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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채 박사의 신 육상실크로드 <15>실크로드의 거점 '호라즘'
무분별한 개발로 사라지는 아랄해 '자연 재앙'
몽골은 '카라키타이'점령 후
외교사절을 호라즘으로 보내
통상을 요구했지만 술탄 왕은
그들을 몰살하고 상품을 몰수한다
간신히 도망쳐 온 낙타몰이꾼이
칭기즈칸에게 사건의 전말을 고했다
입력시간 : 2017. 11.23. 00:00


호라즘 지역의 도시 모습. 큰 도시가 10여개 이상 발달되어 있고 넓은 경작지가 펼쳐져 있다.
◆호라즘 가는 길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에서 '히바'로 가는 길은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이다. 여름이어서 그런지 살인적인 더위다. 사람이 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난 번 지역지리학회 답사팀이 갈 때도 그토록 더웠는데, 이번에 비교민속학회 답사 때도 살인적인 더위를 겪는다. 현지인도 더워 힘들어했다. 다음에는 겨울에 와야겠다. 따가운 햇볕, 모래 먼지, 비좁은 차 안의 공기는 여행을 고행 길로 만들었다. 숨 막힐 정도의 외부 열기는 차 에어컨의 기능을 넘어섰다. 차 안인데도 얼굴에 흐르는 땀을 연거푸 씻어 냈다.

그러나 도로 좌측을 따라 흐르고 있는 아무다리야 강은 푸른 물살을 반짝이며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차 안에서 보이는 강은 수량이 많아 보이고 강폭도 생각보다 넓게 이어지고 있다. 사막 한 가운데를 흐른다. '사마르칸트-누크스 도로'를 따라 흐른다. 이 도로는 과거에 핵심 실크로드였다고 한다. 강을 따라 1천㎞가 넘는 사막을 횡단했던 것이다. 과거와 현재, 전통과 새로운 문명이 혼재되어 있는 강변 풍경이다. 강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인적이 끊어진 메마른 사막이 펼쳐진다. 인간의 거주지역과 사막이 이렇게 근접해 있음에 또 한 번 놀라게 한다.

길은 끝없이 사막에 쭉 뻗어 있다. 도로변에는 쉴 수 있는 휴게소조차 없다. 아니 휴게소를 만들 만한 그늘이 없다. 키질쿰사막을 직선으로 가로질러 달렸다. 사막 길을 쉬지 않고 6시간 정도 달렸다. 그제야 초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호라즘 지역에 다가 왔다는 신호였다.

◆호라즘 왕국의 역사

호라즘(Khwarezm)은 아무다리야 강 하류의 '비옥한 저지대'를 말한다. 일종의 큰 삼각주처럼 생겼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아무다리야 강 하류의 비옥한 삼각주를 '호라즘'이라 하기도 한다. 지형적으로는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비옥한 초생 달' 지역의 모양과 유사했다. 북으로는 아랄 해, 동으로는 키질쿰사막, 서로는 우스튜르트고원, 남으로는 카라쿰사막과 접하고 있다. 현재 국경으로 보면 투르크메니스탄 북부, 우즈베키스탄 서북부에 해당한다.

호라즘이란 그리스어로 '호올루즘'에서 유래했다. '태양의 땅'이란 의미다. 이 곳은 일 년 중에 300일 이상이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다. 더운 사막이다. '태양의 땅'이란 말이 잘 어울린다.

호라즘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잊혀 진 문명이었다. 이 곳은 이미 200만 년 전 구석기부터 거주 흔적이 발굴되고 있다. 과거 일천여 개의 고대 도시가 나타났다 사라졌던 흔적도 나타나고 있다.

주로 이란계 종족들이 살아왔다. 크게 페르시아 문화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BC 2천년경부터 가축을 사육하고 관개농업을 해 왔다. BC 900~800년경에는 흙집을 지어 정착생활 한 흔적도 발굴되고 있다. AD 300년경에는 '토프라크칼라(Toprak Kala)'를 수도로 '호라즘 왕국'이 세워졌다. 고대 성곽들 중에서 '토프라크칼라, 아야즈칼라, 키질칼라 등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기원 후 305년에는 '카트'를 수도로 한 '아프레기트 왕조'가 세워졌다. 그러나 712년 아랍 군에게 전멸 당하고 수도를 '구르간즈'로 옮기게 된다. 11~12세기 '호라즘제국'이 건설되고 중앙아시아 강국이 된다. 인도-이란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한다. 그러나 13세기에 칭기즈칸에 의해 멸망당한다. 그 유명한 '오트라르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당시 기세등등한 몽골군은 '카라키타이'를 손에 넣은 후 '3명의 외교사절과 450명의 대상'을 호라즘으로 보내 통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술탄 '오트라르 왕'은 그들을 몰살하고 상품을 몰수한다. 간신히 목숨을 건져 도망쳐 온 낙타몰이꾼이 칭기즈칸에게 사건의 전말을 고했다. 칭기즈칸은 사건전모를 밝히기 위해 3명의 문죄사를 보낸다. 그러나 또 다시 1명은 죽이고, 2명은 수염을 깎아 추방했다.

