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과 예술을 사랑했던 티무르
스승의 묘보다 크지 않게 유언한다
위에 보이는 관은 빈 관이고
시신은 지하 4m 아래에 있다
중앙아시아에 제국을 건설한 그는
명나라 원정길에 죽었다
사마르칸트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웠다. 2천760년이란 역사를 지녔다고 하니 정말 놀랍다. 실크로드의 중앙아시아 최대 거점이었던 이곳에는 우리와 많은 관계가 있는 곳이었다. 그들을 만나고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평소 마음이 들뜨던 곳이었다. 막상 갈 날짜를 잡고 보니 잠을 설칠 정도로 흥분이 되었던 곳이다.
지난 여름 학술조사 차 네 번째 방문했다. 언제 봐도 화려한 이슬람 문화를 꽃피웠던 사마르칸트는 아름다웠다. 다만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낡고 오래된 구 건물보다 새로운 우리와 같은 아파트나 빌라 같은 신 건물이 도시를 덥혀가고 있는 점이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고는 하나, 워낙 빠르게 신 서양식 건축물이 늘어나다 보니 도시 와관이 급격하게 변한 것처럼 보인다. 참 아쉽게 느껴진다.
◆고선지 장군과 '종이'
종이 공장은 시내에서 5km 정도 떨어진 코니길(Koni Ghil)이라는 작은 마을에 있었다. 당시에는 이곳이 시가지였다고 한다. 칭기즈칸에 의해 구 도시가 파과되고 현재의 시가지는 그 후에 생겼기 때문이라 했다.
전통 방식으로 종이를 생산하는 공장이다. 우리는 닥나무를 이용하지만 이곳운 뽕나무를 이용한다. 만드는 공정은 같았다. '껍질 벗기기->물방아로 빻기->물에 불려 뜨기->눌러펴기->말리기' 등의 순서다.
진열장에 다양한 색깔과 제품이 전시되고 판매되고 있었다. '시인성(視認性)'이 뛰어난다고 자랑한다. 중국에서 시작된 종이 제조 기술이 전해졌다고 한다. 바로 고선지 장군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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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웅 '티무르의 묘지'
구르 에미르(Gur Emir)로 발걸음을 옮겼다. 중앙아시아에 대제국을 건설했던 티무르의 묘지다. 푸른 빛의 돔 두개가 정문 양쪽에 서 있다. 신비감을 주는 진청색 돔, 아름답고 다양한 색상의 정교한 문양이 인상적이다. 햇빛에 반짝여 환상적인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중앙 돔의 63개 주름은 이슬람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63세로 죽은 것을 기념한 것이라고 한다. 기단석에 새겨진 화려한 무늬는 전형적인 아라베스크 양식이었다. 우상을 금지하고 있는 이슬람에서는 동물의 형상을 그릴 수 없어서 다양한 식물을 기하학적으로 그렸다고 한다. 자연에서 추출한 선 등으로 그림을 그려 장식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를 흔히 아라베스크(Arabesque) 문양이라 한다.
묘당에 들어서자 여러 개의 관이 눈에 들어왔다. 티무르가 그의 자손들과 함께 잠들어 있었다. 스승은 물론이고 아들(샤 루흐), 손자(울루그벡)도 함께 묻혀있다. 여러 관 중에서 중앙의 흑록색 연옥(軟玉) 관이 티무르 관이다. 그 북쪽에는 티무르의 스승, 우측에는 무함마드 술탄, 앞쪽에는 손자, 좌측에는 아들이 나란히 있고, 그 외 몇 개의 관이 더 안치되어 있다. 그의 관 앞에는 훨씬 큰 관이 놓여있다. 그의 스승 미르사이드 베레케티의 묘다. 그는 스승의 묘보다 더 크지 않도록 유언을 했다고 한다. 학문과 예술을 사랑했던 티무르를 엿볼 수 있는 면이다.
위에 보이는 관은 빈 관이고, 시신은 같은 위치의 지하 4m 아래에 있다고 한다. 진짜 관은 그 바로 지하 4미터 아래에 위치해 있다.
