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트위터 youtube
탑뉴스 정치 지방자치 경제 지방경제 사회 국제 문화 전남뉴스 구청뉴스 오피니언 사람과생활
탑뉴스
정치
지방자치
경제
지방경제
사회
국제
문화
전남뉴스
구청뉴스
오피니언
사람과생활
김목의 호남 여성보(女性譜) <34>국악의 별, 박초월- 송만갑 명창에 피눈물 나는 소리 수업 '청출어람'
박초월은 조선성악연구회에
가입했다. 국악발전의 길에 스승인
송만갑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자만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박초월은 지극정성으로 송만갑을
모시면서 임방울, 정광수에게도
입력시간 : 2018. 05.15. 00:00


남원 운봉 박초월 생가
박초월(1913~1983)의 본명은 삼순(三順)이다.

1913년 9월 17일, 박초월은 남사당패의 일원이었던 아버지 박덕삼의 3남 10녀 중 셋째 딸로 전라북도 남원 운봉에서 태어났다.

출생지가 순천이라는 말도 있으나, 잠시 남원 아영면에 머물기는 했지만 집안 대대로 운봉에서 살았다고 한다. 순천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은 박초월의 모친이 부친과 사이가 좋지 않을 때 잠시 순천에 거주한 때문이라고 한다.

남원 운봉의 비전 마을은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를 찾아 섬멸한 대승지로 황산대첩비가 있는 마을이다. 뿐만 아니라, 판소리의 텃밭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판소리를 집대성한 가왕 송홍록이 살았던 마을이기에, 소리를 배우려는 수많은 소리꾼들이 또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소리의 고을에서 태어난 박초월은 어려서부터 소녀명창으로 고을에 소문이 자자했다.

박초월 처녀 시절


1925년 열두 살이 된 박초월은 김정문 명창에게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김정문은 송만갑(1865~1939)의 수제자였다.

송만갑은 조선 고종 때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활약한 판소리 다섯 명창 중의 한 사람이다. 순조 때 가왕 칭호를 받던 송흥록의 종손으로, 전라남도 구례읍 봉북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역시 철종 때 명창인 송우룡이니 판소리 명문가의 적통 소리꾼이다.

천부적인 재능과 기량을 지닌 박초월이다. 또 김정문은 소리꾼 중의 소리꾼이다. 두 사람의 만남으로, 우물 속의 개구리가 단비 쏟아지는 우물 밖으로 나오게 된 셈이다.

남원 운봉 박초월 묘


소리에 완전히 매료된 박초월은 이어서 유성준 명창에게 수궁가를 배웠다.

하지만 박초월의 아버지는 딸이 소리공부에 미쳤다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집안에 기녀가 나올지도 모른다며 지게작대기로 딸을 닦달하다가 1927년 열네 살 때에 부잣집으로 시집을 보내버렸다.

"아버지! 난 죽어도 소리를 배울거구만요."

박초월은 첫날밤도 치르지 않고 남원 권번으로 도망을 쳤다.

1929년이다. 박초월은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서울로 왔다. 조선성악연구회를 결성해 제자를 기르는 송만갑 명창에게서 피눈물 나는 소리 수업을 받았다.

이듬해인 1930년이다. 박초월은 전주에서 열린 전국남녀명창대회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당당히 일등을 차지하였다. 우물 밖으로 나온 개구리가 마침내 하늘로 날아갈 날개를 단 셈이니 용이 된 것이다.

남원 운봉 박초월 묘


당시 대표적인 레코드사들이 혜성처럼 나타난 소녀 명창을 반겨 맞이했다. 박초월은 '오케이, 폴리돌, 빅타' 등 레코드사들과 전속 계약을 맺고 음반도 취입했다.

이때에 박초월은 조선성악연구회에 가입했다. 국악발전의 길에 스승인 송만갑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자만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박초월은 지극정성으로 송만갑을 모시면서 임방울, 정광수에게도 소리를 배워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 등을 더 배우고 익히고 다듬었다. 이 무렵 조선물산공진회에서 입상을 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창극활동에도 뛰어들어 대동가극단, 동일창극단 등에서 활동했다. 동일창극단에서는 임방울, 박귀희, 김소희 명창과 함께 공연하며 '일목장군'의 여주인공인 '아리주' 공주 역으로 크게 인기를 얻었다.

