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행의 세상읽기

인문지행의 세상읽기- 왜 서로 대화하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입력 2018.03.30. 00:00
화자와 청자의 원활한 소통이 가장 중요
박해용은
일방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려는 말하기는 서로에게 불쾌한 강요다.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

그 바탕 위에서 대화 하는 방식은

그 사람의 품격에 관한 문제

자신의 말하기 방식 스스로 만들어내야

사람의 모든 방식은 대화와 연결

교수는 학생과 소통하는 대화해야

#강의 내용에 관한 논란에 이어서 한 교수의 사직

최근 강의실에서 했던 강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서 교수직을 그만 둔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이 피해자라고 한다. 학생들에게 사과할 뜻이 없다며 사직서를 제출한다.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 생긴 논란은 요즘 뜨겁게 이야기 되고 있는 '미투'와 관련이 있다. 학생들 측 주장에 따르면 강의내용이 미투운동을 비하하고 폄훼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교수는 자신의 입장을 강의한 것이며 사과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사과할 수 없으며, 더 이상 학교에 있지 못하도록 학생들이 강요하기 때문에 사직한다고 말한다.

필자가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은 강의 시간 중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갔을까? 하는 점을 나아가서 이렇게 파국으로 끝난 이유가 뭘까? 이다. 혹시 강의 중 문답은 부재였고, 교수의 일방적 자기주장과 설득하려는 설명만 있지 않았을까? 이러한 의문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 내면에 이념의 문제나 어떤 극단적 망언이 숨어 있다면 이해가 될 수 있겠지만, 그런데 한편으로 달리 생각해서 미투의 큰 흐름이 없다면 약간의 소란으로 넘어갈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뿐만 아니라, 만약 강의 중 교수의 설명과 학생의 의문이 대화형식으로 진행되었다면, 그래서 각자의 입장을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면 오히려 더 잘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어떤 점에서 서로 의견이 다르고, 왜 그런지 이유와 근거도 따져보고 하면서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까지 알게 되면서 양쪽의 생각이 더 깊어졌으리라. 그러면 보다 유익한 강의가 되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교수와 학생이 서로 대화하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말하고 경청한다면, 교육이 도달하고자 하는 자유의 실현에 가까이 갈 수 있었을 것인데…안타까운 일이다.

#상황이 대화를 아무리 어렵게 하더라도

살다보면 대화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자주 경험한다. 대화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들이 도처에 있다. 더구나 서로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거나 전혀 다른 관점이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주장만 이야기 하는 대화는 더욱 그렇다. 옆에서 듣기 어려울 정도의 동물적 충동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말하기는 사람이 스스로의 '저품격'을 드러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대화하기가 어려운 상황과 조건이라도 그 바탕 위에서 어떤 대화를 하는 방식은 그 사람의 품격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자신의 말하기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 방향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의 모습일 것이다.

대화를 어렵게 하는 것은 위와 같은 조건과 상황이 큰 영향을 미치지만 또 감정도 나름 영향을 갖는다. 평소에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감정 상태에 따라서 마음이 흔들리면서 전혀 다른 말하기 방식이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감정에 따라서 묻어나오는 것들은 자신도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상대를 은근히 비꼬는 말이라든가, 힘이 약한 사람을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표현들을 억제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고 사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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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에서 나타나는 말하기의 한 방식

다른 한편으로 대화를 어렵게 하는 것은 오만함과 편견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오만은 자기의 입장에서 자신의 우월함을 결정하는 일에서 생겨나고, 편견은 타인을 스스로의 생각 속에서 규정하는 데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이러한 오만과 편견에 빠지게 되면 상대와 서로 만족한 대화를 나누기가 어려워진다. 영국인이 내세우는 작가 셰익스피어 다음의 작가가 제인 오스틴이다. 19세기 제인 오스틴이 쓴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다아시와 엘리자베스가 오만과 편견으로 서로를 오해하면서 나누는 대화장면이 있다. 잠깐 옆길로 새면, '오만과 편견'의 첫 구절은 너무나 당연한(?) 언명으로부터 시작한다. "큰 재산을 가진 미혼 남자라면 마땅히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부유하며 지성을 갖춘 다아시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비하하는 말을 엿들은 엘리자베스는 그가 오만하다는 편견을 갖는다. 이미 편견을 가진 엘리자베스에게 다아시의 모든 행동과 태도는 오만이라는 굵은 줄기에 연결되어야 이해된다. 그래서 그녀의 편견은 다아시와 하는 모든 대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결혼적령기에 들어선 두 남녀가 서로의 의중을 알아보는 대화를 하는 도중 엘리자베스는, "그럼 다아시 씨의 단점은 모든 사람을 싫어하는 성향이겠군요." 라고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며 힐난하자, 이 말을 들은 다아시는, 그는 자신의 감정이 엘리자베스에게 자꾸 호감이 가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 엘리자베스 양의 단점은 모든 사람을 자의적으로 오해하는 경향이겠군요." 라며 쏴붙인다. 이렇게 어렵게 된 대화는 서로에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다른 내용의 말을 하게 함으로써 더욱 꼬인다. 그래서 남자의 오만은 더욱 오만하게 보이고 여자의 편견은 더욱 깊어간다. 오만과 편견에 찬 대화의 갈등은 미래의 험로를 예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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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강의방식은 더 대화적이어야 한다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일들은 많이 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말하는 즐거움, 즉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대화의 즐거움을 아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괴테의 여행기록을 보면, 춤추는 것보다 대화가 더 재미있다는 구절이 나온다. 춤을 추다가 재미 있는 대화에 빠진 사람들은 그 대화를 계속하기 위하여 춤을 그만둔다. 그리고 밤이 새도록 대화한다. 설혹 이러한 즐거운 대화를 위한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다 해도 한번 쯤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시간을 돌리고 공간을 재배치해 사고실험을 해보자.

위 교수가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시간이며 공간이라고. 그렇다면 무엇이 가장 소중할까? 강의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의 원활한 소통이 가장 중요하리라. 소통은 생각의 주고받음에서 오기 때문에 강의하는 사람도, 듣는 학생도 자신의 생각을 최대한 잘 표현하는 말을 찾아야 할 것이며, 듣는 학생들도 최선으로 이해를 위한 말하기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는 내용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며, 이해되지 않을 경우, 학생들은 이해를 위한 질문들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즉 소통하거나 대화하지 않는 대학 강의방식은 이제 그만 바꿔야 한다. 사람은 대화를 통해서만 소통할 수 있는 동물이다. 사람의 모든 행위는 대화와 연결되어야 한다.

대학의 강의는 더욱 그러하다. 교수도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펼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소통하는 대화를 해야 한다. 대학 강의 방식은 더 대화적이어야 한다. 그러다가 어디에서 서로 만날 수 없는 차이가 있는 것을, 아하 여기서 '너'와 '나'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서로를 알게 되면, 이젠 각자 서로를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대학의 강의방식은 대화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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