, 담배
입력시간 : 2018. 05.31. 00:00


권순석 화순전남대병원 전남금연지원센터장

전쟁은 광고와 더불어 담배를 우리의 일상으로 퍼뜨린 주범이다. 담배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시기는 조선시대 두 차례의 왜란을 거치면서 왜군에 의해 전래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광수의 지봉유설과 인조실록).

1차 세계대전을 그린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서는 "전투에서 담배가 배급될 때 그것은 곧 공격의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라는 대목이 나온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감하게 돌격 앞으로 하는 병력을 확보하기 위해 담배는 반드시 필요한 군수품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자 미군 최초의 5성장군인 존 조셉 퍼싱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총알수 만큼 많은 담배"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군인뿐만 아니라 자식과 남편을 전장으로 보낸 부모와 여성들도 불안과 공포를 잊기 위해 담배를 피웠고 담배산업은 전쟁과 함께 급속도로 성장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14년에 180억개였던 미국의 연간 담배생산량이 1918년에 470억개로 증가했고,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1945년에는 미국내 담배소비량 (생산량이 아닌)이 무려 4,000억개까지 증가하였다.

히틀러의 엄격한 담배규제정책으로 흡연이 금기시되고 공공장소에서 흡연이 불법이던 독일은 패전이후 미국 담배회사가 공급한 담배가 물밀 듯이 들어와서 국민 일인당 담배소비량이 3배나 증가하였다.

미국과 독일은 전쟁에서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졌지만 담배회사만큼은 두 나라에서 모두 승리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판매된 군용담배 화랑은 1949년부터 1981년까지 32년 동안이나 판매되었다. 군용담배는 2005년까지 무려 56년간 모든 군인에게 (담배를 피우던 피우지 않던) 무상으로 공급되었다.

1982년부터는 담배대신 기호품비로 받을 수도 있었지만 한달에 15갑씩 담배를 배급해주던 군대의 흡연권장문화가 한때 50%가 넘던 한국 성인남성의 높은 흡연율에 크게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와서 전쟁은 끝났고 세상은 변했지만 담배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았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 담배를 사용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전사한 군인보다 더 많은 국민들이 담배로 인해 목숨을 잃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흡연에 의한 사망자수는 매년 600만명 수준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약 5만 8천명 정도로 매일 160명이 흡연관련 질환으로 사망하는 중이다.

국가간의 전쟁은 끝났지만 담배와의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이 전쟁에서 승자는 없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요즘 남북간의 평화와 화해무드가 한창이다. 동서간 냉전체제가 종식된 이후에도 세계인들은 우리가 체감하는 것 이상으로 한반도를 전쟁의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국지전이 휴전중인 상태이니 당연한 시각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사회가 풀어야할 숙제중 하나인 정치사회적 후진성도 전쟁이 남긴 상처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의 일련의 과정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귀결되고, 전쟁이 남긴 개인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과정으로까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분단국가의 상징물의 하나로 담배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길 희망한다.

5월 31일은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제 31회 세계금연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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