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미투, 불안과 기대 경계를 넘어서라

@조덕진 입력 2018.03.01. 00:00

조덕진 문화체육부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요즘 전개되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위드유(#With you)' 물결에 깜짝 깜짝 놀란다. 폭로되는 사안들이 심각해서도 가해자로 특정된 인물들이 사회적 유명인이어서도 아니다. 저항이랍시고 내미는 해묵은 오리발, 사과,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이 사회가 힘없는 이들의 대나무 숲이라도 된 것인가. 상처입은 이들의 끝없는 절규가 숲을 이룬다. 그녀들이 갇혀 지내야 했던 그 길고 긴 암흑의 터널에 '미투'라는 빛이 들면서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던, 나 몰라라 하던 그 깊고 깊은 감옥에 볕이 들면서다.

이제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해도 되는 것인가. 고통이 목까지 차올라도, 숨을 들이마시기조차 힘에 겨워도 하소연할 곳 하나 없던 곳이다. 아픈 피해자를 죄인 만들던 그 사회 맞나.

피해자? 아니, 생존자!!

뒤늦을망정 이어지는 사과, 검찰과 경찰이 고소 고발 없이 가해자 수사에 나서는 이 놀라운 변화가 남의 나라 소식을 전해듣는 듯하다.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아득한 현실에 끝없이 이어지는 절규들, 아프지만 반갑다. 가슴 속 저 깊은 곳에 눌리고 눌려 검붉어진 상처들. 멍울진 상처는 드러내 햇빛도 쏘이고 바람도 들어야 낫는다. 아프고 일그러진 나, 아프고 일그러졌다고 말할 수 있으니 비로소 내가 나일 수 있는 법.

다른 한편, 조마조마하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 하다. 귀 기울여 듣는 듯한 저 모습 표변하지나 않을까, 울먹이는 내 가슴에 갑자기 비수를 꽃지는 않을까, 끔찍한 상황이 반복되는 건 아닌가 불안불안했다.

창원지검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의 용기있는 고백 이후 사회 각계에 해일처럼 밀어닥친 미투와 위드 유 움직임을 지켜본 지난 한 달의 복잡함이다.

불과 2년 전이다.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는 듯 했다. 여성들의 호소가 이어졌다. 허나 관심은 이내 사그라 들었다. 치유는커녕 고통을 호소한 여성들과 그들을 지원했던 이들은 법에 시달렸다. 가해자들이 '결백'을 주장하며 법으로 대응했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라는 신기한 법을 빌어. 이 법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공개하면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하고 있다. 죽을 지경으로 고통스러워도 고통의 원인을, 가해자를 발설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게 인간을 대하는 우리 법의 맨 얼굴이다.

게다가 힘없는 피해자들은 관음증적 시선에 문제적 인간으로 매도당하면서 심장까지 발가벗겨졌다. 정신적 살해, 확인사살에 다름 아니다. 끔찍한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한 게 바로 우리다.

그 불안과 죄스러움 속에 저 멀리 역사 속 희생자들을 떠올려 본다. 도대체 이 사회는 그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궁금하다. 포털에 '환향녀(還鄕女)'를 검색해본다. 친절한 안내, 차마 옮기지 못하겠다. 어린이를 대상으로한 설명이라는데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들이 오늘 이 지경을 본다면 피를 토하고 말일이다.

굳이 말하자면 환향녀는 조선시대 전란으로 외국에 끌려갔다 살아 돌아온 여성들을 지칭했던 용어다. 살아 돌아온 여성이란 의미에는 '죽지않고 왜 살아왔느냐'는 추궁이 담겨있다. 피해자이면서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소위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는 여성을 비하하는 용어(화냥년)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다. 그뿐인가, 살날이 얼마 남았을지 조차 알 수 없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가해자에게 단돈 10억엔에 팔아먹지 않았던가.

어깃장을 놓자면 이런 사회가 일본에게 위안부를 부정한다고 어떤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랬다, 우리는 지금껏 조직의 위계와 권력관계를 악용해 약자를 겁박하고 성적 폭력을 가하는 현실을 외면했다.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이혼(당)하는 것이 아직도 자연스럽고 '꼬리 치는 여자'거나 '꽃뱀'으로 덧씌웠다.

도도한 강물로 흐르길

다행히 이번 물결은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이 되는 듯 하다.

오리발로 얼굴 가리려던 이들도 거센 물결에 무릎 꿇고 있다. 정부도 나서 앞으로 공직에서 성범죄자의 고위직 진출을 차단하겠다고 약속한다. 허나 피해자가 죄인인 특이한 사회를 살아온 당사자로서, 사태에 가까운 이 변화를 현실로 받아들여도 되는지 익숙치 않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 소중한 물결, 제발 세파의 부끄러운 풍랑에 먹히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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