중앙아시아에 대제국을 건설한 그는 명나라 원정길에 죽었다. 그 때 이미 일흔이 넘은 나이였다. 그리고 혹독한 추위가 적군보다 무서운 겨울이었다고 한다. 그는 고향인 샤흐리사브즈(당시 Kesh)에 묻히고 싶어 했으나, 가지 못하고 여기에 묻혔다. 겨울 산을 차마 넘지 못해, 임시로 시신을 안치한 이곳이 영원한 안식처가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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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의 중심지 '레기스탄'
티무르 제국의 중심지였다. 사마르칸트의 중심에 있다. '모래 땅(광장)'이란 의미다. 광장 북쪽을 흐르는 수로 주변에 모래가 많아 이 이름이 붙어졌다고 한다. 술탄 알현식, 군대 사열장, 회의장소, 노천시장 등으로 활용되었던 곳이다. 사마르칸트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1420년에는 이 곳에 '메드레세(신학교)'를 세우고 여러 학문을 가르쳤다고 한다. 대학으로 사용되었던 푸른 돔 건물과 아치형 입구가 인상적이다. 호화로운 장식과 규모도 보는 이를 압도한다. 웅장하고 화려한 외관으로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거대한 건물들로 둘러싸인 광장에 서 있으면, '신밧드의 모험'에 나오는 신들의 땅에 발을 들인 인간이 된다"라고 관광안내 책자에 쓰여 있다.
광장에는 '메드레세(종교 학교)'가 웅장하게 서 있다. 옛날의 학문적 번영을 보여준다. 주름진 푸른 돔 건물은 아름다운 푸른색 타일과 정교한 조각을 자랑하고 있다. 각양각색의 원색 타일은 꽃과 나무를 아름다운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다름 아닌 '아라베스크'다. 티무르 시대에 이슬람을 대표하는 바로 그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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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이 많은 '오쉬 바자르'
근처의 '오쉬 바자르'는 지금도 번잡했다. 그 옛날 실크로드를 따라 찾아 온 상인들이 교역을 하던 곳이다. 예부터 실크로드의 모든 상품이 몰려들던 교역의 중심지다. 지금도 많은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역시 역동적인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 이었다.
당시의 교역품 이었던 각종 상품 가게가 많다. 중국산 비단과 칠기, 서양산 보석상, 아라비아의 직물(카페트)과 장신구, 악기 등을 팔고 있다. 각종 향료 등 식품가게도 많다. 고려인도 만났다. 그들은 강제이주의 한과 핏줄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슬픈 역사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었다.
주민들 대부분이 이슬람교도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차도르를 쓴 여성들이 많지 않다. 120년 가까운 러시아의 통치 때문에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이슬람 문화가 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독립한 뒤에 잃어버린 종교와 전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또한 멀지 않는 곳에 실크로드 무리진 상인들이 쉬어 가는 여관 '카라반사라'도 보인다. 오아시스 왕국들은 실크로드 상인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여관들을 이렇게 지었던 것이다. 여관은 보통 마당을 중심으로 상인들이 쉴 수 있는 작은 방과 아래쪽에 마구간과 창고가 있는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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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사신도 '프레스코 벽화'
아프로시압(Afrosiab) 박물관을 방문했다. 사마르칸트의 구 시가지를 좀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아프라시압 언덕! 이 곳 왕국의 도성이 있었던 곳이다. 1220년 칭기즈칸에 의해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게 파괴되어 지금도 흙더미 속에 묻혀 있었다. 칭키즈칸이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하고 약탈했는지를 알 것 같았다. 원래 이곳이 중심지였으나, 복구가 불가능하자 그 옆에 새로 생긴 시가지가 지금의 사마르칸트임을 알 수 있었다.
아프로시압 박물관은 1965년 도로를 건설하다 발굴된 궁전 터에서 나온 유물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다. 알렉산더 대왕 시대의 동전을 시작으로 조로아스터교의 제단과 우상 등 다양한 유물을 볼 수 있었다. 기원 전에 알렉산더 대왕이 이 곳까지 와서 점령했다니…, 놀라웠다. 중국의 코앞까지 왔던 것이다.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7세기쯤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프레스코 벽화'다. 길이 110cm, 높이 274cm에 이르는 벽화다. 소그드 왕국의 바르후만 왕이 당시 여러 나라에서 온 각국 사신들을 접견하는 장면을 4면 벽에 장식해 놓은 것이다. 당나라, 티베트 등 이웃 여러 나라 사신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 벽화의 맨 끝에 서 있는 두 명의 사신이 의미 있다. 우리 학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그림이다. 이들이 머리에 쓰고 있는 조우관(鳥羽冠 ; 새의 깃을 꽂은 관)과 허리에 차고 있는 환두대도(環頭大刀 ; 고리 모양의 둥근 손잡이가 달려 있는 긴 칼)이 문제였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보던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름 아닌 고구려 사신도였던 것이다.
고구려의 사신이 왜 수만리 먼 이곳까지 왔을까? "고구려로서는 당의 침공에 대비해 군사동맹이 필요했고, 소그드도 고구려를 통해 당을 견제하고자 했을 것이다"라고 학자들은 설명한다. 이곳까지 찾아 온 그 옛 우리 조상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박물관 안에는 영상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곳에서는 우리말로 제작한 '벽화해설 동영상'을 보여 주고 있었다. 발굴 과정이나 고구려와 소그드의 관계에 대해 아주 유익한 자료를 찾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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