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일그러진 경선'… 지방선거를 다시 생각한다

@무등일보 무등일보 입력 2018.04.12. 00:00

구길용 뉴시스 광주전남취재본부장

참 묘한 선거다. 후보자들은 넘쳐나는데 유권자들은 없다. 아니 유권자들은 분명히 있는데 그들의 선택지가 사라졌다. 오죽했으면 무권자(無權者)라는 말이 나돌까. 이른바 '깜깜이 선거'의 전형이다. 후보자들이 정해진 지 고작 10여일만의 경선, 그들만의 리그에서 정해진 인물을 호남유권자들은 그냥 선택만 해야 할 판이다. 경선이 곧 본선일 수 있는 정치구도가 이를 부추긴다. 과거 횡행했던 호남 내 일당독주 체제의 폐해가 지금의 더불어민주당 모습에서 데자뷰로 살아난다.

민주당 광주시장 경선은 시작부터 시끄러웠다. 당원명부 유출의혹을 둘러싸고 이용섭 대 반이용섭 전선이 형성되면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성명-기자회견-반박-재반박. 검·경의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 안에 정책이나 비전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3자 후보단일화와 현역시장 불출마 등의 우여곡절을 거쳐 강기정, 양향자, 이용섭 경선후보 3인이 결정된 게 지난 6일. 본경선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12일이다.

전남지사 경선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도지사 선거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평가받아온 이개호 의원의 출마 여부를 놓고 지루한 샅바싸움이 벌어졌다. 여론조사 1위 후보를 중앙당이 흔들어댔다. 결국 '원내 제1당 유지'를 앞세워 현역불출마론을 관철시킨 중앙당의 위세로 경선판은 요동쳤다. 그때까지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후보들이 링에 올랐고 한동안 입당허용 여부, 경선출마 자격 논란 등으로 소란스러웠다. 그렇게 해서 김영록, 신정훈, 장만채 경선후보가 지난 3일 결정됐는데, 경선일이 덜컥 13일로 잡혔다. 결정 기간이 고작 10일에 불과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경선을 마무리짓겠다는 촉박한 일정을 짜다보니, 곳곳에서 '깜깜이 선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불과 10여일 안에 후보자들의 정책이나 비전, 능력을 제대로 검증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경선 방식도 권리당원 ARS투표(50%)+안심번호선거인단 ARS투표(50%)여서 따로 정견발표의 장도 마련되지 않는다. 선관위 주관의 TV토론회를 단 한차례 개최하는 게 고작이다. 방송시간대도 밤 11시다. 선거기간이 짧다보니 정책검증은 온데간데없고 네거티브만 난무한다. 후보자들 입장에서 보면 짧은 기간에 보다 효과적이라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선택권은 기대할 수가 없다.

문제는, 지금의 정치지형을 고려할 때 '민주당 경선이 곧 본선'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깜깜이 선거로 경선이 치러져서 최종후보가 결정되면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지극히 제한될 것이라는 점이다. 선거막판까지 변수야 있겠지만 야당인 민주평화당이나 바른미래당이 후보난을 겪으면서 이미 운동장은 기울어졌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이 구도에서 민주당의 일그러진 경선이 가져올 폐혜는 실로 크다. 유권자들의 판단이나 검증은 배제된 채 광주시장, 전남도지사가 사실상 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경선이 이런 상황에 이른데는 민주당 중앙당의 원칙 없는 잣대가 단단히 한몫 했다. 경선 초반부터 입당기준이나 경선출마 자격에 대해 들쭉날쭉 대처하더니, 막판까지 무원칙으로 일관하고 있다.

가·감산 기준도 다소 모호하고 경선후보 대표 경력에 문재인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을 넣게 한 것도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후보자들의 능력이나 자질에 대한 검증보다는 대통령의 이름만 보고 선택하는 식의 부작용이 우려된다. 당내에서 논란이 적지 않았다는데 지도부는 밀어붙였다. 친노·친문 386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조기경선으로 치르겠다던 광주시장 경선 일정은 슬그머니 맨나중으로 미뤄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호남의 높은 지지를 믿기 때문인지, 지방정부의 수장을 뽑는 선거가 지역 유권자들의 판단이 아닌, 중앙당에 의해 재단되는 고약한 구조다. '경선은 곧 본선', '공천은 곧 당선'이라는 분위기가 만든 민주당의 오만이다.

중앙당이 공천룰이라는 칼자루를 쥐고 흔들어대니 이게 중앙선거지, 지방선거냐는 푸념도 쏟아진다. 지방의 유권자들은 안중에도 없다. 객관과 합리로 포장된 공천기준들의 속내를 보면 특정후보를 겨냥한 흔적이 적지 않다. 중앙당이나 지도부의 입맛에 맞는 후보를 골라내기 위한 일종의 꼼수다. 거기에 밉보이지 않기 위해 선거기간의 상당 부분을 중앙당에 할애한 후보들도 있었다니 개탄스럽다. 사실상 일당독식의 오만함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구태가 지금 민주당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꽃, 지방자치의 근간인 지방선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지자체장은 주민 생활과 직결되는 각종 정책들을 결정하고 막강한 인허가권까지 행사하면서 지방의 '소통령'이라 불린다. 말 그대로 지방권력이며, 그들을 뽑는 게 지방선거다. 그 출발은 당연히 정당의 경선이다.

호남은 역사적인 순간마다 위대한 선택을 해왔다. 대선이나 총선은 물론, 역대 지방선거에서도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런 호남에서 오만한 경선이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 정치현실이 안타깝다. 중앙당이 유권자(有權者)가 되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할 호남의 주민들이 무권자(無權者)로 전락해서야 되겠는가.

이런 경선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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