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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세계음악여행-안젤로의 여행친구 모모와 지중해 거북 카시오페아
이탈리아에선 모든 줄기가 음악으로 통한다
입력시간 : 2018. 03.30. 00:00


이탈리아 밀라노의 경찰들.
 패션과 음악의 나라 이탈리아.

 당신은 칸타빌레(Cantabile)로 속삭이며 노래하듯 걷다가 콘브리오(Con Brio) 기운차게 걷기도 하네. 어느 날은 콘푸오코(Con Fuoco) 빠르게 걷다가 콘모토(Con Moto) 훌쩍 달려가기도 하시지.

 그런데 이탈리아에 가면 빠르기 걸음걸이가 달라진다. 푸리오조(Furioso)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이탈리안들.

 골목길에선 그라치오소(Grazioso) 우아한 걸음걸이. 고대유적 앞에서는 피아니시모(Pianissimo) 여리고 섬세하게 바라본다. 말을 할 때는 비바체(Vivace) 경쾌하고 명랑하게….

 이탈리아에선 모든 줄기가 음악으로 통한다. 바이올린 연주자 아이작 스턴이 이런 말을 했지. "음악가란 직업이 아니다. 삶의 방식이다. 그렇다면 그 모범은 이탈리아에 있다."

밀라노 변두리에서 태어난 안젤로 브란두아르디. 어린 시절 제노아로 이사를 한 뒤 제노아 음악원 니콜로 파가니니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시인이자 작사가 루시아 자파를 만나 두 딸을 낳았다. 사라와 마델리나는 모두 대중음악가로 장성해서 현재 활동중에 있다.

피자집의 파라솔 아래 바이올린을 붙잡고 잠깐 졸았던 날. 누군가 안젤로를 툭툭 건드렸다. 이름 없는 떠돌뱅이 길거리 연주자였다. 안젤로는 부신 햇볕을 등지고 그 집시의 곁에서 망설임 없이 바이올린을 켰다. 그날의 황홀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
안젤로 브란듀아디의 영화음악 '모모' 앨범 자켓


엄격한 악보를 떠나 한껏 즐기는 그 자유스러움이라니. 마침내 정오의 알람이 울린 것이다.

안젤로는 대중음악가가 되어야겠다고 작정했다. 풀피리처럼 우는 지중해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면서 비바체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거침없이 노래를 불렀다. 바이올린을 닮은 그의 목소리는 마치 이중창처럼 여겨지곤 했다. 청하여 앉은 청중들에게 자작시를 들려주었다.

노래는 한편의 근사한 시였고 아리아만 같았다.

한번은 아일랜드 이니스프리 호수 섬을 찾아갔는데, 시인 예이츠의 시심을 달구었던 그 섬에서, 안젤로는 이탈리아에 정박해있던 자신의 배를 전 세계로 띄울 각오를 하게 되었다.

예이츠 시를 이탈리아어로 입혀 달콤한 멜로디를 달았다. 음반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환희의 아리아처럼 공황에 시달리던 세계인에게 촉촉한 단비같은 음반이었다.

내친 걸음에 1986년 영화 모모(Momo)의 음악을 맡게 되었다. 모모는 독일의 동화작가 미하엘 엔데의 작품이다. <모모, 시간도둑과 사람들에게 빼앗긴 시간을 돌려준 한 아이의 이상한 이야기>라는 긴 제목의 이 동화는 제2의 <어린왕자>나 <예언자> 반열로 뛰어올랐다.

새하얀 궁전 호라 앞에서 거북이와 모모가 서있는 장면. 기억의 지느러미가 자랐을 아이는 볶은 머리를 펄럭이며 움직였다. 가끔은 늙어가는 사람들의 귓밥을 파주면서 노래를 들려주고는 하였다. 사운드 트랙 또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분수의 도시 로마에 머물면서 안젤로는 영화의 사운드 트랙을 구상했다. 볼로냐 작곡가 레스피기는 '로마의 분수'란 작품을 썼는데, 트레비 분수 장면이 여기 나온다. 교향시 3악장은 '한낮의 트레비 분수'다. 이 분수는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햅번 주연의 영화 <로마의 휴일>에도 등장한다. 목마른 로마 병사에서 동네 아가씨가 샘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는 전설. 트레비란 세 개의 길이라는 뜻으로, 이곳 저곳 그리고 그곳으로 물길은 뻗어간다. 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며,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날마다 이 분수대 앞을 지나면서 안젤로는 기타 만돌린 플루트에 얹힐 가사를 작사했다. 아이들의 합창을 넣고 모모의 미성도 자리를 골랐다. "아름다운 아이야! 이쪽으로 오려무나. 저 오래된 궁전엔 옛 이야기가 담겨져 있지. 우리 앞에 보이는 하얀 궁전엔 다섯가지 선물보따리가 기다리고 있다네. 까마귀 세마리가 졸고 있는 부드럽게 내리는 햇살. 한 소년은 왕자라네. 왕자가 잠이 들어 누웠다네." 음반의 대미는 '모모와 카시오페아' 주제곡이다.

이탈리아 로마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새까만 고수머리를 한 여자아이 모모, 청소부 할아버지 베포, 이야기꾼 청년 기기, 시간을 나눠주는 호라 박사, 길동무 지중해 거북 카시오페이아, 시간을 사용할 줄 아는 아이들이 모두 주인공이다. 행복한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아가는 시간 도둑 회색신사들에 맞서 싸우는 모모. 바쁘고 삭막하게 만들어 시간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회색 신사들은 우리 주변에도 꽉 차있다.

"시간이란 곧 인생이란다. 인생은 우리 마음속에 시계추로 맴도는 것이란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만이 인생을 잘 살아가는 사람이란다." 작가는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일러준다.

칸초네(canzone)란 뜻은 우리말로 '노래'다. 이탈리아 대중음악도 분류를 고집하기 보다는 대부분 칸초네라 칭한다. 16세기 성악 칸초네와는 다른 칸초네 빌라네스케(변방의 시골사람 노래)가 생겨나면서 칸초네는 서민대중에게 널리 뿌리내렸다. 안젤로는 칸초네 포크팝이라고나 할까. 고유의 민요풍 리듬과 멜로디에 바이올린이나 기타를 앞세우고 전통적인 현악을 덧입힌다. 이탈리아의 선풍적인 아트록이 그랬던 것처럼 포크에다 고전음악의 예술성을 더하여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지금도 그는 모모처럼 사방팔방으로 뻗친 머리카락을 흔들고 다닌다. 칠순이 목전인 늙은이 안젤로. 시간여행자 안젤로. 음반엔 없지만, 양희은이 불렀던 노래 '아름다운 것들'의 원곡인 스코틀랜드 민요를 마치 이탈리아 민요인 것처럼 부른 노래 '니나 나나(Ninna Nanna)'도 찾아서 들어보길. 마음이 고운 사람은 아름다운 세월을 살아가고 달콤한 꿈을 꾸는 잠자리에 들 수 있다. 아름다운 세월이 들려주는 노래엔 모모와 카시오페아처럼 성큼 앞으로 다가서야 한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임으로.



임의진은

시집 '버드나무와 별과 구름의 마을'을 비롯한 다수의 책을 발간한 작가이자 EBS 세계테마기행 등을 통해 제 3세계 음악을 소개하는 등 국내 월드뮤직 전문가다. 스테디셀러 '여행자의 노래' 등 20여장의 선곡음반을 펴냈다. 복합문화공간 메이홀&이매진 관장으로 지역문화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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