격노한 칭기즈칸은 바로 호라즘을 공격했다. 술탄은 카스피 해의 작은 섬 '아비스쿰'으로 도망간다. 그리고 반격을 꿈꿔보지만, 결국 그곳에서 사망하고 만다. 그의 아들 '잘랄룻' 역시 몽골군에 싸워 보지만 역부족으로 인더스 강 너머로 ?겨나 죽는다. 그 후 호라즘은 남부는 카가타이칸국, 북부는 킵차크칸국의 치하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다 14세기에 티무르의 지배를 받게 된다. 16세기 초에는 카스피 해에서 남하한 우즈벡족의 '샤이바니 칸'에게 정복되고 만다. 이 과정에서 아무다리야 강의 물길이 바뀐다. 카스피 해로 흘러들던 물길이 아랄 해로 흐르게 되었다. 그 결과로 황폐해진 '구르간즈'에서 '히바'로 수도를 옮기게 된다.

이 때부터 히바왕국(1512)이 탄생하게 된다. 히바왕국은 20세기 초까지 번영을 누렸다. 1920년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으로 소련에 편입되고, '호라즘 인민공화국'이 세워진다. 1924년 '우즈베키스탄 사회주의 공화국'의 한 주로 개편 되고, 1934년에는 지금의 우르겐치가 주도로 선포된다. 2000년을 넘게 유지되었던 호라즘 왕국은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러한 긴 역사로 인해 호라즘에는 50곳의 고대 성곽이 잔존하고 있다. 최근 고대 '호라즘 골드 링'이란 프로젝트로 새롭게 정비·복원되고 있다.

과거 아랄 해의 해안선. 사막처럼 보이는 곳이 과거에 아랄 해였던 곳이고 배들이 널려 있다.(사진의 맨 왼쪽 필자)


◆사라지는 '아랄 해'

히바에서 누쿠스까지는 작은 승용차를 타고 가는 것은 무리였다. 40도가 넘는 더위가 장난 아니었다. 다행히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택시운전사 덕분에 따분하지 않게 다닐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4년간 일했다고 한다. 누쿠스로 가는 길은 황량한 사막이었다.

누쿠스는 구 소련이 조성한 도시로, 유서 깊고 매력적인 도시는 아니었다.

소련시대 반혁명주의 예술가이자 민속학자인 사비스키가 지은 박물관이 볼만하다고 해서 들렸다. 건물은 아담하고 멋스럽지만 내용물은 별로였다. 그림은 모작이 많아 실망스러웠다.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는 아무다리야 강과 시르다리야 강을 빼놓고는 얘기 할 수 없다. 이 두 강들을 중심으로 도시가 세워졌고, 강으로 인해 도시의 흥망이 달라지기도 했다. 천산산맥에서 발원한 시르다리야강(1천437㎞)과 파미르고원에서 발원한 아무다리야 (2천136㎞)강이 중앙아시아의 젖줄기인 셈이다.

이 두 강은 사막지대를 유유히 흐르면서 아랄 해로 흘러든다. 아무다리야는 '자이혼'이라고도 불린다. '미친 강'이란 뜻이다. 카스피 해로 흘러들던 것이 갑자기 물줄기를 바꾸어 아랄 해로 흘러들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근대에 면화 재배를 목적으로 한 과도한 관개용수 개발로 인한 사막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현재 하구의 사막 쪽에서 강물이 사라지고 있다. 강의 길이가 원래는 2천400㎞에 달했으나, 현재는 1천450㎞로 짧아졌고, 아랄 해 가까이서는 강이 말라 사라진다. 무분별한 개발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말해 준다. 자연의 재앙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랄 해는 1960년대만 하더라도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내륙호(염호)였고, 그 면적도 남한의 2/3 가량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면적이 1/4로 줄어들었고, 수량은 1/6로 격감했다. 하천 끝자락은 100㎞나 후퇴했다. 또한 지금도 계속 줄어들고 있어 2050년께에는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아랄 해는 수량이 줄면서 호수의 염도가 급격하게 높아졌다. 중동의 사해보다 높다. 때문에 호수에 살던 대부분의 생물이 멸종했다. 한 때 철갑상어가 살던 곳에 지금은 도마뱀이 기어 다닌다. 이 곳 작은 도시 '무이낙'을 방문하면 그 참상을 볼 수 있다. 예전에 무이낙은 아랄 해에 큰 항구도시였다. 드넓은 아랄 해를 누비고 다녔을 선박들이 지금은 사막의 황무지에 녹슨 채 묻혀 있다. 무이낙의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서 '배들의 묘지'라고 부른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있다. 말라버린 호수에서 생겨나는 '소금먼지' 때문에 주변이 황폐화되고 주민들 건강도 나빠지고 있다.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도 극심하게 변하고 있다.

이 아랄 해의 재앙을 '20세기 최대의 자연파괴'라고 부른다. 아랄 해는 인간이 강물에 함부로 손을 댈 경우 어떤 재앙을 가져다주는지를 알려주는 단적인 예다.

우리나라 '4대강 사업'을 걱정하는 것도 이 때문일까. 아랄 해를 보니 갑자기 떠오른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물은 중요하다. 그러나 훼손은 쉬워도 회복은 어렵다.

아시아문화지리연구소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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