또 창극 춘향전에서 박귀희가 이도령 역, 김소희가 춘향 역, 박초월이 월매역을 맡아서 장안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박초월은 박귀희, 김소희와 함께 여성국악동호회를 조직하여 '햇님달님'이란 작품으로 창극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하지만 창극활동이 한때 시들해지면서 단체가 해산되자 박초월은 지방을 돌며 제자를 양성하였다.

그러던 중 박귀희, 김소희의 연락을 받고 1955년에 상경, 한국민속예술학원(서울국악예술고)설립하고 1962년 한국국악협회 초대 이사장직을 맡아 학교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5호 춘향가 예능보유자', 1973년 '국가무형문화재 수궁가 예능보유자'로 지정 받았다.

1964년이다. 국악인이었으나 하한담이나 조선달 등처럼 후사가 없는 선대명창의 위령제를 열어주는 일이 시작됐다. 뜻있는 일이었으나, 차츰 참여하는 국악인들이 줄어들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박초월은1966년부터 작고 국악인 156위의 신주를 집에다 모셔놓고 매년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1966년 국립창극단 입단, 1971년 국악협회 상임고문, 1974년 판소리보존회 이사장, 1976년 서베를린 세계민속음악제에 참가하였으며, 1979년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남원 운봉 악성사


박초월은 본인뿐만 아니라 명인명창이 많이 배출된 가계로 유명하다. 조통달 명창은 박초월의 조카이다. 민속악의 거장이고 대금의 명인인 서용석은 언니인 박점례의 아들이다. 또 남원 국립민속국악원의 지도위원인 박천택(동현)은 초월의 남동생 박수룡의 아들이다. 이렇듯 초월의 집안은 국악의 본향인 남원의 국악발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박초월의 소리를 흔히들 대통 속에서 나오는 성음으로 일컫는다. 판소리의 특징인 수리성을 온전히 지닌, 뱃심에서 밀어 나오는 깊은 소리를 말함이다.

그런 연유로 박초월은 진양조와 설움조를 장기로 하였는데, 특히 춘향가 중 춘향모가 비는 대목이나 이별가가 특기였다고 한다.

또한 낮은 소리를 낼 때도 특이한 장기로 여겨질 만큼 음역이 매우 넓어 박초월의 '추월강산'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서슬과 구성이 있는 소리로 서민적 정서를 표현함으로써 판소리의 새 경지를 개척했던 것이다.

박초월의 제자로는 남해성, 최난수, 최승희, 김수연, 조통달, 박양덕, 전정민, 왕기창 등이 있다.

그렇게 초월은 노래 솜씨뿐 아니라 창극과 여성 국극 등 연기력도 뛰어나 청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다가 1983년 11월 26일 많은 국악인들과 애호가들의 오열 속에 운명했다. 동화작가


최민석        최민석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기사 목록     프린트 화면     메일로 보내기     뉴스 스크랩    


이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독 자 의 견 제 목이 름작성일


사설 오피니언
무등칼럼 무등데스크
홈페이지 | 회사소개 | 편집규약 및 윤리강령 | 편집 자문위원회 | 독자위원회 규정 | 무등일보 사우회 | 행사안내 | 기자 이메일 | 청소년 보호정책
Copyright ⓒ 1996-2019. 무등일보(MoodeungIlbo) All right reserved. 개인정보취급방침
등록번호:광주아00187등록년월일:2015년 1월8일회장 : 조덕선발행 · 편집인:장인균 61234 광주 북구 제봉로 324 (중흥동, SRB빌딩) (주)SRB무등일보
기사제보,문의메일 : mdilbo@srb.co.kr긴급 대표전화 : 062-606-7760, 017-602-2126, 대표전화:606-7700 팩스번호 : 062)383-8765 광고문의 : 062)606-7772
본 사이트의 게재된 모든 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보유하며, 발행인의 사전허가 없이는 기사와 사진의 무단 전재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