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자신의 두 눈을 눈물로 채우기보다는 더 크게 뜨려는 노력

@선정태 입력 2017.11.20. 00:00

이화경 소설가

2014년 4월 16일로부터 3년 7개월이 지난 날,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수색 종료를 공식 발표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받아들였다. '뼈 한 조각이라도 따뜻한 곳으로 보내주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으로 애태우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는 모두 5명이었다. 1313일이 되던 날, 미수습자 가족들은 빈 관에 비통함과 슬픔과 미안함을 담은 편지와 꽃과 유품을 넣으며 오열하고 통곡했다.

2014년 5월 5일에 진도 팽목항을 찾아갔다. '금쪽같은 내 딸'이라고 쓴 종이가 세찬 바람에 펄럭였다. 젖은 몸으로나마 가족의 품에 돌아온 희생자들 소식이 매일 들려오던 때였다. 2014, 2015년이 지나고, 2016년 11월 말에 다시 팽목항에 갔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다. 그때까지도 아홉 명의 희생자는 뭍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임시거처로 마련한 컨테이너에서 미수습자 가족들을 만났다. 다윤이 엄마는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이 너무도 부럽다고, 다윤이를 빨리 만나고 싶다고. 죽은 몸이라도 만져보고 안아볼 수 있었던, 죽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라도 했던, 참척의 고통을 겪은 유가족마저 부럽다는 다윤이 엄마의 간절한 바람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 어쩐지 죄스러웠다.

은화 엄마는 차가운 바다에 아직도 9명이 있음을 기억해주고 기록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혹시 당신이 작가라면 미수습자라는 너무도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존재에 대해, 애태우며 기다리고 있는 자신들에 대해, 매순간이 비상사태인 기다림에 대해, 감정의 공황상태에 대해,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 사이의 원치 않는 갈등과 상처에 대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하는 정부에 대해 기록하고 증언해달라고 했다. 그녀는 울먹이지도 통곡하지도 않았다. 금요일에 돌아오겠다던 소박하고 작은 약속이 전혀 예상치 못한 형태의 죽음으로 돌아온 날벼락에 만신창이가 되었음에도 그녀는 오로지 딸의 살 한 점이라도 건져야겠다는 일념으로 버티고 있는 듯했다.

그 자리에 모인 몇몇은 이미 여러 번 만났기에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엄청난 비극을 마주하면서 글을 쓴다는 행위의 무력함에 대해 속으로 참담해하고 있었기에, 차마 글쟁이라고 소개하지 못했던 터였다. 팽목항에서 오랫동안 가족처럼 곁에 있어주던 사람들 가운데 처음으로 본 얼굴이 궁금했는지 나를 가리켜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봤던 모양이었다. 누군가 작가라고 알려줬다는 걸, 귀가하는 길에 알았다.

기록하고 증언해달라는 부탁을 하던 그분의 눈빛이 내내 가슴에 얹혔다.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참으려고 애썼지만 눈물을 줄줄 흘렸던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많은 눈물들을 봐왔을 그분에게 감정적인 부담만 더 얹혀주는 꼴이었겠다 싶었다.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만약 단 한 명이라도 수습이 되지 않는다면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가 될 터인데, 도무지 헤아리기 힘든 그분들의 슬픔을 내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상상조차 불가능한 엄청난 고통과 절망 앞에서 스스로의 옹졸함과 비겁함을 핑계로 미리 도망가고 있었다.

한참을 '자신의 두 눈을 눈물로 채우기보다는 더 크게 뜨려는 노력'으로 고통 받은 자들의 목소리를 용기 있게 써나간 작가를 떠올렸다. 무덤과 같은 현실을 살았던 소박하고 작은 사람들을 몇 십 년 동안 만나고 또 만나면서 고통의 아우성 속에 담긴 진실을 밝혔던 작가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치였다. 우리가 잘 몰랐던 인간 존재의 역사, 감정의 역사, 영혼의 역사를 밝히기 위해 수 천 건의 인터뷰를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담으려는 커다란 귀로 목소리를 읽었던 작가는 어떻게 견뎠을까. '매번 진실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하므로' 목소리를 받아 적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고 작가는 대답했다.

인양된 세월호 안에서도 끝내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절망도, 5명의 미수습자 가운데 혼자만 남을 수도 있다는 아프고 쓸쓸한 공포도, 한때 같이 아파했던 사람들이 떠나면서 느끼는 서운함도, 시체에 매달리는 괴물로 비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조심스럽게 토로해야만 했을 목소리를 어떻게 받아 적어야 할까. 어쩌자고 자꾸 눈물부터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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