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에세이- 5월의 사랑, 그리고 폭력

@무등일보 무등일보 입력 2018.05.17. 00:00

박성용 KBS광주방송총국 PD

TV뉴스프로그램을 본다. 세련되게 얼굴의 터럭들을 다듬고, 셔츠와 색깔을 잘 맞춘 트렌디한 옷차림의 평론가가 스튜디오에 출연해 최근의 남북 화해와 해빙무드, 그리고 5월 국회공전에 대해 한마디 보태고 있다.

나는 그를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가수 김광석의 죽음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영화 '김광석'이 세인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을 무렵, 그는 어느 교양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영화의 타살 의혹을 소개하더니 '내가 영화를 제작한 그 기자를 잘 아는데요, 故 김광석의 죽음에 누구보다 아파했던 기자 아닙니까?' 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귀를 의심했다. 무슨 말이지? 김광석에 애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부검의와 참관했던 의료인들, 수사했던 경찰들과 수사기록을 읽어봤던 판사는 모두 틀렸단 말인가? 그래서 그들의 인터뷰와 기록은 무시되어도 좋은 것인가? 더욱 놀랐던 것은 사실상 서해순씨가 딸도 살해했다는 의혹이었다. '딸에 무관심한 엄마'라는 몇몇 정황 등을 제시했다. 전문가라는 딱지를 단 사람도 힘을 보탰다. 어느 팟캐스트엔 프로파일러가 영화를 제작한 기자와 출연하여 '살해의 개연성' 운운하며 그녀를 딸을 죽인 악녀로 몰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과는 별개로, 법원은 서해순씨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고, 영화 일부 내용이 서씨의 명예를 중대하게 침해했다고 판시했다. 법적인 증거 유무 뿐 만 아니라 그들의 주장, 즉 딸을 방치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알고 보니 평소 어떤 엄마들보다 딸을 성실히 보살펴왔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증언했다고 한다.

인간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번지르르한 옷차림 보다는 그 사람의 내면을 보고 판단하라'는 따위의 경구가 실제 지시하는 것은 '좋은 옷을 입어라, 그러면 고생하지 않고 네 편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멋진 차림의 평론가의 말은, 프로파일러 라는 폼 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말은 그래서 더 믿을 만 했을 것이다.

사건 당일 친구들과 웃고 대화했던 사람이 절대 자살할 이유가 없으며, 아름다운 노래를 만든 사람의 아내가 그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은 더욱 나쁜 것이다. 나쁜 여자가 TV에 나와 '뻔뻔스럽게도 웃거나' 감히 온 국민이 사랑하는 앵커에게 '내 뒷조사 했어요?'라고 감히 물었기 때문에 그녀는 의심받아 마땅했던 것이다. 내가 너무 삐딱하게 본 것일까? 아니다. 친구 P는 '광석이형이 타살당하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나쁜 여자 때문에 힘들었다는 걸 알게 해준 것만으로도 그 기자는 할 일을 다 한 것'이라고 하더라.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한 사람에 대한 뒤틀린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무한루프를 어찌할 것인가. 경찰조사와 판결 이후 '딸 살해의혹'을 설파했던 이들이 어떤 사과를 했는지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엄마로서 서해순씨가 겪었을 그 고통에 대한 죄의식 보다는 좋아했던 가수에 대한 그리움이 모든 것을 압도했을까?

이 두서없는 글은 결국 변죽만 울리다가 끝을 맺는다.

장황하게 에두르며 늘어놓았던 서해순씨 이야기 뒤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5월의 광주에, 수십 년 내 편 네 편 했던, 우리 편 끼리만의 사랑에 대한, 과감한 자화상이었다. 허나 내 깜냥 주제에 결국 말하지 못한다. 광주에 대한 내 사랑은 엊그제 풍암저수지 인근 중앙공원의 본 아카시 꽃 무더기 같은 환영이었을 것이다. 오늘 보니 향기조차 남아 있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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