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에세이-외롭고 높고 쓸쓸한 오월 여성들의 이야기

@무등일보 무등일보 입력 2018.05.24. 00:00

김채희 광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오월을 겪었던 여성 선생님들과 마주할 기회가 있었었다. 선생님들은 후배세대인 우리에게 자신들의 경험을 아프고 힘들지만 전해주고자 한다. 하지만 결코 말할 수 없었던 부분도 있다. "내가 지금 여기서 이야기한다고 해서 다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여, 죽을 때까지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무덤까지 가져갈 이야기도 있제." 라고 이야기하셨을 때 나는 그게 어떤 내용일 거란 걸 직관적으로 알았다. 아니 광주시민 모두는 입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최근 5·18 당시 계엄군과 수사관들에 의해 가해진 성폭력을 겪은 여성 당사자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미투 운동에 의해 용기를 냈다는 김선옥 씨는 38년 만에, 나이가 60이 되어서야, 딸의 이해를 받고 말을 꺼낼 수 있었다고 했다. 또 고등학교 때 계엄군들에게 트럭에 실려 끌려가 성폭행을 당한 후 정신을 놓치게 되었고 승려가 되었다는 증언도 있었다. 더욱 놀라운 건 이 여고생의 이야기는 89년 청문회 당시 오빠에 의해 알려졌으나 대의(?)를 위해 묻어 두기로 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5월 단체에서도 의견이 분분해서 '설마 그랬겠어.' 부터 '그 이야기를 하면 오히려 역공을 당해 진상규명에 누가 될까봐' 덮기로 했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묻힌다. 역사 속에서 주요한 경험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오월 항쟁 역시 명망가들과 총을 들었던 시민군들 중심으로 쓰여졌고 여성들의 이야기는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다. 총만 들지 않았을 뿐 오월의 모든 현장에는 여성들이 있었다. 그들은 홍보물을 만들고 가두방송을 하고 시신을 수습하고 헌혈을 하고 도청에서 취사조로 시민군들의 밥을 하고 항쟁의 지도부로 참여하였고 항쟁이후에도 지속적으로 5·18을 알려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오월당사자 여성들이 '오월민주여성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집담회를 통해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그들의 역사를 다시 기록하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6년째 이들의 활동을 주목하고 기록해 온 영화가 있다.

김경자 감독의 영화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오월을 겪은 여성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현재의 활동까지를 덤덤하게 담고 있다. 감독은 "오랜 시간 찍었지만 오월 여성들의 이야기를 잘 담았는지 걱정이다."며 "너무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인다."고 겸손하게 이야기하지만 그가 오랜 동안 선생님들과 동거동락하며 함께 했던 시간들은 고스란히 작품에 스며있다. 영화는 편집을 최소화하고 자막도 일절 배제하여 그들의 목소리와 말에 주목하게 함으로써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주목한 부분은 오월 항쟁이 일어나기 전 의식을 깨워가던 여성노동자들의 성장과 민주화 운동 내부에 존재하던 여성들에 대한 인터뷰들이다. 5·18은 분명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었지만 항쟁의 중심에는 이런 여성들의 활동이 있었고 5·18을 전국화, 세계화 하는데도 여성들의 몫이 컸다. 오월 여성의 활동을 주먹밥과 가두방송으로만 국한시키는 데 늘 아쉬움이 있었던 나로써는 다양한 여성들의 오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또한 아쉬움이 남았다. 한 3부작 정도로 만들어서 항쟁 전, 항쟁 당시, 항쟁 후의 여성들의 활동을 정리해주는 다큐멘터리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롭게 제기된 증언들도 담아야 하고 아직 할 일이 많고 갈 길이 멀다. 더 이상 그들이 외롭고 쓸쓸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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