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진의 어떤 스케치- 광주의 ‘미스 사이공’을 꿈꾼다

@조덕진 입력 2018.05.29. 00:00

문화체육부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5월 상설극 애꾸눈 광대 버전 Ⅱ '어머니의 노래'가 지난 23일 올 첫 무대를 선보였다.

135회를 맞는 이날 무대는 80년 5월27일 새벽 도청에서 최후의 방송을 했던 박영순씨를 비롯해 계엄군에게 여동생을 앗긴 가족 등 80년 현장에 있던 분들과 일반 시민들의 이른 발걸음으로 표가 일찌감치 매진됐다.

애꾸눈 광대는 1980년 한쪽 눈을 잃은 이세상씨(본명 이지현 전 518부상자 동지회장)의 삶을 극화했다. 이씨는 계엄군에게 자신의 눈뿐아니라 동네 후배를 함께 잃었다. 후배네 집에 여동생을 시집 보냈으나 그마져 불행하게 세상을 등졌다. 공안의 감시와 수배로 인한 유랑인 같은 삶. 5월 항쟁 30주년을 맞으며 뭐라도 해야했다. 끼를 살려 자신의 삶을 극화한 '애꾸눈 품바'를 선보였다. '애꾸눈 광대'의 출발이다.

오월민중항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으로 걸어들어간 광주시민들의 삶은 한편의 소설이고 한편의 영화로 장편 대서사를 이룬다.

1980년,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던 이정연은 전남대 사범대 상업교육과 2학년이었다. 조대부중과 광주상고 야간을 나와 교사의 꿈을 꾸며 사범대에 진학했다. 시대의 부름에 나선 그는 도청을 사수하다 5월27일 계엄군의 총탄에 유명을 달리했다.

극단 토박이가 지난 88년 초연한 이후 광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오월극으로 명성을 날렸던 '금희의 오월'의 실제 주인공이다. 여동생 금희의 시선으로 가족과 대인시장에서 장사하던 부모님과 시장사람들의 목소리로 이 열사를 기억한다.

도청사수위원회 홍보부장으로 이 열사와 함께 했던 광주의 영원한 광대 고 박효선을 비롯한 토박이 단원들이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그를 지상으로 불러낸 것이다. 토박이 창단 멤버들은 70년대부터 마당극 등 연희무대를 통해 대중선전활동을 해오던 이들로 80년 민중항쟁이 발발하자 항쟁의 주역으로 깊숙이 참여했다.

이에 앞서 85년 선보인 '잠행'은 고 박효선씨가 광주항쟁 최후의 밀항자 고 윤한봉선생과 자신의 삶을 극화한 작품이다.

이처럼 한 사람이 살아낸 시간과 사연, 그의 존엄을 결코 잊지 않으려는,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문화예술로 피어오고 있다.

토박이를 비롯해 놀이패 신명, 푸른연극마을 등 지역 극단들은 80년대부터 5월 진실찾기의 최전선에서 대중과 호흡하고 있다. 광주 안에서 뿐아니라 전국연극제 등에 5월 작품을 선보이는 식이다. 그 중 신명의 마당굿 '일어서는 사람들'은 작품 하나로 롱런하기 어려운 지역공연현실에서 3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다음달 17일 제주43 70주년 폐막공연으로 선보이고 7월에는 대전에서도 선보일 예정이다.

토박이 역시 광주 5월 연극 대표작으로 불린 '금희의 오월'을 비롯해 매년 5월이면 5월극을 선보이고 있다. 3∼4년 전부터는 자체적으로 1980년을 주제로 한 상설극을 만들어 연중 선보이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푸른연극마을도 97년 '너에게로 간다'를 초연한 이후 매년 5월극을 선보이며 5월극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광주를 찾는 이들이 5월을, 피와 살을 지닌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하려는 지난한 노력이다.

문제는 이같은 움직임이 이들의 '열정'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대부분이 상설극 마저도 자체 운영하고 있다. 다행히 몇 년전부터 문화재단의 '지역특화문화거점지원사업'이 도움이 되고 있으나 한계는 여전하다.

광주에 오면, 그곳에 가면 광주를 호흡할 수 있는 예술작품 정도는 상시로 만날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이제 곧있으면 40주년이다. 지금부터 준비해도 늦다.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